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0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염창동 당사를 방문,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 ||
강 대표로서는 속앓이를 할 만한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여건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당외 친박(친 박근혜 대표) 당선자들의 복당’ 논란으로 인해 정쟁의 한가운데 서야 했던 그는 친박 인사들에겐 ‘배척의 대상’이요, 당 내 일부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그룹에겐 ‘불가근 불가원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와 관련해 “대표 임기 내 절대 불가”를 외쳐온 그가 얼마 전 ‘고집’을 꺾은 것도 그의 달라진 여당 내 위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강 대표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한동안 숨고르기가 끝나면 그의 날갯짓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원외로 밀려나고 머잖아 당 대표 직함마저 넘겨줘야 할 강 대표에게 뭔가 미래의 ‘복안’이 있는 걸까. 강 대표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보며 그의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봤다.
#1 “억울한 측면이 많다”
“정치를 하다 보면 억울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강재섭 대표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한 소속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 축사를 통해 최근 자신의 심경과 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2년여 재임 기간 중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원만히 치르고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트리플 크라운’(3관왕)을 달성했다고 자랑해왔던 강 대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의 당내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일부에선 ‘식물 대표’라는 힐난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강 대표의 사정이 이처럼 어렵게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MB)과의 정례회동(19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날 회동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파동 등으로 MB의 국정 지지도가 20%대 초반까지 떨어진 위기 상황에서 당·정 수뇌가 마주 앉았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이래저래 할 말이 많았던 당에선 전략기획본부와 여의도연구소를 중심으로 국정쇄신안까지 마련했던 터다.
그러나 정작 MB와 마주 앉은 강 대표는 쇄신의 ‘쇄’자도 꺼내지 못했다. 오히려 △책임총리제 도입 등 권한 분산 △실무급 고위 당·정협의 도입 및 대통령 정책특보 신설 △인사·쇠고기 파동에 연루된 청와대·정부 관계자 문책 등 쇄신안의 내용이 언론에 사전 유출된 데 대해 “대통령께 누를 끼친 것 같아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당 내에선 당장 “비상시국에 여당 대표란 사람이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소장파 리더인 원희룡 의원은 “당 대표로서 대통령에게 국정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당의 위상과 역할이 선다. 그런데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 대표의 역할을 포기한 것에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심지어 전략기획본부장으로 강 대표를 보좌하는 위치에 있는 정병국 의원도 “당이 정국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데 언론의 보도대로 강 대표가 쇄신안을 건의하지 않았다면 당 대표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인지 우려스럽다”고 강 대표 비판에 가세할 정도였다.
강 대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화살에 몹시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회동 다음날인 20일 “요즘 이슈가 한미 FTA 협정이어서 대통령과 야당대표가 만나야 된다고 (대통령께) 건의했다. 이런 점을 언론에 강조하다 보니까 언론에서는 대표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당 내에선 강 대표의 얘기를 ‘변명’으로 받아들일 뿐 그 고충을 ‘이해’하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줄곧 양지만 좇아온 그의 정치인생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강 대표 덕택에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당무를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5공 시절’로 돌아가게 됐다”는 힐난만 더해졌다.
#2 ‘온실 체질’ 달갑잖은 별명
강 대표 본인에겐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에겐 ‘온실 체질’,‘해바라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줄곧 따라다녔다. 검사 출신으로 청와대 정무·법무비서관을 거쳐 만 40세가 되던 1988년 13대 국회에 전국구로 금배지를 단 후 17대까지 내리 5선을 기록하는 동안 그의 정치행보를 보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정치 초년병 시절 강 대표의 버팀목은 경북고·서울대 법대·검찰 선배인 박철언 전 의원이었다. 그는 박 전 의원의 사조직인 월계수회의 2인자였다. 그러나 ‘보스’인 박 전 의원이 1992년 10월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민자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탈당했지만 강 대표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지는 권력인 박철언을 버리고, 새로운 권력인 YS를 선택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1998년 8·31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 경선에 나서려다 주저앉은 것도 그에겐 감추고 싶은 과거다. 당시 강 대표는 강삼재·강창희 전 의원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업고 당권을 되찾으려는 이회창 명예총재에 맞섰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론’를 내세웠던 그는 대구·경북 정치권의 좌장이었던 김윤환 전 의원이 만류하자 중도에 사퇴해 버렸다. 만 50세의 강 대표에겐 당에서 ‘제왕적 존재’였던 이회창 총재와 정면에서 ‘일합’을 겨룰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강 대표의 처신을 놓고도 ‘신의’ 논란이 불거졌다. 2005년 3월 원내대표 경선, 2006년 7·11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승리했던 강 대표가 막상 경선 룰(rule)을 둘러싼 논쟁에선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에 편향된 듯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 지난해 9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 ||
#3 MB-박근혜 사이 ‘새우등’
한나라당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MB-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강 대표의 향후 정치행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강 대표에게 MB는 자신의 취약한 기반을 보완해 줄 후원세력이 될 수 있는 존재이고, 박 전 대표는 경쟁을 벌여야 할 상대이기 때문이다.
