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현 민주당에 정치적 뿌리를 둔 전직 대통령으로 적잖은 애증관계를 쌓아 왔다. 노 전 대통령은 DJ가 집권하던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는 등 DJ의 막후 지원을 등에 업고 대권주자로 입지를 구축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DJ의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직후 노 전 대통령이 DJ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고 있는 햇볕정책과 관련해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4년 1월 열린우리당 창당과 민주당 분열이 현실화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참여정부의 개혁 태풍에 동교동계와 DJ의 측근들이 대거 사법처리된 점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참여정부 중반까지 서로 앙금을 쌓아온 두 사람의 관계는 2007년 대선정국이 다가오면서 화해무드로 급전환됐다. 민주당의 법통을 계승한 두 사람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정권재창출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고 민주개혁 세력의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위기론이 작용된 것으로 풀이됐다.
노 전 대통령은 권노갑 전 고문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DJ 측근들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고 DJ는 노 전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DJ-노무현 대권 밀약설’이 나돌았던 것도 호전된 두 사람의 관계 복원과 맞물려 있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참패를 당하고 10년 만에 야당 신세로 전락했다. DJ에 이어 야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6개월여 동안 지방생활에 적응하며 현실정치 개입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2.0을 개설하고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여가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또다시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형국이다. 노 전 대통령이 9월 22일 사이트를 통해 “호남의 단결로는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는 이른바 ‘호남 발언’을 놓고 동교동계와 친노 그룹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DJ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 등 동교동계와 구 민주계는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분노하고 있는 반면 친노 그룹은 “충정에서 나온 말”이라며 확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다만 영남 출신인 윤덕홍 최고위원은 9월 25일 “박지원 의원의 발언에 영남 당원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영남이냐 호남이냐’ 또는 ‘친 DJ냐 친노냐’로 싸운다면 당에는 미래가 없다”며 동교동계의 과잉반응에 일침을 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여야 정치권은 물론 동교동계와 친노 그룹 간의 감정 대결로 비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굴곡 많았던 DJ와 노 전 대통령의 애증관계가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재개 움직임과 맞물려 또 다른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