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사장직 취임 후 ‘존경받는 언론인’에서 ‘독선적 경영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정연주 사장. 그는 여권과 노조 측의 퇴진 압력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 ||
<조선일보>의 올해 1월 3일자 사설은 그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대표하는 글로 꼽힐 만하다. ‘KBS 사장, 정연주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마치 격문을 연상케하는 문답식 구성으로 정 사장을 공격하고 있다.
“정연주가 누군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 48시간 쉴새없이 탄핵반대 선동 방송을 지휘한 사람이다. 정연주가 누군가. 국민 세금과 시청료를 받아 대한민국 건국 원훈들을 친일파로 모는 드라마를 공영방송 전파에 띄워 보내며 이 정권의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캠페인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말이 타락했다 해도 이럴 수는 없다. 국민을 아예 눈 멀고 귀 먹은 것으로 취급한다.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이다. 국민이 무서운 게 뭐라는 것을 가르쳐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다른 편의 평가는 다르다. 그렇게 심각하게 자격 미달인 사람이 어떻게 공영방송의 수장이 됐을까. 단순히 정권이 억지로 앉혔다고 해서 그런 ‘문제적 인물’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정 사장은 2003년 KBS노조와 시민단체가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추천한 3명 중 포함됐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임기를 시작했다. 애초 절차에 큰 하자가 있었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KBS 사장이 되기 전 그는 ‘존경받는 언론인’이었다. 물론 평생 대립해온 조·중·동 등과 일부 정치세력에게는 눈엣가시였지만 최소한 양심적 언론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혀왔던 것이다.
그에 부합하는 이력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참여연대가 뽑은 ‘희망을 일구는 언론인’(2000년) 5위, <미디어오늘>이 조사한 ‘기자들이 존경하는 언론인’ 4위(2003년). <미디어오늘> 조사 결과에서 5위 내에 현역 언론인은 그가 유일했다. 그가 KBS에 입성하기 전 받았던 작은 성적표다.
참여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평가는 화려했다.
1970년대 그는 언론자유 운동에 투신했다. 70년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강제해직됐다. 이 사건은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언론인들의 항거로 한국 언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후에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되는 등 그의 반독재 활동은 이어졌다.
신군부가 등장했던 엄혹한 시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던 그는 1989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했다. 1993년부터 7년간 한겨레 워싱턴특파원을 지내면서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냉전의식과 전쟁을 벌였다.
1995년에는 훗날 자신의 칼럼집 제목이 되기도 한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라는 유명한 칼럼을 남겼다. 북미 제네바 합의에 대한 각종 오보를 양산하던 당시 국내 언론 보도를 질타한 이 글은 우리 언론의 냉전 편향적인 시각을 과감하게 꼬집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4년 전쟁설까지 나돌 정도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던 당시에 그의 글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더디게나마 추진되던 개혁이 주류 신문들의 공세로 주춤할 때쯤 그는 이른바 ‘조·중·동’ ‘조폭언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를 전면화했다. 2000년 <한겨레>에 3회에 걸쳐 실었던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는 큰 논란을 불렀다. 동아 조선 중앙 등 주류 신문들의 사주를 정면 비판한 이 글은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자신의 친정인 <동아일보>의 김병관 회장을 노골적으로 겨냥했다. 2003년 한겨레 이사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떠날 때는 그를 붙잡는 후배들의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앞서 <조선일보> 사설에 등장한 인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모습이다. 양심적이고 존경받는 언론인에서 자리에 집착하는 사장으로 몰리게 된 그의 운명은 KBS 사장 취임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평생 동안 적군과 아군이 명확했던 그가 지상파 방송의 핵인 KBS의 사장이 된 이상 일대결전은 불가피했는지도 모른다.
“KBS 동지 여러분”으로 시작됐던 그의 취임사는 적잖은 파란을 예고했다. 1980년대 ‘땡전뉴스’라고 불렸던 KBS에 운동권 용어인 ‘동지’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것도 사장의 입에서 나왔으니 더욱 충격이었다. 취임사 곳곳에서도 그의 단호한 어조는 계속됐다. 그는 “다 같이 힘을 모아 우리 사회가 좀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데 KBS가 선도적 역할을 하자”는 말로 취임사를 맺었다.
그에 대한 시선은 이때부터 더욱 양 극단으로 나뉘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개혁을 지지하던 세력들에게는 기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왜곡 편파방송의 주역으로 비춰졌다.
정연주 사장의 등장과 함께 KBS에는 급격한 변화의 파고가 일었다.
