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리그 통합 10승의 위업을 달성한 신치용 감독은 이번 우승이야말로 자신의 지도자 인생을 가늠하는 중요한 승부처였다고 했다. | ||
그동안 여러 차례 신 감독과 인터뷰도 하고 술도 마셔봤지만 이번처럼 자신을 감추지 않고 유쾌하고 솔직한 모습을 내비친 건 처음이었다. 4개월 반이란 긴 시즌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모두의 예상을 깨고 통합 챔피언이란 값진 승리를 거머쥔 행복감, 그리고 아홉수를 떨치고 열 번을 우승한 감독으로 인정받았다는 자신감이 술자리 분위기를 지배했다. 신 감독은 이번 우승이야말로 자신의 지도자 인생을 가늠하는 중요한 승부처였다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선수들로부터 ‘카리스마와 감동’을 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우승을 안겨준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에게 ‘고맙다’는 의미있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된 우승 뒷얘기보단 신 감독의 유년시절 스토리를 소주잔에 담아 마시는 걸로 취중진담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 거제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말이 사실이에요?
▲거제는 규모가 작지. 영남의 갑부 소리를 들었으니까. 아버지가 여객선 사업을 하셨어. 수입이 어머어마했다고 하더군. 여기저기 땅도 많이 사들였고. 하지만 그 좋은 시절은 얼마 못 갔지. 워낙 술을 좋아하신 데다 사업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면서 내가 대학 들어갈 무렵 쫄딱 망했으니까.
―거제에서 부산으로 나온 건 몇 살 때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지. 아버지가 사내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육지로 내보내신 거야. 공부가 목적이었는데 전학 간 부산 아미초등학교에 배구부가 있는 바람에 내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배구가 좋았어요?
▲전혀. 중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내 키가 168(cm)이었어. 배구선수로는 키도 아니지. 당시 친구들이 76, 78할 때였으니까. 성지공고에 진학할 때는 작은 키 때문에 잘하는 선수와 함께 옵션으로 붙어 간 거야. 그때 성지공고에 엄한주(대한배구협회 부회장) 강만수 박기원(LIG 감독) 선배들이 있었어. 그런데 조금씩 키가 자라기 시작하더니 고3 때 되니까 훌쩍 크더라고. 그때부터 날리기 시작했지. 고3 때 서울에서 실업팀이랑 연습 경기를 벌였는데 공격수로 나선 내가 기똥차게 게임을 한 거야. 그 후론 나가는 대회마다 개인상은 내가 다 휩쓸었어. 그런데 김호철은 어떻게 해서 ‘신치용이 게임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안 돼. 내가 고3이고 호철이가 고2 때 내가 상을 다 휩쓸었는데 어떻게 날 모르겠어.
―두 분이 55년 동갑내기시잖아요. 그런데 학년이 달라요? 고3, 고2로?
▲호철이가 중학교 졸업하고 한 해 쉬었어. 이유는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고. 그래서 나이는 같지만 학년이 틀려. 엄연히 내가 호철이보다 선배지. 그래서 배구판의 동갑내기들의 관계가 복잡미묘해. 자, 설명을 해볼게. 차주현(전 대한항공 감독)과 최삼환(상무팀 감독), 김호철은 서로 ‘얘, 쟤’하면서 말을 놓는다고. 그런데 호철이 빼고 둘은 나한테 말을 높여. 난 이희완 감독이랑 성균관대 동기야. 당연히 말을 놓겠지. 하지만 호철이는 이희완과 대신고 선후배 사이야. 이 감독이 1년 선배거든. 그래서 호철이는 희완이에게 ‘형’이라고 불러. 엄연히 따지면 호철이가 나한테 ‘치용아’하고 부르면 안 되는 거지(웃음).
▲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왼쪽)과는 친구이자 맞수. | ||
▲배구로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지. 그래서 과감히 취직을 한 거야. 돌아가신 정몽필 사장이 오너로 있는 현대동서산업이었는데 지금 삼성팀을 맡고 있는 내가 원래 ‘현대맨’이었다는 사실이 재밌지 않아? 그러다 결국엔 다시 배구판으로 돌아갔어. 한국전력에서 200만 원의 스카우트비를 제시하며 날 데려가려 했거든. 무엇보단 한전이란 회사가 매력적이었어. 선수 생활 끝나도 먹고 살 순 있을 것 같아서.
신 감독은 자신을 배구 지도자로 이끌어준 고 양인택 한전 감독을 평생 잊지 못할 스승으로 꼽았다.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자신에게 ‘넌 선수보다 지도자 감이야’라며 한전 코치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91년엔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됐다. 2년 만에 감독이 바뀌었는데 감독 2명이 바뀔 동안 신 감독은 계속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었다. 선수들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탁월했고 배구 관계자들도 신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대표팀 코치로 있다가 95년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창단되면서 초대 감독으로 내정된 거네요.
▲그때 창단팀 감독 자리가 엄청 치열했어. 언론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후보로 올려놓고 저울질할 때 삼성에서 날 부른 거지. 대표팀에서의 코치 경력을 크게 인정해 주더라고. 삼성도 그렇고 나도 서로 배짱이 맞았다고 할까? 솔직히 난 창단팀 감독에 매력을 못 느꼈어. 1~2년 하다가 성적 못 내서 잘리면 어떡해? 그럴 바엔 차라리 영원한 직장인 한전팀 코치가 훨씬 낫지.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아내가(전미애 씨)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한번 쯤 감독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느냐고 용기를 줘 결단을 내린 거야.