우선 MB와의 관계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강 대표가 ‘섬기는 자세’로 일관하면서 당분간 계속 우호적일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 MB는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 11일 정례회동에서 ‘조기 전당대회 반대, 당 대표 임기 보장’을 천명해 강 대표에 힘을 실어줬고 그후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내 문제는 강 대표를 중심으로 풀라”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당 내에선 18대 총선에 불출마해 곧 원외 신세가 될 강 대표의 향후 여권 내 입지는 MB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7·3 전당대회 이후 이렇다 할 역할을 찾기 어려운 형편인 강 대표가 MB가 후원한다면 총리직에 욕심을 낼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일부에선 강 대표가 최근 MB에게 ‘책임총리제 도입’을 건의한 것이 향후 자신의 입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강 대표도 총리직에 대한 의지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강 대표는 최근 한 사석에서 농담조로 “청와대에서 왜 총리 맡으라는 전화가 안 오지”라고 말해 눈길을 끈 바 있다. 한 측근도 “원외인 강 대표가 퇴임 이후 당에서 역할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의 행보를 생각하면 행정부 경험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러자면 강 대표가 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MB계 내에선 ‘강재섭 총리설’에 대해 “그쪽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냉담한 반응도 적지 않다. 한 중진은 “MB가 별다른 부채의식이 없는 강 대표를 위해 총리직을 주는 배려를 할 이유가 있느냐”고 했고, 수도권 소장파들도 “이미 강 대표의 리더십은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를 총리로 기용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셈이다.
그와 박 전 대표의 관계는 앞으로 더욱 더 경색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전망이다. 두 사람 사이는 대선후보 경선과 4·9총선, 뒤이은 한나라당 밖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를 놓고 회복불능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우선 박 전 대표 측은 강 대표가 총선 공천 과정에서 MB계의 ‘친박 대학살’에 동조했다는 인식이 강한 데다 복당 문제에서도 “내 임기 중 절대 불허”를 주장했던 점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남권의 한 중진은 “당내 경선 이후 강 대표의 행보를 지금 와서 곰곰이 따져보면 ‘박근혜 견제’라는 일관된 방향을 갖고 이뤄졌다는 생각”이라며 “신뢰를 중시하는 박 전 대표로선 앞으로 강 대표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마음을 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강 대표가 차기 대권을 노린다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고 말했다.
강 대표 측도 박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18대 총선에서 박 전 대표 측 원로인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이 강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서구에 출마하면서 둘 사이는 사실상 파탄이 났다는 분석이다.
한 측근 의원은 “강 대표는 홍 전 부의장이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것이 박 전 대표의 묵시적 동의나 방조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또 박 전 대표가 3월 23일 국회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공천 파동의 책임을 강 대표에 돌리고, 이에 강 대표가 당일 밤에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던 점을 거론하며 “박 전 대표가 자파 인사 몇 명 살리려고 애꿎은 강 대표를 제물로 삼은 격”이라고 밝혔다.
#4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우리 조상이 ‘강태공’이라 낚시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공직을 맡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길과는 완전히 다른,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의외다’ 하는 길을 갈 가능성이 많다.”
4·9총선이 끝난 후 강 대표가 한 사석에서 향후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 던진 말이다. 당 대표로 10년 만의 정권교체와 ‘원내 과반’을 일궈냈음에도 MB와 박 전 대표의 틈바구니에 끼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가정이지만 만약 강 대표가 18대 총선에서 당선돼 6선 의원이 됐더라면 이런 얘기를 꺼냈을까. 결코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이 강 대표를 잘 아는 인사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정계 입문 20년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탄탄대로를 달려온 강 대표가 처음 위기를 맞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니겠냐는 얘기다.
차기 대권 도전 여부와 관련해 강 대표는 “검사하다가 정치적으로 여기까지 와서 잘됐는데 내가 대통령을 꼭 하겠다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다른 걸로 승부를 걸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당 대표 임기를 마칠 때까지 임무에 충실하고 향후 계획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해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는다. 실제 그는 6월 중 자택이 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개인사무실을 열 계획이다. 또 강 대표와 가까운 사이인 황우여 나경원 이명규 이종구 정진섭 의원 등은 정계와 학계를 아우르는 재단법인 형태의 연구모임을 역시 6월 중 만들 예정이다. 당 내에선 벌써부터 이 모임이 앞으로 강 대표의 대권 도전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 대표의 향후 행로가 어떻게 될 지는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다. 어찌 보면 본인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 대표가 대권 도전에 마음을 굳힌다면 그의 나이로 보나 주변 여건으로 보나 2012년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란 점이다. 이 경우 박 전 대표와의 ‘조우’는 필연적이다. 묘하게 엉킨 두 사람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