정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런 저런 로비를 통해 인사상 이익을 보려는 사람은 오히려 바로 그 로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단언했다. 실제 취임 초기 고등학교 동문인 몇몇 인사들이 접근하자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전임 박권상 사장 시절 전주고 출신 ‘전언회’가 각종 요직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됐다. 민주화세력이 주축이 된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극복하지 못했던 정실인사를 배제하려고 한 것이다. 인사에서도 세대교체를 과감히 시도했다. 팀제 개혁을 통해 비대한 간부조직에 메스를 들이댔다. 평기자들의 편집위원회 참가를 보장하는 등 일선 제작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도 시작했다.
▲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공영방송총회 모습. | ||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많은 개혁조치는 아군과 적군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논란을 가중시켰다. 인사 분야에서는 좌천된 이른바 ‘중견 KBS맨’들이 이념의 잣대에 따른 피바람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개혁적 세력들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들었다. 프로그램 개편 역시 공영성 강화라는 대의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좌파적 이념적 색채만 강해졌다는 혹평을 함께 받았다.
초기 그를 지지했던 세력은 “내부혁신과 개혁을 시도한 것은 옳았지만 독선적 경영과 노조와의 대립 등으로 문제를 드러냈다”고 평가했고 반대 세력으로부터는 “사내 분열화와 무능 경영으로 구성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공격을 받았다.
더불어 보수매체와 한나라당 등은 취임 초기부터 그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이른바 ‘탄핵방송’에 이르러서는 보수세력의 불만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개혁세력도 그가 방송협회장을 지내며 방송개혁 의제를 진전시키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 2006년 연임 과정에서 KBS 이사회와 노조가 합의했던 사장추천위원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한층 험로를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참여는 사실상 배제됐고 이사회와 노조의 대립만 깊어지는 결과를 빚었다. 노조의 격렬한 반대 속에도 정 사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수많은 상처만 남겼다.
KBS의 사활이 걸린 숙제라 할 수 있는 TV 수신료 인상 문제는 그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혔다. 한나라당은 KBS의 경영 적자와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선 개혁’ 없이는 수신료 인상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선 개혁은 사실상 정 사장을 조준했다.
지난 대선 결과 정권이 교체되면서 그에 대한 퇴진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최근 총선마저 한나라당이 압승하면서 퇴진 움직임은 가속도가 붙었다. 한나라당과 KBS노조는 정 사장 퇴진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다.
KBS노조는 정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최근엔 출근 저지운동까지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정 사장의 얼굴 인형을 갖다놓고 쥐어박고 때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수모에도 정 사장은 아직까지 스스로 물러날 의사를 보이고 있지 않다. 확대간부회의, 임원회의 때마다 “물러날 생각이 없다. 각자 동요없이 일해달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의 몇 차례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은 좌우 대결로 격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정 사장 사퇴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개혁세력 또한 정연주 사장 개인을 지지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를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프로그램의 첫 걸음으로 보고 순순히 응하지는 않을 태세다.
이런 와중에 과연 정 사장은 솔직한 생각은 무엇일까. 그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KBS 출신의 한 원로 언론인의 말을 들어보자.
“정 사장도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찌됐든 지금같이 정부가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단두대에 올리듯이 끌어내리려 한다면 본인이 마음이 있다 해도 물러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굴복하려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가 살아온 길은 승부의 연속이었다. 62년의 삶 동안 가장 절체절명의 기로에 놓인 정연주 사장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008년은 훗날 언론계가 그를 회고할 때 반드시 거론될 것이다.
장우성 기자협회보 기자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모습이다. 양심적이고 존경받는 언론인에서 자리에 집착하는 사장으로 몰리게 된 그의 운명은 KBS 사장 취임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평생 동안 적군과 아군이 명확했던 그가 지상파 방송의 핵인 KBS의 사장이 된 이상 일대결전은 불가피했는지도 모른다.
“KBS 동지 여러분”으로 시작됐던 그의 취임사는 적잖은 파란을 예고했다. 1980년대 ‘땡전뉴스’라고 불렸던 KBS에 운동권 용어인 ‘동지’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것도 사장의 입에서 나왔으니 더욱 충격이었다.취임사 곳곳에서도 그의 단호한 어조는 계속됐다. 그는 “다 같이 힘을 모아 우리 사회가 좀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데 KBS가 선도적 역할을 하자”는 말로 취임사를 맺었다.
▲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한 정연주 사장과 건배하는 모습(위). 아래는 2006년 노조원들의 제지를 뚫고 기습 출근하는 정 사장. 정 사장은 KBS 노조의 격렬한 반대 속 연임에 성공해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 ||
정연주 사장의 등장과 함께 KBS에는 급격한 변화의 파고가 일었다.
