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귀신도 놀랄 점쟁이
일본과의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이 열린 22일. 김경문 감독이 7회 말 1루에 출루한 이대호 대신 정근우를 대주자로 투입할 때 한국 기자들 사이에선 작은 소란이 있었다. 만약 7회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한국으로서는 9회 말 다시 한 번 타석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대호를 벤치로 불러들이며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경문 감독은 다시 한 번 선택을 했다. 박진만을 빼고 대타 이진영을 투입한 것.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이진영은 감독의 선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진영의 다소 짧은 안타. 2루 주자 정근우는 바람처럼 홈으로 돌진했고 간발의 차로 세이프. 천금 같은 동점타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9회 공격을 생각하고 이대호를 남겨 놨더라면 결코 홈 쇄도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김경문의 이 같은 판단은 한두 번이 아니다. 올림픽 기간 내내 극심한 부진으로 고개를 떨궜던 이승엽에게는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오히려 4번타자 자리를 내줬다. 일본전 첫 세 타석에서 삼진-병살타-삼진으로 물러났지만 김 감독은 이승엽을 끝까지 믿었다. 그리고 이승엽은 역전 결승 홈런을 쳐내며 김 감독의 선택에 보답했다.
일본전 마무리는 윤석민이 맡았다. 김 감독이 베이징 입국 직전 자신의 소속팀 선수인 임태훈을 포기하면서 대신 대표팀 유니폼을 입혔던 바로 그 윤석민이었다.
김경문은 이런 사람이다. 혹자들이 김경문 감독에 대해 “‘덕장’도 ‘용장’도 ‘지장’도 아닌, ‘운(運)장’”이라며 비아냥대는 것은 김경문의 탁월한 선택과 예측력을 폄하하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보는 이를 아연실색케하는 혜안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진정한 명장,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선수 기용 철학과 탁월한 용병술로 ‘김경문식 야구 스타일’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그. 그가 바로 ‘생각대로 하면 되는’ 김경문 감독이다.
귀공자 스타일이다?
김경문 감독은 소위 말해 ‘먹어주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서구적인 마스크는 나이에 비해 훨씬 어린 모습이고 살짝 웨이브진 머리는 세련되기 그지 없다. 외모뿐만이 아니다. 딱딱 떨어지는 김경문 감독의 멘트는 끊어지는 법이 없고, 취재진이 가장 인터뷰하기 좋은 언변을 지니고 있다.
누가 봐도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을 것 같은 귀공자형 외모. 고생이란 단어와 별다른 인연이 없어 보이는 김 감독이지만 ‘58년 개띠’ 김경문의 과거 이력을 보면 이 같은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김 감독은 인천 송림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졸업은 야구명문 대구 옥산초등학교에서 했다. 그리고 엉뚱하게 부산 동성중을 졸업했다. 이어 야구부를 창단한 공주고로 진학한 뒤 학창시절의 마지막은 서울의 고려대에서 장식했다.
강원도와 전라도를 빼곤 전국을 다 돌아다닌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학교 외에도 김 감독이 다닌 학교는 더 많다. 모두 야구를 하면서 옮겨 다녔다. 일반학생도 아닌 운동선수가 이처럼 여러 지역의 학교를 섭렵한 건 매우 특이한 경우다. 입학과 졸업을 한 학교에서 시작해 마친 건 고려대가 유일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당했을 설움은 상상을 불허한다. 김 감독이 공주고 3학년 때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 공주고는 1977년 대통령배대회에서 투수 오영세, 포수 김경문 배터리의 절대적인 활약으로 창단 첫 우승이자, 충청도 팀으론 처음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포수 김경문은 이어 열린 청룡기대회 충청남도 예선에서 수비도중 라이벌 학교의 타자가 휘두른 방망이에 뒤통수를 맞고 수술을 받았다. 당시엔 포수가 헬멧을 쓰지 않았다. 김경문이 빠진 공주고는 그해 단 한 차례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김경문 감독이 선수 시절 당했던 시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고려대 시절 겨울훈련을 하던 도중 허리를 다친 김 감독은 다리가 저리고 마비 증상이 오면서 병원에서 운동을 그만두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김 감독은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실업팀 한일은행 입단을 결심한다. 그러던 중 프로가 출범했고 김 감독은 “1년이라도 후회 없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OB에 입단했다.
프로에서 뛰면서 김 감독은 매일 같이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김 감독의 주변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항상 반쪽 얼굴이었던 김경문의 모습을 기억한다. 김 감독은 “당시 허리가 아파 밤새 뒤척이다 출전했다. 경기 나가면서 이번 게임 뛰고 관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김경문 감독은 자신을 스스럼없이 ‘잡초’라고 표현한다. 평소 술자리에서 “나처럼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이따금씩 늘어놓곤 한다. 주위 사람들은 김경문이란 사람에 대해 “의리가 있고 정이 많다. 반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감정표현에 서툴다”고 평가한다.
▲ 23일 결승에서 쿠바를 물리친 김경문 감독이 시상식을 마치고 강민호가 걸어 준 금메달에 키스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스타를 싫어한다?
