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아직 바닷속에 있는데 제 손으로 인양할 수 없으니까 집회라도 나가고 그림이라도 그렸던 겁니다. 저는 앞으로도 집회에 나가고 예술작업도 할 것입니다. 이곳은 거대한 감옥 같아요” 지난 21일 검찰로부터 징역 1년 6월을 구형받은 사회적 예술가 홍승희 씨가 재판 이후 SNS를 통해 밝힌 심경이다.
홍 씨는 지난 2014년 8월 15일 서울역 인근에서 진행된 ‘여우비 프로젝트’ 예술행진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세월호를 추모하기 위해 노란리본을 상징하는 노란 천을 찢어 낚싯대에 매달고 거리를 행진했다. 행진을 끝낸 뒤 홍 씨는 근방의 집회 소식을 듣고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추모객 등 3만여 명이 참석했으며, 참가자들은 집회 후 종로와 을지로 일대에서 도로행진을 했다.
2014년 8월 15일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홍승희 씨가 퍼포먼스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홍승희 페이스북
이날 집회에 참석한 홍 씨도 집회 이후 이어진 행진을 함께했다. 여우비 프로젝트 퍼포먼스의 연장선상에서 노란 천을 매단 낚싯대를 지참했다. 그러나 경찰은 홍 씨가 ‘3000명의 시민들과 함께 공모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했다’며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했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홍 씨의 퍼포먼스용 낚싯대를 보고 “어느 조직의 깃발이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홍 씨는 “집회가 열리는 것을 알게 돼 일반 시민 자격으로 참가했고, 집회 이후 진행된 행진에 동참했을 뿐 사전 공모는 전혀 없었다”며 “3000명이 어디 모여 공모를 할 만한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세월호 추모 집회 퍼포먼스와 더불어 홍 씨의 작품도 문제 삼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홍 씨가 홍익대학교 부근 공사장 가벽에 작업한 그래피티 작품에 2건의 재물손괴죄를 적용했다. 작품에는 시민이 경찰의 눈에 들어간 최루액을 닦아주는 모습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국정교과서가 물총을 맞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등이 표현돼 있다.
특히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박근혜 대통령 풍자화다. 해당 작품은 욱일기를 배경으로 박 대통령이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 아래 ‘사요나라 2015.11.14’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지난해 11월 14일은 박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해외 순방을 떠난 날이며, 동시에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백남기 노인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날이다.
검찰이 재물손괴죄를 적용한 홍승희 씨의 그래피티 작품. 사진출처=홍승희 페이스북
홍 씨는 “대통령 풍자화를 그렸던 공사장 가벽은 그래피티 천지다. 그래서 모자도 쓰지 않고 편하게 작업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내 그림만 지워져 있었다. 온갖 욕설과 선정적인 다른 그림들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피해자(한진중공업 공사 관계자)가 신고한 적도 없는데 경찰이 직접 찾아가 ‘미관을 해친다’는 진술을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공사 관계자는 “저희 쪽에서 민원을 제기한 적은 없으며 ‘미관을 해친다’고는 하지 않았다”며 “다만 우리 소유물에 그래피티가 되어 있다고 해 경찰과 함께 현장 확인을 한 뒤 진술했다. 경찰이 그래피티를 누가 언제 했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어봐 모른다고 답했고, CCTV 설치 여부를 물어보길래 없다고 답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진술만 하고 끝나는 줄 알았으나, 그 뒤 한 차례 더 진술했다. 회사 차원의 업무도 있는데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게 되니까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재물손괴죄는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신고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공사장 가벽의 수많은 그래피티 가운데 홍 씨의 그림만 그 다음 날 즉시 지워졌고, 처벌 또한 홍 씨에게만 해당했다. 일각에서 “법이 악의적으로 적용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홍대입구역 인근 한 카페 관계자는 “홍대, 특히 홍대입구역 5번, 7번 출구 부근에는 원래 그래피티가 매우 많다. 그래피티 작품을 찍으러 출사를 나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래피티 존’으로 불리던 홍대입구역 5번 출구와 7번 출구 부근은 현재 공사 중으로 과거의 공사 가벽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가벽이 설치돼 있다. 새로운 가벽에는 ‘낙서 금지. 적발 시 고발 조치함’이라고 적힌 경고 문구가 붙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인터뷰] 박 대통령 풍자화 주인공 홍승희 예술가 “난 두렵지 않다…앞으로도 그림 그리고 춤 출 것” 사진 출처= 홍승희 예술가 페이스북 ―사회적 예술가인 본인을 소개해 달라. “우선 사회적 예술가가 아니라, 그냥 예술가라고 소개해주셨으면 좋겠다. 모든 예술은 다 사회적이니까….” ―예술가로서 사회적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는지?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 왔나. “혼자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광장이나 아스팔트 바닥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광장에서 퍼포먼스 작업을 하게 됐다. 낮에는 퍼포먼스를 하고, 밤에는 그래피티 작업을 했다. 이러한 작업을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하고 싶어서 예술행동에 대한 모임도 했다. 글 쓰고 그림도 그리고….” ―검찰이 1년 6월의 실형을 구형했는데 심경이 어떤가.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다. 그래피티 작업 천지인 벽에 제 그림 하나만 지워졌고, 그 일로 벌금형도 아니고 징역을 구형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일단 탄원서 양식을 공유할 예정이다. 재판 전에 예술가들과 공동 예술행동을 할 것이다.” ―최근에는 어떤 사회 현안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나. 앞으로 활동 계획은. “예술이 있고 사회가 있는 게 아니라, 삶이 있고 그 안에 사회와 예술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회현안에 대해 작업한다기보다 제 삶의 이슈를 그때그때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한다. 요즘은 여성에 대해, 죽음에 대해 작업하고 싶다. 11일 재판이 끝나고 그 다음 날 인도로 출국해서 (감옥에 가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예술작업을 할 계획이다”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검열하는 것은 상상력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경직된 사회를 깨고 싶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저는 두렵지 않고 여전히 생생하다. 저는 떳떳하고 앞으로도 그림 그리고 춤 출 것이다.”[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