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강만수 장관(왼쪽), 이성태 한은 총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손발이 척척 맞아도 모자랄 판이지만 과거 발자취로 보자면 이들 두 사람은 줄곧 평행선을 달려왔다. 이들의 운명적 대립이 시작된 것은 11년 전인 지난 1997년. 당시 재경원 차관이었던 강 장관은 ‘재경원 장관이 위원장인 금통위 아래 한은을 집행기구로 두고 한은 총재의 지휘를 받던 은행감독원을 금감원으로 떼어내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 통과에 앞장섰다. 당시 한은 기획부장이었던 이 총재는 한은법 개정을 저지하는 실무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결국 은감원은 금감원으로 분리됐지만 재경원 장관이 맡았던 금통위 의장 자리는 한은 총재에 넘어가면서 두 사람의 첫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다.
외환위기 사태로 재경원을 떠난 강 장관은 이후에도 금통위를 한은에서 분리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강 장관은 자신의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은이 통화량을 강바닥 수준에 맞췄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11년 후 두 사람은 각각 새 정부 경제수장과 한은 총재로서 다시 만났다. 강산이 변할 만한 시간이 흘러서인지 두 사람에겐 어느덧 ‘이명박 정부의 경제브레인’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라는 정치성향 짙은 극단의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1월 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였던 강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한은은 독립성을 주장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라며 이 총재에게 선공을 날렸다. 이틀 후인 1월 10일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게 경제정책을 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맞받아쳤고 이후 두 사람은 환율 금리 문제 등에서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런데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극에 달했기 때문일까. 두 사람 사이에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이성태 총재가 추가 금리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10월 23일 강만수 장관은 같은 장소에서 통화정책에 대해 한은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위기에 대비해 그동안 어렵게 외환보유액을 쌓아온 한은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는 발언으로 이 총재를 두둔해 눈길을 끌었다.
재계와 금융권에선 ‘반목’을 거듭해온 두 경제사령탑의 화해 무드 조성에 큰 기대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동안 퇴진 압박에 시달려온 강 장관이 ‘정부의 잦은 개입으로 한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론 희석에 나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울러 강 장관이 ‘환율대란에 대한 통화정책의 성패가 전적으로 한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관점도 있어 두 사람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