정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런 저런 로비를 통해 인사상 이익을 보려는 사람은 오히려 바로 그 로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단언했다. 실제 취임 초기 고등학교 동문인 몇몇 인사들이 접근하자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전임 박권상 사장 시절 전주고 출신 ‘전언회’가 각종 요직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됐다. 민주화세력이 주축이 된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극복하지 못했던 정실인사를 배제하려고 한 것이다. 인사에서도 세대교체를 과감히 시도했다. 팀제 개혁을 통해 비대한 간부조직에 메스를 들이댔다. 평기자들의 편집위원회 참가를 보장하는 등 일선 제작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도 시작했다.
개편을 통해서는 각종 개혁적 이념의 프로그램을 전진 배치시켰다. <한국사회를 말한다> <인물 현대사>와 <미디어포커스>가 대표적이었다.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정치, 언론, 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각종 개혁적 의제를 제시하는 특별 기획의 형태였다. <인물 현대사>는 6·10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이한열 씨의 어머니 배은심씨, 전태일 열사, 동아투위 안종필 위원장, 작곡가 윤이상 씨 등 그동안 방송에서 쉽게 다룰 수 없었던 민주화 인사들을 집중 조명했다. <미디어포커스>의 첫 방송 ‘KBS, KBS를 말한다’는 안팎의 화제를 불렀다. KBS가 군사정권 시대부터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권력의 외압에 쉽게 굴복했는지 진단하는 일종의 자기반성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에게는 참여정부의 이념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많은 개혁조치는 아군과 적군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논란을 가중시켰다. 인사 분야에서는 좌천된 이른바 ‘중견 KBS맨’들이 이념의 잣대에 따른 피바람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개혁적 세력들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들었다. 프로그램 개편 역시 공영성 강화라는 대의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좌파적 이념적 색채만 강해졌다는 혹평을 함께 받았다.
초기 그를 지지했던 세력은 “내부혁신과 개혁을 시도한 것은 옳았지만 독선적 경영과 노조와의 대립 등으로 문제를 드러냈다”고 평가했고 반대 세력으로부터는 “사내 분열화와 무능 경영으로 구성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공격을 받았다.
더불어 보수매체와 한나라당 등은 취임 초기부터 그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이른바 ‘탄핵방송’에 이르러서는 보수세력의 불만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개혁세력도 그가 방송협회장을 지내며 방송개혁 의제를 진전시키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 2006년 연임 과정에서 KBS 이사회와 노조가 합의했던 사장추천위원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한층 험로를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참여는 사실상 배제됐고 이사회와 노조의 대립만 깊어지는 결과를 빚었다. 노조의 격렬한 반대 속에도 정 사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수많은 상처만 남겼다.
KBS의 사활이 걸린 숙제라 할 수 있는 TV 수신료 인상 문제는 그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혔다. 한나라당은 KBS의 경영 적자와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선 개혁’ 없이는 수신료 인상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선 개혁은 사실상 정 사장을 조준했다.
지난 대선 결과 정권이 교체되면서 그에 대한 퇴진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최근 총선마저 한나라당이 압승하면서 퇴진 움직임은 가속도가 붙었다. 한나라당과 KBS노조는 정 사장 퇴진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다.
KBS노조는 정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최근엔 출근 저지운동까지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정 사장의 얼굴 인형을 갖다놓고 쥐어박고 때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수모에도 정 사장은 아직까지 스스로 물러날 의사를 보이고 있지 않다. 확대간부회의, 임원회의 때마다 “물러날 생각이 없다. 각자 동요없이 일해달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의 몇 차례 인터뷰에서도 그는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은 좌우 대결로 격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정 사장 사퇴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개혁세력 또한 정연주 사장 개인을 지지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를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프로그램의 첫 걸음으로 보고 순순히 응하지는 않을 태세다.
이런 와중에 과연 정 사장은 솔직한 생각은 무엇일까. 그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KBS 출신의 한 원로 언론인의 말을 들어보자.
“정 사장도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찌됐든 지금같이 정부가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단두대에 올리듯이 끌어내리려 한다면 본인이 마음이 있다 해도 물러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굴복하려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가 살아온 길은 승부의 연속이었다. 62년의 삶 동안 가장 절체절명의 기로에 놓인 정연주 사장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008년은 훗날 언론계가 그를 회고할 때 반드시 거론될 것이다.
장우성 기자협회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