―그런데 창단 첫 해에는 겨울리그에 참가를 하지 않았어요. 이유가 뭐였죠?
▲김세진, 김상우가 있었지만 선수들 훈련이 안 돼 있었어. 구단에선 겨울리그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라 안 나가게 되면 징계감이었지.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혼자 한강 고수부지를 찾아가서 밤새 술 마시면서 고민을 하다 결정을 내린 게 ‘이런 상태로 나가면 난 1년도 안 돼 쫓겨난다’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온갖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그 해 겨울을 포기한 거야.
1996년 신진식을 스카우트한 삼성화재는 12월 겨울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다. 신진식이 가세하기 전부터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한 삼성은 이미 실업연맹전에서 우승을 거머쥔 뒤였다. 새벽 6시부터 선수들을 달달 볶으며 무척 괴롭혔다는 신 감독의 ‘고백’이 이어진다. 지독한 연습과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만든 지도력은 삼성화재 통합 9연승과 77연승이란 대기록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욕 많이 먹었잖아요. 삼성화재 때문에 배구가 재미없어졌다느니, 선수들을 싹쓸이했다느니…, 어느 감독보다도 비난의 중심에서 총알받이가 돼 보이지 않는 상처가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이루 말할 수가 없지. 나처럼 욕 많이 먹은 감독도 없을 거야. 정말 지독하게 했던 것 같아. 여기서 실패하면 내 지도자 인생도 끝이 날 거란 절실함을 가지고 선수들을 몰아붙였어. 9승과 10승의 의미 중 가장 큰 차이라면 9승까진 내가 선수들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이번 10승은 선수들이 날 이끌어준 거야. 신치용 중심이 아닌 선수 중심으로, 사람 중심으로 팀 분위기를 만드니까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색깔들이 나타나더라고.
▲ 지난 13일 V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우승을 차지한 삼성화재 선수들이 신치용 감독을 헹가래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
▲나 때문에 진 거였어. 감독이 객관적인 전력만 보고 게임도 하기 전에 접고 들어갔거든. 내가 나태했던 거지. 자신감도 부족했고. 그런데 사람이 하는 건 모르는 거야. 수치상으론 말도 안 되는 전력 차이라고 해도 사람이 하기 때문에 뒤집어 질 수 있다는 걸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깨달았어.
―그래서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배구도 사람이 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신 건가요?
▲두 시즌을 실패한 뒤 팀을 사람 중심으로 재편성한 거야. 감독이 아닌 선수들이 이끌어 갈 수 있게끔. 사실 이번 우승은 내 일생일대의 승부처였어. 지도자로서 슬슬 내리막을 타느냐, 아니면 다시 팍 올라가느냐가 결정되는 순간이었지. 그래서 김호철이 고맙더라고. 날 다시 살려줬으니까(웃음).
―우스운 질문 한 가지 할 게요. 이번 우승은 삼성이 잘해서 이긴 건가요, 아니면 현대가 못해서 이긴 건가요?
▲즉답을 하긴 곤란하고 이렇게 표현해 볼게요. 올시즌 현대 멤버는 최상의 전력이었어. 그런 화려한 선수들을 데리고 우승을 못한다는 건 문제가 있어. 그 정도로 멤버가 좋았다고.
―반면에 삼성엔 크로아티아 용병 안젤코가 있었잖아요. 만약 안젤코가 없었다면 우승이 가능했을까요?
▲우리 팀 그 누구도 안젤코 때문에 우승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안젤코를 처음 봤을 땐 지금의 선수가 아니었어. 그러니까 몸값 10만 달러를 받고도 오겠다고 했겠지. 수비도 약하고 체력도 떨어진 선수를 하드 트레이닝 시켰다고. 달리기를 싫어하고 웨이트트레이닝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한 선수에게 그것들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많은 작업들이 필요했지. 특히 안젤코가 전방에서 과감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세터는 물론이고 후위에서 열심히 몸을 날려 수비해준 선수들이 있었기에 안젤코가 빛이 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팀은 한 선수만 잘한다고 우승할 순 없는 거야. 그렇다면 작년에 현대가 우승한 건 루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
―벌써부터 다음 시즌에도 우승하겠다는 얘기가 나와요.
▲팀을 이끄는 감독은 우승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일부러 지려고 게임하는 건 아니잖아. 물론 10승도 중요하지만 11승, 12승 올리면 좋은 거 아닌가?
신 감독에게 삼성화재를 이끌 ‘후계자’는 안 뽑느냐고 물었다. 은퇴한 3인방(김세진 김상우 신진식) 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할 코치 후보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거론하며 마음을 열었던 그가 이번엔 ‘후계자감이 안 보인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소주를 마시다 ‘소폭’으로 폭탄을 서너 잔 걸친 뒤 3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니 빈 병만 쌓여 있었다. 신기한 건 신 감독이나 기자도 정신 상태가 너무나 말짱했다는 사실. 포장마차에서 2차로 다시 시작하자는 신 감독 뒤를 따르며 잠시 이런 갈등에 휩싸였다. ‘여기서 도망갈까? 말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