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낙태약의 상표명으로 SNS 해시태그를 검색하자 나온 한 웹사이트에서 기자가 상담원과 나눈 대화 가운데 일부분이다. 이 웹사이트는 소위 ‘물뽕’으로 불리는 여성용 최음제와 흥분제, 발기부전제 등을 주로 판매하는 곳인데 SNS를 통한 사이트 홍보용 해시태그로 국내에서는 불법인 낙태약의 상표명 ‘미프진’을 붙였다. 그런데 사이트 내에 미프진을 판매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상담원에게 넌지시 “미프진을 파느냐”고 묻자 상담원은 위와 같이 답변했다. 이 상담원은 “가끔 손님들 중에 구하시는 분이 있어서 해시태그를 붙여놓은 것”이라며 “‘물뽕’을 사서 사용했다가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할 때를 위한 보험이다”라고 설명했다. 불법 낙태약을 구매하는 고객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사이트는 단골손님이 구매를 원할 때마다 미국과 호주를 통해 직구로 소량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웹사이트에 직접 판매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불법 약 판매 사이트 상담원이 흥분제와 낙태약을 세트로 살 것을 권유했다. 기자와의 실제 대화 내용을 수위를 낮춰 재구성했다.
낙태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수입금지 품목으로 분류되는 미프진은 경구낙태제로 약물 성분명은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이다. 30년 전 프랑스의 제약회사 RU(Roussel Uclaf)에서 개발해 1988년부터 인공임신중지용 약물로 승인됐다. 주로 임신 11주 미만의 임산부들이 복용하며, 하혈을 유도해 자궁에 착상돼 있는 수정란을 탈락시켜 자궁 밖으로 사출시키는 방식으로 이용된다. 2016년 현재 총 61개 국가에서 식약청에 등재돼 사용되고 있으며 임신중지 성공률은 99%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된 약물로 보이지만 법으로 전면 금지된 대한민국에서는 음지에서만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경우 의사의 처방 없이도 손쉽게 살 수 있어 악용되기 쉽고, 낙태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일부 고객들이 경찰에 신고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을 노려 정품이 아닌 중국산 낙태약을 미프진으로 속여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짝퉁 미프진’을 100여 명이 넘는 여성들에게 판매한 업자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 미프진을 판매하는 웹사이트는 ‘약국’이나 ‘병원’의 이름을 걸고 영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 이미지 사이트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의사나 병원 내부의 사진을 이용해 웹사이트를 꾸며놓은 것에 불과했다. 이들은 마치 국내 의료기관에서 확실하게 안전성을 보장받은 것처럼 임신중절수술과 미프진을 이용한 낙태의 차이점을 알리고 미프진 장점을 홍보하기도 했다. “미프진 판매는 불법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임신중절수술도 불법으로 암암리에 하는 거다. 이것(미프진 판매)과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답변했다. 일부 사이트들은 자신들이 ‘불법’으로 미프진을 유통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하며 “불법이기 때문에 신용카드로 구매하면 기록이 남아 안 된다. 반드시 현금으로 지불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의료기관을 표방하며 미프진을 판매하고 있는 국내의 한 업체 광고.
미프진은 간단하게 먹는 약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이미 착상된 수정란이 완전히 몸 밖으로 나올 때까지 여성은 생리통 이상의 복통과 하혈에 시달려야 한다. 이처럼 여성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을 받고도 조심스럽게 복용하는 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미프진 판매업자들은 “마약성 최음제와 함께 복용해도 상관없다. 원래 그렇게 먹는 약”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답변까지 내놨다. 이후의 여성이 겪어야 할 신체 부작용은 상품 판매에 밀려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이들이 판매하는 흥분제 가운데에는 마약류에 포함되는 환각제(러쉬), GHB(물뽕) 등이 포함돼 있었다.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위반에 해당한다. 여기에 불법 낙태약까지 함께 판매함으로써 충분히 국내 법망에 걸려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사이트는 지속적으로 웹 주소(도메인)를 바꾸고 있어 추적이 쉽지 않다는 것이 수사기관의 입장이다. 이들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홍보를 지속하면서도 주기적으로 도메인을 변경하고 있다. 이전에 쓰던 도메인은 아예 버리거나 자신들과 관련 없는 전혀 다른 웹사이트로 바꿔 또 다른 운영자에게 판매하는 식이다. 웹사이트 서버 역시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두고 있어 설사 사이트를 찾더라도 운영자들의 행방까지 추적하는 것은 어렵다. 더욱이 이들은 교묘하게 국내 포털사이트가 아니라 구글 등 외국 사이트를 통해서만 웹 검색에 걸리도록 함으로써 ‘아는 사람’들만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한 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 관계자는 “마약류나 불법 약품을 거래하는 사이트는 주무처인 식약처에서 관리하게 되는데 보통 사이트 접속을 금지시키거나 폐쇄하는 등 소극적인 대처에 머문다. 이 때문에 주소를 바꾸고 판매를 재개하는 불법 사이트를 끝까지 추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