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이 고향인 박 위원장은 연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13회)에 합격했다. 1973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조계에 입문한 그는 제주·수원 지법을 거쳐 81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8년도 채 안 되는 짧은 법관 생활이었지만 법조계에 ‘박재승’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박 위원장은 77년 서슬 퍼런 유신정권 때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중앙정보부의 민원 청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제주지법으로 쫓겨난다. 법조계에서 박 위원장을 “외부의 영향이나 압력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법조인”이라고 평가하게 된 첫 사건이었다. 79년 10·26사태 이후에야 수원지법으로 올라 온 그는 2년 뒤인 81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변호사 시절 주로 인권변호사로 활동해 온 그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과 서울지변 회장을 거쳐 대한변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뚝심과 강단이 어우러진 재야 활동은 특별검사 추천 때마다 단골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삼성 특검법과 관련해 민변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박 위원장을 특별검사 후보로 강력히 추천한 바 있다. 민변은 “박재승 변호사는 대한변협의 수장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모든 변호사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높은 경력의 법조인”이라고 추천 사유를 밝혔고 ‘삼성 비자금 의혹’을 처음 폭로한 사제단도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박 변호사를 특별 검사 후보자 명단에 포함시켜 달라”고 대한변협에 요청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또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던 노회찬 의원이 대한변협 소속 변호사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특별검사 추천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박 위원장은 대표적인 진보성향 법조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3년 초 대한변협 회장에 당선된 박 위원장은 당시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사법개혁에 적극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박 위원장이 회장이었을 당시 대한변협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한나라당의 탄핵에 대해 성명을 내고 탄핵 관련 논의를 중단할 것을 정치권에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변협은 정치권이 일정기간 대통령직 공백을 야기할 수 있는 탄핵소추를 강행하거나 논의를 한다면 민생외면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한 사법개혁 논의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바 있다.
손학규 대표가 박 위원장을 공심위원장으로 발탁한 것도 그의 개혁적 성향과 강단 있는 성품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우상호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박 위원장 선정 소식을 알리는 자리에서 “박 위원장은 정의롭고 강단이 있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원칙있는 공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개혁적인 성향과 강직함을 높이 사서 공천을 맡아주시면 신당은 국민 속에서 신뢰를 받고 자기쇄신의 방향을 국민 속에서 제대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손 대표도 박 위원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박 위원장은 정치권에 친분이 있는 인사가 별로 없어 당내에서도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박 위원장이 외부 공심위원들을 정치와 무관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사들로 모두 채운 것과 관련해 공천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한 승부카드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정치권 인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반응도 없지 않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