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귀환한 강만수 장관은 고환율 정책의 실패로 야당으로부터 내수 침체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현재 들끓고 있는 강만수 장관 비토론의 핵심은 환율정책에 있다. 강 장관은 지난 2005년 외환위기를 회상하며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이란 책을 집필했다. 이 책에 담긴 이른바 ‘환율주권론’을 강 장관은 지난 2월 29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여지없이 풀어놓았다.
“경상수지는 그 나라 경제의 종합건강지수이고 환율은 나라경제를 지키는 주권이며 환율 관리는 경제적 대외 균형을 지키지 위한 주권행사다.”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 이익이 늘어나고 이는 곧 경상수지 개선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주무부처 장관이 환율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이 공개되면서 환율은 즉각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다. 새 정부 출범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17일엔 원-달러 환율이 2년 2개월 만에 1000원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고환율정책은 물가상승으로 인한 내수경기 침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물론 미국발 신용위기와 고유가도 한몫했겠지만 일반 시민들의 비난은 현 정부 경제팀 수장인 강 장관에게로 향했다. 그럼에도 강 장관은 한동안 “수입물가 상승으로 초래되는 물가 불안은 어느 정도 용인해도 수출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 달성을 위해 1000원 내외 환율 유지가 좋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제부처 안팎과 재계에선 강 장관의 이 같은 ‘환율 매파’적 성향 배경을 10년에 걸친 그의 야인생활에서 찾기도 한다. 외환위기가 찾아온 1997년 당시 강 장관은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다. 외환위기 주범이란 낙인이 찍혀 이듬해 퇴임 이후 별다른 전관예우도 받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10년 만에 귀환한 강 장관이 ‘단기간 내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강 장관을 ‘올드보이’라 일컫는다. 이 별명엔 강 장관의 경제정책이 1970년대 스타일이라 꼬집는 시각도 담겨있다. 경상수지 확대를 위해선 환율을 올려야 한다는 강 장관의 지론을 일부 경제학자들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비판하는 것이다. 수출품 가운데 가격으로 승부하는 제품의 비중은 날로 줄어드는 추세라는 분석이다. 오히려 물가급등으로 내수가 위축되고 외채 쓰는 기업의 빚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논리다.
강 장관의 뚝심은 관가에서 유명하다. 1977년 재무부 직접세과 과장 시절 반대의견이 많았던 부가가치세(VAT) 도입을 고집스럽게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서슬 퍼렇던 유신 시절 고위관료가 아니었음에도 옳다고 믿는 일을 밀어붙여 결국 호평을 이끌어낸 이 일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보여준 그의 뚝심은 30년이 지난 지금 아집으로 비치기도 한다.
강 장관 취임 이후부터 그에 대한 적극 지지보다는 비토 목소리가 더 많았다.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만이 유일한 후원자’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려온다. 강 장관은 여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도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0.7%로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가 나오면서 내수 부진과 일자리 부족, 글로벌 금융 위기 등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된 바 있다. 이에 강 장관은 “하반기 세계경제 하강으로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기 전에 지난해 거둔 세금으로 (4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을 조성하자”고 주장했다.
한데 이를 저지한 것은 다름 아닌 여당이었다. 당시 당 정책위의장이었던 이한구 의원이 “야당 시절 무분별하게 추경을 못 짜도록 요건을 엄격히 해놓고 이제 집권했다고 요건에 없는 추경을 편성할 수 없다”며 반대해 결국 지난 국회에서 추경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었다. 여당 내 강 장관에 대한 비판적 기류는 지난 7월 23일 국회 정부 경제정책 긴급현안질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은 “6·8 고유가 대책인 ‘국민 1인당 2만 원 환급’ 조치는 효과도 없이 10조 원만 넘는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고 비판했다.
