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특히 정 장관 해임안이 ‘쇠고기 정국’의 향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는 사활을 건 투쟁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대여 강경투쟁에 단일대오를 형성한 야권 입장에선 ‘여대야소’ 정국을 앞두고 정국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호기로 삼겠다는 각오다. 반면 궁지에 몰려 있는 여권 입장에선 정 장관 해임안이 가결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맞물려 ‘사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정 장관이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쇠고기 파동과 한미 FTA 정국의 핵심 뇌관으로 부상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막말 파문으로 구설수에 오르는가 하면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락가락 행보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급기야 ‘사퇴’ 위기에 직면한 정 장관. ‘스타 농업인’ 출신으로 농림부 장관까지 오른 ‘성공 신화’의 주인공에서 새 정부 첫 해임 대상자란 불명예와 함께 책임론 논란에 휩싸여 어려운 처지에 놓인 정 장관의 파란만장 인생사를 되짚어 봤다.
정 장관이 이명박 정부 초대 농정 최고책임자로 내정됐을 때 ‘파격인사’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정·관계에서 그의 이름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고려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친이명박’계 인사로 분류돼 왔고 ‘영남 내각’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의식한 지역 안배 차원에서 호남(전북 고창) 출신인 정 장관을 발탁했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았다.
정 장관은 정·관계에선 무명이나 다름없었지만 농업계에선 꽤 유명인사로 통한다. 대학졸업(고대 농업경제학과) 직후인 지난 1981년 키위 재배를 시작으로 농업에 투신한 정 장관은 농산물시장 개방으로 국내에서 재배되던 열대 과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90년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을 설립, 뉴질랜드 키위를 국내에서 ‘참다래’로 안착시키는 데 성공해 일약 ‘스타 농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재래시장 구석에서 흙 묻은 채 판매되던 고구마를 세척 포장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기호·건강식품으로 변신시켜 고구마의 새로운 가치 창출에도 기여했다.
그후 그는 우리 농업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최소화시키는 거북선 농업을 통해 농업의 차별화, 전문화, 브랜드화 등 독창적 가치를 창출할 것을 주창하면서 농업계 지도자로 변신한다.
99년 농림부가 선정한 신지식농업인으로 뽑혀 한국신지식농업인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해 왔고 전남대 겸임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참다래 아저씨’로 소개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정 장관이 ‘키위 재벌’ ‘벤처농업계의 이건희’ 등 화려한 별칭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러한 유명세와 무관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계에서 ‘성공 신화’를 이끈 주역이었다면 정 장관은 농업계의 ‘성공 신화’로 통하고 있을 정도다. 이 대통령이 정 장관을 발탁한 배경에는 지역 안배 등 정치적 고려를 떠나 특정(농업) 분야에서 성공을 일군 정 장관의 능력과 전문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았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정운천 장관이 ‘쇠고기 청문회’에서 참모진과 밀담을 나누고 있다. | ||
실제로 정 장관은 농업인 출신답지 않게 27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정 장관과 부인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27억 1582만 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는 부인 최 아무개 씨 명의로 그랜저XG를 소유하고 있었고 주택은 정 장관 명의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소재한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아파트는 9억 8400만 원으로 등록돼 있다. 정 장관은 또 전남 해남군에 밭과 잡종지를 포함해 7443㎡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유가증권은 (주)이맛젤의 주식 3억 원과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과 맛젤영농조합에 7억 7100만 원의 출자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부·자 내각’이란 논란 속에 출범한 새 정부 첫 국무위원 16명의 1인당 평균 재산이 31억4000여만 원으로 집계됐다는 점에서 정 장관의 재산문제는 상대적으로 여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농업인 출신으로 27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다수 농업인들은 다소 의외라는 시선을 보낸 바 있다.
또 정 장관이 행정 경험이 전무하고 정치적 리더십이 검증되지 않은 만큼 한미 FTA 등 현안이 산적한 농림부를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 벅찬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정 장관은 취임 후 파격적인 발언으로 몇 차례 구설수에 오른 바 있고 쇠고기 문제에 직면해서는 오락가락 행보로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식품정책 관련 심포지엄은 정 장관의 막말 파문을 야기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이날 심포지엄의 본질과 다른 사적인 얘기와 자극적인 언행으로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이 같은 CEO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점이 장관으로 선임된 배경인 것 같다”고 정치적 발언을 하는가 하면 “처음에는 장관직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했지만 장관이 되고 나니 별것 아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는 특히 비만에 대한 식생활 정책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은 독약’이라고 말하는 등 식품산업 진흥이라는 중책을 맡은 수장으로서는 합당치않은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도 잦은 말 바꾸기와 무책임한 발언 등으로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민심을 자극시켰다. 지난 7일 국회 쇠고기 청문회장에서 정 장관은 “올해는 인간 광우병이 한 사람도 전 지구상에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광우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이명박 대통령과 마트를 돌아보며 생필품 물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
정 장관이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광우병 논란은 부안 사태와 같다”고 한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을 불렀고 인터넷에서는 ‘광우병 괴담’에 이어 ‘AI(조류인플루엔자) 음모론’까지 확산되면서 주무부서인 정 장관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은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카드로 정 장관과 여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정 장관 해임안과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꺼내 든 야권은 탄탄한 공조를 통해 국회 국정조사권까지 발동해 쇠고기 협상의 전 과정을 낱낱이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청문회를 계기로 쇠고기 협상이 졸속으로 추진됐고 국민건강과 생명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만큼 재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정 장관 해임안은 여론 향배와 맞물려 ‘쇠고기 정국’ 주도권을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재 야 3당의 의석 수(민주당 136석, 선진당 9석, 민노당 6석)를 모두 합치면 151석으로 수치상으로는 해임안 처리(과반 150석)가 가능하다.
하지만 17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본회의 보고 등 복잡한 절차를 감안하면 이번 임시국회에서 해임안을 처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권이 무리수를 둘 경우 ‘국정 발목 잡기’라는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다만 쇠고기 전면 수입에 따른 비판적 여론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여권이 파문을 차단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못할 경우 책임론과 맞물려 정 장관 해임안이 탄력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 식품안전을 담보로 여야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쇠고기 정국’에서 과연 그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