올해 초, 시즌을 앞둔 김경문 감독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몇 해 동안 두산을 이끌어 오다시피했던 홍성흔, 안경현 등을 모조리 팀 전력에서 제외시키면서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받은 것이다. 이러다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두산 관련, 그리고 김경문 감독과 관련한 기사가 터져 나왔다. 김동주는 구단의 4년간 62억 원 제의를 거절하고 일본 진출을 타진했다. 홍성흔은 트레이드를 공식 요청하고 개인 훈련에 돌입했다. 전지훈련 명단에서도 제외된 안경현은 긴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두 돌아왔다. 김동주는 친정과도 같은 두산에서 마지막 1년을 불사르고 있고, 외야수 훈련을 받고 있는 홍성흔은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묵묵히 기회를 기다렸던 안경현은 김 감독의 부름을 받고 큰형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김 감독은 스타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 2004년 두산 사령탑을 맡은 이후로 줄곧 두산을 상위권 강팀으로 조련해 왔다. 김경문 감독은 수십억 원을 써서 FA를 영입하지 않았다. 팀을 떠나는 FA를 잡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손시헌과 임태훈을 발굴했고, 김현수 이종욱 고영민을 국가대표로 길러냈다. 다른 팀에서 방출당한 이대수를 키워 주전 유격수로 기용했고, 올해는 김재호 오재원 등 신예들이 두산의 페넌트레이스 2위 질주를 이끌고 있다.
김경문 감독의 눈은 언제나 아래를 향하고 있다. 흙 속에서 진주를 캐내는 그의 혜안은 탁월하기 그지없다. 내년에는 또 어떤 무명 선수가 두산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게 될지, 누가 ‘김경문의 황태자’로 스타덤에 오를지, 무한한 가능성이 김경문의 손 안에 언제나 열려있다.
오만한 감독이다?
김경문 감독은 지난해부터 김성근 SK 감독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두산 원투펀치 리오스와 랜들의 보크성 투구 문제로 설전을 벌이며 극도로 악화됐던 두 사제지간 감독의 관계는 올해 들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지난 4월 19일 두산과 SK전에서 양팀의 해묵은 감정은 폭발했다. 두산 김재호의 거친 슬라이딩으로 SK 유격수 나주환이 스파이크에 채이며 유니폼이 찢긴 채 땅바닥에 뒹굴자 김성근 감독은 강력하게 항의했고, 이후 코치진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자 김경문 감독까지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왔다.
김경문 감독이 경기 후 “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있다”고 말했고 김성근 감독은 다음날 “야구인지 격투기인지 모르겠다”며 발끈했다. 두 감독 사이에는 해묵은 앙금이 있다. 김성근 감독이 3월 말 “김광현이 대표팀에서 투구자세가 흐트러졌다”고 하자 김경문 감독이 “그럼 김성근 감독이 대표팀을 맡으면 되겠네”라고 답한 것.
김경문 감독이 OB베어스에서 현역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김성근 감독의 제자였다는 점에서 김 감독은 불리한 코너에 몰렸다. 김인식 한화 감독을 비롯해 야구계 원로들이 잇달아 쓴소리를 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경문 감독이 겸손함을 잃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 감독이 적어도 잠시의 성공으로 위아래도 분간 못할 만큼 오만한 성격의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경문 감독은 베이징올림픽에서 김광현을 마운드의 에이스로 내세웠고 정대현을 마무리로 활용했다. 내야수 정근우는 타순과 수비 위치를 가리지 않는 멀티플레이로 김 감독의 숨통을 트이게 해줬고, 이진영은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천금 같은 동점타를 터뜨렸다.
모두 앙숙 관계인 SK 선수들로 이들에게 큰 빚을 진 셈이 됐다. 그 빚을 갚는 가장 빠른 길은 아직도 불편한 관계인 김성근 감독과의 빠른 화해임을 김경문 감독 자신도 가장 잘 알고 있다.
알고보면 로맨티스트
김경문 감독이 사령탑을 잡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조성일 홍보팀장은 “김경문 감독의 취미는 영화감상입니다. 영화 중에서도 액션과 스릴러보다는 로맨틱한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죠”라고 귀띔한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외모에 딱 맞는 취향이지만 ‘잡초’와도 같았던 그의 인생에 빗대어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잡초’ 같은 인생을 살아온 김경문 감독이 진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인생의 깊이를 성찰케 만드는 사색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김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역시 <인간극장>이란다. 가장 평범한 인생에서 열심히 노력해 결국 성공하고야 마는 무명 선수들을 선호하는 그의 취향과 많이 닮았다.
김 감독은 지난해 포스트시즌 두산의 경기에 와서 열띤 응원을 펼친 가수 김장훈에게 보답하기 위해 올해에는 콘서트를 꼭 한번 찾기로 했다. 가수 왁스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야광봉을 흔들며 박수를 치고 젊음을 즐겼던 ‘멋진’ 김경문 감독. 올해는 그가 2시간 넘게 스탠딩으로 진행되는 김장훈 콘서트에서 열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이징=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