▲ 지난 6월 16일 아셈 회의 참석차 제주컨벤션센터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강만수 장관, 크리스티네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과 이야기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
손발이 척척 맞아도 시원치 않을 한국은행과의 금리갈등도 문제였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동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한국은행을 향해 기획재정부는 지속적으로 투자 유치를 위한 금리 인하 주장을 폈다. 물가 오름세는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므로 중앙은행의 유동성 관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가 경상수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폐쇄 경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유가와 환율 상승으로 물가 불안이 커져 금리 인하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펴왔다. 결국 한국은행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강 장관의 고환율정책이 물가불안 원인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빌미가 됐다.
정책 실패에 따른 강 장관 해임 논란이 불거졌지만 지난 7·7 개각에서 강 장관은 유임된 반면 그의 복심이랄 수 있는 최중경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경질됐다. 최 전 차관은 환율주권론자인 강 장관의 정책을 앞장서 수행해오다 낙마해 ‘대리 경질’ 논란을 낳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조직 개편을 통해 총리실에서 가져온 정책조정 기능을 다시 총리실에 넘겨주면서 기획재정부의 위상이 약화된 점 또한 강 장관의 자존심을 구긴 대목이다.
최근엔 학계도 강 장관 비토 대열에 동참하고 나섰다. 경제·경영학자 118명은 지난 7월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강 장관의 경질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혁승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등은 성명을 통해 “현재의 경제 위기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세계 경제 침체 등 대외적 환경 악화와 정부의 대응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며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이래저래 몰린 강 장관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나가는 배경으로 정·관계 인사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꼽는다. 현 정부 1기 경제팀을 이뤘던 강 장관과 김중수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삼두마차 중 옷을 벗지 않은 사람은 강 장관뿐이다.
강 장관은 1982년부터 소망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소망교회 내 금융인사 모임인 ‘소금회’ 활동을 통해 교분을 두텁게 다졌으며 이때부터 강 장관은 이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 역할을 맡아왔다는 후문이다. 야인으로 지내던 강 장관은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부름을 받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직에 앉으면서 7년 ‘백수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26년간 이 대통령 곁에서 경제 참모 역할을 해온 강 장관에겐 지난 대선 기간부터 ‘MB 경제브레인’ ‘리틀 MB’ 같은 수식어들이 뒤를 따랐다. 강 장관이 이 대통령의 간판 대선공약이었던 ‘대운하 건설’과 ‘대한민국 747’(연 7%대 경제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 달러 실현, 세계 7대 경제강국 진입) 등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결국 강 장관이 낙마하면 이 대통령 스스로 ‘MB노믹스 실패’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는 셈이라 유임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파문 등으로 지지율을 크게 깎아먹은 이 대통령의 비호가 강 장관을 언제까지 지켜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선 강 장관이 메가뱅크(초대형은행) 방안을 통해 시장의 신뢰 회복을 도모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강 장관이 취임 초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시도하려다 반대에 부딪친 메가뱅크 설립 논의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까닭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황영기 KB지주 회장 내정자와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최근 M&A를 통한 초대형 금융사 설립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메가뱅크 전도사로 불리는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청와대 경제수석 기용도 강 장관의 입지를 넓혀줄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금산분리 완화 추진과 맞물려 메가뱅크 설립이 재벌의 은행 지분 참여 논란을 낳을 경우 이에 대한 여론은 아직 미지수다.
강 장관과 재계와의 긴밀한 협조 여부도 관심사다. 강 장관은 최근 “내년 하반기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재벌의 투자 고용 확대를 이끌어내 내수경기 침체 극복을 도모해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려 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이 이번 광복절 특사 명단에 포함될 것으로 거론되는 만큼 모처럼 고조된 재계 분위기를 어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듯하다.
그러나 고환율정책이 단기적 수출수익 극대화 전략이란 비난을 받은 만큼 강 장관이 수출을 주력으로 삼는 친 재벌적 스탠스가 야권의 반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다 보니 경제부처 일각에선 “강 장관이 뭘 해도 욕먹는 상황”이라며 혀를 찰 정도다. 뚝심으로 버텨온 강 장관이 ‘사면초가’라는 수식어를 날려버리기 위해 어떤 카드를 꺼내들까. 물론 이는 그의 향후 거취와도 직결될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