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왼쪽)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부의장과 친구 사이로 대통령과 어린 시절부터 교분이 있었다. 사진은 지난해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해단식. | ||
“개국공신인데 그 만한 감투하나 쓰지 못하느냐. 해도 너무 한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장관급) 내정자 인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명박 대통령 측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 측은 장관들의 잇단 줄 낙마에 “이대로 밀릴 순 없다. 최시중 카드는 그대로 밀어붙인다”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나라당내 일부 소장파들은 “이명박 정부의 연착륙은 물 건너갔다. 정권 초기에 인사 문제로 벌써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점수를 까먹기는 쉬워도 다시 얻기는 정말 어렵다. 앞으로도 현재의 인사 부적절 요소가 계속 부담이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한다.
물론 청와대도 이 대통령 측근들의 잇단 권력 요직 진출에 적잖이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도 일부 인사들이 이번 인사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고 영남 편중 인사로 인해 호남민심이 등을 돌려 총선 과반수 획득도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청와대는 최시중 카드만큼은 밀어붙이고 싶어하는 것일까.
먼저 이 대통령이 방송정책에 관심이 많아 그 ‘기대’에 부응할 만한 인사는 그의 최측근인 최시중 내정자뿐이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뢰는 크고, 깊다. 일각에서는 그가 이 대통령의 ‘복심’이 아니라 창업공신으로서 현 정권에서 일정한 지분을 가진, 또 다른 권력이라고 본다. 최 내정자가 이 대통령에게 그 정도까지 신뢰를 쌓은 것은 남다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지난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 때 이명박 캠프의 대 언론 창구로 활동하면서 좋은 성과를 얻은 게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대선 때 그의 수첩에는 각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와의 술자리 약속이 줄을 이어 있었다. BBK 사건이 위기로 치달았을 때는 주로 언론사 법조팀 기자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그 방어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이때 그는 소탈한 언행으로 기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는 오랫동안 언론계(연합통신-동아일보-한국갤럽)에서 활동한 경력 덕분에 나온 특유의 유연함이었다.
그런데 최 내정자와 친분이 깊은 일부 정치부 기자들은 그와 핫라인을 유지하며 정보교환을 하는 일종의 ‘장학생’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특별한 기자와의 교분은 그가 이명박 캠프 내에서 ‘정보통’으로 통하는 결정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캠프의 모든 정보는 최 내정자의 안테나를 거쳐 이명박 후보에게 직보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까닭에 이 대통령도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시중이 형님’을 찾았다고 한다. 사석에서 이 대통령을 ‘명박아’로 부를 정도로 최측근인 최 내정자도 언론인 출신 특유의 감각으로 ‘정무적 조언’을 했다. 그래서 캠프 내 참모들은 당내 대책이나 선거전략을 짤 때 최종 보고자로 항상 최 내정자를 꼽았다고 한다.
최 내정자는 정보 수집력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도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여론조사 기관 회장 출신답게 특히 여론조사 결과 분석에 탁월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능력은 지난해 치열했던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 발표는 이명박 후보가 최대 10%포인트까지 차이를 벌려 승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최 내정자는 자신이 관리했던 여론조사 결과가 ‘초박빙’으로 나오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경선 뒤부터 캠프에서는 최 내정자의 정보력과 분석력만큼은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최 내정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던 데에는 일종의 ‘동류의식’도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매개는 바로 ‘가난’이었다. 최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부의장과 친구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교분이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 대통령과 최 내정자 모두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분모가 그들을 더욱 ‘형-동생’ 사이로 묶어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중 고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국화빵과 뻥튀기 장사를 했다. 그런데 최 내정자도 고등어잡이 배를 타던 아버지가 망루에서 낙상한 뒤 어머니와 함께 선창가에서 연탄불에 호박떡을 구워 팔았다. 여기에 두 사람은 포항이라는 동향의 동질감도 있었다. 이 때문에 최 내정자는 후배들에게 “서민의 아픔을 얘기할 때면 대통령과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감이 다를 정도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라고 말하곤 한다. 최 내정자는 대학 시절(서울대 정치학과)에도 너무 가난해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입주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학비를 벌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굴지의 회장 자택에 살면서 가난과 부에 대해 가슴에 사무치는 회한이 있었다”고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털어놓곤 했다. 