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 의원이 14일 서울 노원구의 선거사무실에서 분당 사태에까지 치닫게 된 민주노동당의 위기 상황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속내를 말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지난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년간 몸담았던 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이날 노 의원의 탈당 선언은 민노당의 현 사태와 위기국면을 고스란히 보여준 결과물이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 참패 이후 와신상담 끝에 만들어진 당 개혁안이 지난 2월 3일 부결된 것은 노회찬 의원의 탈당 결심을 굳히게 한 사건이었다. 당내 자주파(NL)와 평등파(PD) 간의 오랜 노선 갈등은 대선 참패를 계기로 폭발했고 당 개혁과 함께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주의 청산을 주장하는 평등파의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노당을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 비유하며 참담한 심경을 밝힌 노 의원은 이날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킬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침몰하는 민주노동당에서 선의의 승객들을 안전지대로 대피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00년 1월 ‘이 땅의 진보세력’의 대표성을 표방하고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의 결말은 결국 분당이라는 최악의 국면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8년의 시간을 민주노동당과 함께 해 걸어온 노 의원의 머리 속엔 힘겹고 때로는 짜릿했던 지나간 기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는 듯 했다.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의 선거사무실에서 노 의원을 만나 분당 사태에까지 치닫게 된 민주노동당의 위기 상황에 대한 속내를 들어보았다.
인터뷰가 있던 전날 밤 노회찬 의원은 심상정 의원 및 당내 평등파 인사들 50여명과 심야 긴급 회동을 가졌다. ‘진보신당 제안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이들은 이날 창당 작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결국 우려했던 민노당은 분당 수순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이미 탈당한 당원들에 이어 다음날인 14일엔 2차 탈당이 이어졌고 탈당을 예고했던 심상정 의원 등 간부들 역시 ‘탈당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한시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 민노당의 위기에서 노 의원은 맨 앞줄에 서서 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제 분당을 피할 수 없게 된 민노당 사태에 대해 노 의원은 누구보다 가슴 속 ‘할 말’이 많을 터였다. 전날 긴급회동에서 논의된 내용을 묻자 노 의원은 “진보정당으로 같이 나갈 것인가, 나간다면 어떤 경로를 거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에 심도 깊게 이야기했다”며 입을 열었다.
―민노당 분당 사태에 대한 심경은 어떤가.
▲나는 87년 이래로 진보정당 운동을 계속해왔다. 아마 지금 진보정당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 중 내가 가장 오래됐을 것이다. 민노당은 2000년 1월에 창당됐지만 10년 이상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당이고, 그때 난 내 할 일의 반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창당 4년 만에 원내에 10석이나 진출하는 쾌거도 있었다. 이제 창당 8년이 됐는데 출범했을 때 국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당시의 출범 정신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근본적인 탈바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난 2월 3일 당 대회에서 확인했다. 남은 것은 국민들과의 약속, 창당 정신이었고 그것을 당내에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결과적으로 당을 떠나게 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그 이전에 서서히 해 왔을 것 같은데.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예상 밖으로 후보가 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음해 동영상 등 네거티브 공격도 많이 당했지만 나는 전혀 당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대선에서 민노당 지지도가 3%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이 당이 가망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이 당이 굉장히 문제가 많다는 건강진단 결과였고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런데 수술이 거부된 것이다. 나는 당 혁신안이 마지막 회생책이라고 생각했고 이 안마저 부결된다면 내가 어디에 서 있을지는 모른다는 얘기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만일 이 개혁안이 부결된다면 나로서는 큰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미리 말했었다.
―혁신안이 부결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나.
▲그간의 당내 의사결정 분포로 봐서는 부결될 가능성이 컸지만 이 안이 부결된다면 당이 쪼개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공개적 사실이었다. 설마 쪼개져도 좋다고 생각할까 하는 것에 대해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탈당 선언 기자회견 이후에도 천영세 대표가 노 의원의 탈당을 막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후 천 대표와 만나 논의한 내용은 없나.
▲한번 만나긴 했다. 새로 직무대행을 맡은 대표로서 제2의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볼 때에는 제대로 된 혁신안이라면 통과가 안 될 거라는 판단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현재 FTA 비준안 처리가 맞물려 있어서 탈당 시기가 고민될 것 같은데.
▲사실 그렇다. 어제 심 의원과도 얘기했는데 떠나기로는 했지만 FTA를 막아내는 것이 민노당의 당론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내가 당을 떠나더라도 FTA에 대한 내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2월 임시국회가 끝날 때까지는 탈당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또 탈당 시점에 대해서는 개인이 결정하지 않고 동료들과 의논해 각각 형편을 감안해 연쇄적으로 하기로 했다.
―창당 시점에 대해 총선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총선 전이든 후이든 일장일단이 있다. 총선 전에 하자는 의견이 더 많지만 총선 이후에 하자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총선을 위한 정당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총선은 그 후에도 있고 또 총선 외에도 여러 가지 정치상황을 고려한 창당이어야 한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24일의 토론회 때까지는 어떤 쪽으로는 결론이 날 것이다.
