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중 통일부 장관(왼쪽), 이태식 주미대사. | ||
김 장관은 주중공사, 아태국장 등을 지낸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과 주중대사를 지내는 등 권력의 부침에 상관없이 정권의 신임을 받아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2000년 8월 외교안보수석으로 수직 상승하는 등 김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속에 대북포용정책을 비롯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조율한 바 있다.
김 장관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5년 내내 주중대사를 맡아 ‘외직’에 머물렀다. 2001년 10월 주중대사로 부임해 무려 6년 4개월간 주중대사를 맡아 최장수 주중 대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그는 김대중 정부 당시 햇볕정책을 적극 옹호한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태식 대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9월 옛 안기부 불법도청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한 홍석현 전 주미대사 후임으로 발탁됐다. 당시 외교부 제1차관을 맡고 있었던 이 대사의 발탁은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주미대사는 우리나라 외교의 중심으로 불리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 대사’ 중 가장 비중 있는 자리로 인식돼 왔다는 점에서 그동안 외교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초중량급 인사들이 주로 임명돼 왔다.
특히 이 대사는 노무현 정부 때 승승장구한 몇 안 되는 외교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차관보로 임명된 이후 2003년 주영대사를 거쳐 2005년 1월 제1차관에 올랐고 같은 해 9월 수석 장관급인 주미대사로 발탁되는 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이 대사의 고속 승진 배경에는 그가 주영대사로 재직하던 시절인 2004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방문 했을 때 ‘지상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깔끔하게 업무를 추진해 노 전 대통령의 환심을 샀던 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유·김 장관과 이 대사는 정권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보이지 않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직업외교관의 길을 걸어왔다.
유명환 장관과 김하중 장관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도 외교부 내부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외교부 입부 후 각각 북미 라인과 아태 라인의 대표주자로 입지를 확보하면서 내부 승진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유·김 장관에겐 노무현 정부 때 외직으로 떠돌다 현 정부 초대 외교부·통일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로 인해 외교안보정책에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유 장관은 외교부가 이명박 정부의 실세 부서로 자리매김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김 장관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거세지고 있는 중국의 비중을 고려하면 6년 넘게 주중대사를 역임한 자신의 노하우가 빛을 보게 될 것이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통일부의 위상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가 일각에선 잇따른 외교안보 실정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가 총체적 난맥상을 야기하고 있는 배경에 두 사람의 이러한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외시 동기인 이 대사까지 포함하면 현 정부 외교안보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사 3명이 ‘서울대-외시 동기 카르텔’로 묶여 있다는 점도 외교안보라인에 진취적인 대안 찾기보다는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해진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