최 내정자는 그런 자리에서 어린 시절 가난한 생활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해 기자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2일 오후 서울 무교동 한국정보사회진흥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사실 그는 방통위원장에 내정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마자 제일 먼저 기자들부터 찾았다. 이런 그의 행보를 두고 언론계 일각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그동안 신임 장관들의 경우 내정자 신분에서 언론을 상대로 공식기자회견을 가진 관례가 거의 없었다. 특히 그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던 3월 2일 경에는 이미 3명의 장관이 낙마를 해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그런 뒤숭숭한 상황에서 국회 청문회까지 남겨둔 그야말로 ‘내정’ 신분에서 공식 기자간담회를 한 것을 두고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서 일각에선 대통령의 최측근이 장관급인 방통위원장에 내정된 것을 두고 각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굳히기’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자리에서 청문회를 앞둔 내정자답지 않게 “방통위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지켜나가겠다”라는 등의 소신 발언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과연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방통위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그가 과연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할 방송정책을 그려나갈 때 권력(이명박 대통령)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선 먼저 이 대통령의 방송에 대한 ‘관점’이 중요하다. 사실 이 대통령은 방송에 관한 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최 내정자를 이명박 정부 초대 방통위원장으로 지명하기로 마음을 굳히기 전 최 내정자, 이상득 부의장 등 측근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는 방송이 중요하다’라고 여러 차례 힘주어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대선 때 캠프 전략가로 활약했던 A 씨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평소 방송 신문 등의 언론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BBK 사건 등을 거치면서 신문보다 방송이 더 영향력이 큰 데 반해 사실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안다. 특히 에리카 킴과 인터뷰를 가졌던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대립했던 게 대표적 경우 아니겠는가. 또한 방송의 뉴스 접근 방식이나 일부 시사프로그램의 경우 편향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본다. 이제는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의 방송환경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왜곡 편향’ 되어있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KBS(정연주 사장)와 MBC(최문순 전 사장) 체제가 모두 노무현 정권의 ‘코드’를 정확하게 맞춘 인사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수 있다. 한 방송국의 간부 PD는 이에 대해 “방송사에서 사장이 바뀔 때마다 그 밑의 ‘라인’도 모두 바뀐다. 뉴스뿐만 아니라 드라마 PD도 정권에 따라 잘 나가는 사람이 달라진다.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그와 코드가 맞지 않았던 인사들은 조용히 지냈지만 이젠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보면 이 대통령으로서는 향후 이명박 정부의 개혁을 실현시키는 데 방송이 매우 중요한 관문이라고 보고 그의 최측근을 포진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야당과 언론단체 등도 이러한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지난 10년 동안 진보정권의 언론정책을 쉽게 바꿀 수 없다. 현재 방송계는 신문 방송 겸영 규제 완화, 신문법 폐지, 공영방송 민영화 등 새 정부가 추진해 나갈 것으로 알려진 미디어 정책들이 산적해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언론계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의 언론관을 전략적으로 과감히 실행해 줄 인사가 필요했을 테고 그런 측면에서 최 내정자가 ‘적임’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특히 언론계 일각에서는 보수신문들이 이명박 정부를 밀어주고 그 대가로 특정 방송사 겸업 허가를 받으려 한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최 내정자가 특정 신문사 출신인 점도 이런 ‘음모론’에 설득력을 얹어주고 있다.
그런데 최 내정자는 여론의 흐름을 정확히 꿰는 등 탁월한 정세판단력 등의 장점이 많지만 방송 통신 분야에서의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향후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을 전망이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 아들의 건강보험료 체납 등의 도덕적 결함도 그의 방통위 가는 길을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언론시장 개편이라는 난제를 풀 적임자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시중이 형님’을 점찍었다. 또한 일각에선 “최 내정자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소장파들로부터 견제를 받기 시작하자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힘 있는 자리에 있는 게 낫다는 현실적 판단을 했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오랜 지기에 대한 예우와 최 내정자의 고령(71세)을 넘어선 일에 대한 열정도, 방통위원장 인선 논란을 쉽게 매듭지을 수 없는 장애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