―새 정당에 좀 더 인지도 높은 인물들을 영입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알만한 정치인뿐 아니라 비정치권의 많은 분들을 만났다. 우리의 의견에 적극 지지하면서도 총선이 임박해 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지지의사를 밝히겠다는 유보적 입장을 가진 분들이 많다. 우리의 창당 작업은 2단계로 이루어질 것이다. 1단계는 현재 당 내외의 역량을 총결집해서 총선에 대응하고 총선 이후 2단계에서는 그 성과를 가지고 시간적 여유를 통해 더 큰 정당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이번 총선은 세력화된 정당과의 연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창조한국당과는 대선 때 후보연대 얘기도 나왔었고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한 것과 같이 사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쪽도 좀 진정돼야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친한 분들은 사석에서 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임종인, 고진화 의원 등과 뜻을 같이 하고 싶다는 내용의 보도가 전해지기도 했는데.
▲그 분들은 어떠냐고 물어봐서 ‘괜찮다, 그분들 뜻을 물어보겠다’고 답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러브콜을 보내는 것처럼 비춰졌는데 그건 아니다. 조만간 만나 볼 생각이다.
―새로운 당은 노동 편향에서 벗어나 평화, 인권, 여성, 생태, 이주노동자 등 현실 문제에 주력할 것이라고 들었다. 대중 정당으로 태어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우려도 든다.
▲가장 서민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그 가치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부족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굉장히 노력했지만 그 분들은 민노당이 대기업, 고액 임금자들의 당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는 국민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노당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 부족, 혹은 오해가 있는가.
▲민노당이 ‘친북정당’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북한을 비판하는 강령도 갖고 있다. 친북으로 따지자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고 그 쪽에 비료 대주는 정권이 더 친북적이지 않나.(웃음) 또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만 대변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들 생각하신다. 이 점에 대해 우리도 부족했고 또 오해도 많았다.
―당지지도가 낮게 나온 것이 당내 분열을 촉발한 계기가 되었지만 당내 이념 투쟁은 오랫 동안 계속돼온 문제다.
▲대선 결과가 참패라고 말할 정도로 안 좋았다. 원인을 분석해 보면 2004년 이래로 다각적인 문제가 있었다. 개혁을 논의하다보니 그동안 쉽게 지적하지 못했던 민노당의 정체성, 노선 등 누적된 문제들이 드러났다. 비가 새서 천장을 뜯어봤더니 구멍 난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배관도 잘못돼 있고 여러 가지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전기선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 그러면 이게 고쳐지겠는가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정파 간 갈등이 커지게 된 것이다.
노회찬 의원은 “대선 참패에 대해서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가 느꼈던 괴리감은 또 있었다. 대선경선 당시 전국순회 투표 직전까지의 당내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었지만 그것이 표로 반영되지 않았다. “인기가 표로 반영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정파 때문이다. 나는 저 사람이 후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소속된 정파에서 누구 찍으라고 하면 다른 사람을 찍는 것이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대선에 큰 영향력을 주었고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노당에 대한 평가도 총선에서 반영될 텐데.
▲민노당도 지난 8년간의 활동이 대선에서 심판을 받았다. 대선 이후 불거진 문제들의 해결 방식, 당 대회 결과 등이 총선에서 유권자들에게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 진보신당도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나를 포함한 주역들은 민주노동당과 연관된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가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평가 역시 최종적으로 총선 투표 결과로 나올 것이다.
―자리 잡지 못한 진보에 대한 반감이 한나라당 승리에 일정부분 작용한 것이라면 보수정권인 한나라당의 차기 정부에서 진보 세력들이 더 위축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는 개성이 강하고 정책적 지향성이 굉장히 강한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혼란스러웠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돌았다. 이명박 정부는 오른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신호봉까지 흔들면서 오른쪽으로 확실하게 가는 정부다. 오히려 이명박식 경제정책은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강자가 더 강해지고 약자가 더 약해지는 것을 감수하는 정책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권에서 사회양극화는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서민을 대변하겠다는 진보 진영의 존재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 객관적인 조건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우리가 제대로 해낼 때 가능한 일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노회찬 의원에게 민노당의 8년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아달라고 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의원회관의 ‘엘리베이터 개혁사건’을 가장 첫째로 꼽았다. “16대 국회까지 엘리베이터 6대 중 4대가 의원전용이었고 2대만 일반용이었다. 의원은 300명이고 의원 아닌 사람은 수천, 수만 명인데 그걸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우리가 국회 들어가면 고치겠다고 약속했었다. 마침 당선이 되고 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국회 사무총장을 만나러 갔더니 이미 의원 엘리베이터를 다른 분들도 타고 계시더라. 민주노동당이 이거 문제 있다고 발표한 그날부터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리고 두어 달 뒤 그 팻말을 떼는 행사를 멋있게 하는 걸 보았다. 그 당시부터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