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시련 속에서 얻은 ‘수확’
하지만 두 ‘고참’은 의장이 될 수 없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이 의원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의 형이다. 동생이 대통령인 마당에 형이 입법부 수장을 맡을 수는 없는 터.
50대 후반인 정 의원은 지난해 17대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한 데다 차기 대권주자의 위치다. 그는 7·3 전당대회에서 대표직을 노리고 있다.한나라당과 사실상 ‘한 몸’인 친박연대에도 두 6선 의원이 있다. 서청원·홍사덕 의원이다. 그러나 이들은 4·9총선 전 탈당한 이후 당적이 없는 상태. 만약 두 사람의 복당이 앞당겨졌다면 의장 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공천 파동’이 일기 전까지 한나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의장 후보는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김 의원의 고교(경남고)·대학(서울대) 선배인 박 전 부의장은 18대 총선에서 당선됐다면 6선으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0순위’ 후보였다.
그러나 박 전 부의장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졸지에 목표를 잃어버린 박 전 부의장은 차기 당 대표를 놓고 정 의원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박 전 부의장이 의장 경쟁에서 멀어진 후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 이는 강창희 전 의원이었다. 5선 고지를 넘어 18대 총선에서 6선을 노렸던 강 전 의원. 그러나 그는 충청권을 강타한 자유선진당 바람에 지역구(대전 중구)에서 고배를 마셨다. 선거기간에 강재섭 대표가 지원유세를 통해 “강창희가 당선되면 18대 국회에서 의장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별 무소득이었다.그러나 김 의원에게 행운만 따랐던 것은 아니다. 위기도 있었다. 지난 총선에서 김 의원은 지역구(부산 영도)에서 무난하게 당선되리라던 예상과 달리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에 신승(辛勝)했다. 그가 얻은 표는 2만 4426표로 2위인 무소속 김용원 후보(2만 3458표)와의 격차는 불과 968표였다. 부산에서 몰아친 ‘박근혜 바람’의 영향이었다.
사실 김 의원은 5선을 하는 동안 쉽게 선거를 치른 적이 별로 없다. 17대 총선(2004년)에선 공천을 놓고 이영 전 부산시의회 의장과 경선을 벌여 가까스로 승리했다. 본선에선 ‘탄핵 역풍’으로 당시 열린우리당 김정길 후보(전 행정자치부 장관)에 뒤지다 막판에 뒤집기에 성공했다. 표차는 겨우 2540표(김 의원 3만 9235표, 김 후보 3만 6695표)였다.
2000년 16대 총선에선 선거기간 중에 김 의원이 ‘삭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역시 김정길 후보(민주당)와 맞붙었던 당시 김 후보 측이 김 의원의 수뢰 의혹을 폭로하면서 판세가 요동칠 기미를 보이자 투표일 하루 전에 ‘결백’을 호소하며 스스로 머리칼을 잘랐던 것. 이제 국회의 수장이 될 김 의원으로서는 아련한 추억일 테지만 말이다.
이준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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