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의원회관에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홍삼 절편이 배달돼 작은 소동이 일었다. 사진은 김영란법 시행 전인 9월 6일 의원회관 복도에 가득 쌓인 추석 선물 택배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불특정인이 홍삼 절편 등을 택배나 인편으로 선물하고 있다고 한다. 법 취지에 부합해 의정 활동에 임하겠지만 불법적 행태가 발견되면 반송하거나 거절 등의 의사표현을 명확히 밝혀 달라.’ 10월 중순경 민주당 보좌진 협의회(민보협)가 소속 보좌진들에게 보낸 메시지 일부다.
복수의 의원회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10월 중순 무렵 국회 의원실로 발신인을 확인할 수 없는 홍삼 절편 등이 의원실 앞으로 도착했다고 한다. 꺼림칙한 마음에 대부분 반송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보좌진들 사이에선 특정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함정 취재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보좌진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이 여러 개다. 상임위, 친목 등 그 목적에 따라 여러 개에 속해 있다. 애초에 누가 돌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단체 채팅방에 ‘지금 홍삼 선물이 돌고 있는데 함정이다’라는 식의 연락을 받았다. 그 메시지가 퍼진 지 얼마 안 돼서 민보협 측에서 (앞서의) 공지 메시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민보협 관계자는 “우상호 원내대표실에서 얘기가 나왔다. 우 대표실에서 홍삼 절편 선물을 받은 뒤 발신인이 불분명해 반송했는데 ‘특정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함정 취재를 하는 것 같다’며 민보협에 확인 요청을 해왔다. 확인 작업을 거친 뒤 민보협 차원에서 ‘불명으로 온 택배는 반송하라’고 전체 공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문이 커지자 국민의당 또한 보좌진들에게 지침 사항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우 대표실 관계자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의원실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며 (우리가) 근원지라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특정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함정 취재 소문에 대해 보좌진들은 ‘너무하다’는 반응이었다. 앞서의 야당 보좌관 말이다. “함정 취재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치사하다. 택배가 왔다는 연락이 오면 비서나 인턴 등이 찾아온다. 그런데 이들이 발신인 정보를 알 리 만무하다. 의원실로 온 택배인 만큼 일단 무조건 의원실로 가지고 온다는 얘기다. 그 점을 노린 것 같다. 선물 상자를 들고 의원실로 올라오는 장면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선물을 다시 반송한다고 해도 의원실까지 올라온 이상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일단 구설수에 오르면 난감하지 않겠느냐.”
의원회관으로 오는 모든 택배는 1층 면회실 옆에 보관된다. 의원회관 보안팀 관계자는 “의원실로 택배가 오면 전화를 해서 찾아가라고 한다. 홍삼 절편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 일일이 다 확인하지 않아 모르겠다”고 답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들은 ‘홍삼 주의보’에 관한 풍문만 알 뿐 실체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민보협 관계자가 “야당 쪽에선 실제 선물을 받은 몇몇 의원실이 확인됐다”고 말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홍삼 선물이 주로 야당 의원실에 선물됐을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정체불명의 홍삼 절편을 주의하라’는 당부 문자가 보좌진들 사이에 돌았다. 나 또한 문자 내용이 사실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주변에 실제 홍삼 절편 등을 받은 의원실은 없었다. 함정 취재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특정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청탁금지법 위반을 노린 이른바 ‘란파라치’ 소행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의원회관 출입 절차 등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이 주를 이룬다. 이처럼 홍삼 선물을 두고 여러 추측들이 나도는 것은 그만큼 청탁금지법이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좌관들은 청탁금지법을 계기로 달라진 국회 풍경을 들려줬다. 앞서의 야당 보좌관은 “우리끼리 우스개 소리로 ‘사육당한다’고 말할 정도로 국정감사 기간엔 의원실로 엄청난 양의 치킨, 피자 등이 배달되곤 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뒤 열린 이번 국정감사에선 그런 진풍경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보좌관도 “지금까진 ‘어련히 안 보내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번 일을 보니 악의를 품은 개인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특히 지역 사무소에 발신인 불명의 택배가 많이 오는데 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