▲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초대 국무 총리로 내정한 한승수 유엔기후변화 특사. | ||
‘총리 한승수’를 두고 돌고 돌아 국보위 출신의 구시대 인물을 낙점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한 이 당선인(41년생)보다 5살이나 많은 ‘올드보이’ 이미지에다가 자주 당적을 바꾼 ‘철새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도 그의 화려한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한 특사는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권을 거치며 정·관계의 핵심 요직을 두루 경험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연착륙과 각종 시행착오와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연 한 특사는 야당 10년의 좁아진 인재풀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3대 정권의 권력 핵심부에서 살아남은 한승수만의 비결이 있었는지 짚어본다.
“한승수 하면 대한민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자기관리의 달인이다.”
한승수 유엔기후변화 특사가 이명박 정부 총대 국무총리로 내정되자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탁월한 ‘자기관리’에 찬사를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뛰어난 공직자라고 해도 평생 한번 하기도 어려운 장관직을 한승수 특사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의 3대에 걸쳐 상공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주미대사, 경제부총리, 외교통상부 장관 등의 핵심 요직을 ‘누워서 떡 먹듯이’ 했고 이번 정권에선 총리로까지 내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 특사는 ‘배경’ 면에서는 그리 돋보이지 않는다. 그는 강원 춘천 출신에 춘천고-연세대를 졸업해 관가에서는 ‘진골’이 아닌 ‘성골’쯤으로 인식된다. 이는 그가 타고난 뒷배경보다 공직에 들어선 뒤 피나는 노력 끝에 3대 정권에 걸쳐 요직을 지냈다는 ‘후천적 노력파’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그의 용의주도함과 자기관리를 설명하는 일화 한 토막이 있다. 정부 고위 인사나 정치인들은 기자들과의 술자리를 일종의 ‘기 싸움’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승수 특사도 학자 출신(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지만 기자들과의 술자리 준비가 치밀했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한 전직 언론인은 이에 대해 “예전 김영삼 정권 때 청와대를 출입했는데 한 특사의 술자리 준비는 참 치밀했다. 그는 비서실장으로 있을 당시 기자들과의 술자리가 있으면 아침부터 사우나에 들러 컨디션을 조절했다. 그런 다음 그는 술자리에 앉자마자 폭탄주를 돌리곤 했다. 하루 종일 일하다 파김치가 돼 술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은 철저히 준비하고 나온 한 특사에 당할 도리가 없었다. 이것이 당시 기자사회에서도 잘 알려져 ‘참 독한 사람이다’라는 얘기도 있었다. 한 특사는 술에 관한 한 자기관리가 매우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는 될 수 없지만 3대 정권에 걸쳐 핵심 요직을 맡은 나름대로의 자기관리 원칙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노태우 정권부터 3대에 걸쳐 요직을 두루 경험한 한승수 특사(위). 그러나 당적을 자주 바꾼 ‘철새 정치인’이라는 오점도 남아있다. | ||
이는 역대 정권이 그를 요직에 기용할 때 중요한 장점으로 삼는 기준이 됐다. 노태우 정권 때인 지난 1988년 상공부 장관으로 처음 기용됐을 때는 그가 이론에 충실한 학자이자 동시에 세계은행, 요르단, 베네수엘라,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UNESCAP) 등에서 경제자문 역을 오래했던 ‘실용적’ 배경이 인선의 배경이 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서울대 행정학 석사에 영국 요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정학 전공이었지만 서울대 교수 시절 제자들에게 “경제학에 무슨 순수경제학이 있느냐. 경제이론은 현실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명박 당선인의 주요 국정철학인 ‘실용주의’와 맥이 닿은 가치관이다. 이런 지적 토양이 이명박 당선인과도 통했기 때문에 초대 총리로 낙점되는 배경이 된다.
노태우 정권 때의 장관 경력을 바탕으로 김영삼 정권 때 주미대사에 이어 비서실장, 경제부총리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특히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영삼 정권 때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그의 별명은 ‘도승지’(조선시대 왕의 비서실장격)였다. 원만한 성격과 일 처리로 상도동 가신보다 더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에서 경제부총리로 기용될 때의 일화 한 토막.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제부총리로 개각 두 달 전부터 주미대사로 일하던 한승수 특사를 점찍어 두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영어도 잘하고 경제도 잘 아는’ 사람을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일찍부터 ‘0순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심의 배경이 일본의 한 주간지 기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문예춘추’에 “워싱턴에 많은 외국대사가 있으며 그중 한승수 대사는 잘하고 있는데 일본 대사는 그만큼 못하다”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를 김 전 대통령이 기억하고 있다가 그를 낙점했다는 얘기가 당시 정치권에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한 특사가 김대중 정권 때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기용된 것을 두고는 말들이 좀 많았다. 이때의 경력 때문에 이명박 당선인 측 일부에서는 그의 총리 기용에 반대 의사를 던진 바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민국당으로 옮겨 배지를 달았다. 그리고 춘천에서 민국당 지역구 주자 가운데 유일하게 당선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그의 상공부 장관, 주미대사 등의 경력을 들어 그를 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원내 과반수 의석확보를 위해 정책연합을 형성하자 그를 민국당 몫으로 ‘전략 입각’시켰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한 특사가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김대중 정권의 진보적 외교 정책의 수장으로 적격한지가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그가 너무 ‘자리’에만 연연해 자신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는 정책들을 수행했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 특사는 이에 대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워싱턴 정상회담이 실패하자 DJ 측에서 지원을 요청해 입각했다”라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 ||
하지만 이런 그의 철새 오점도 역대 정권에서 여러 번 튼실하게 검증된 인물이기 때문에 청문회 등에서 골치가 아플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 당선인 측의 고려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능력 면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현재의 총리 후보군 중에서 한 특사만한 ‘인물’은 찾기 어렵다.
그리고 주변 자기 관리도 매우 철저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 특사는 특히 재산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다는 반응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재산에 대해 “현재 살고 있는 반포동 빌라 외에 춘천에 땅이 조금 있지만 재산총액이 공개되면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또한 병역에 대해서도 “지난 1958년 육군장교로 입대해 중위로 제대했다”라고 밝혔다. 당시 자신이 상사로 모시던 참모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한승수 특사는 정치인 경력 면에선 철새라는 오점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관료 능력으로만 보면 최선의 선택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현 정권 초기의 시행착오를 많이 줄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관가에서는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 때와 달리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출범하기 때문에 부처 이기주의와 자리잡기, 예산 재편성 등으로 혼란이 극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 특사 기용은 이명박이라는 극성스러운 ‘불도저’를 조심스럽게 움직일, 믿을만한 운전수 정도는 될 듯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