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7일 독도특위에 출석한 유인촌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를 듣는 도중 생각에 잠겨있다. 아래 사진은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위에 선 유 장관.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한때 TV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라는 순박한 시골 청년의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던 유 장관은 어느날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며 정치인으로 돌변했다. 인사 청문회에서 재산 문제로 불거지기 시작한 유 장관과 관련한 구설은 장관 취임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이 차마 직접 할 수 없는 발언도 대신한다는 평을 야당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결국 막말파동으로 이어지며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유 장관이 시중에 떠도는 연말개각설을 이겨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용모는 화려했으나 영혼과 능력은 참으로 처량했다. 배우로서는 훌륭했으나 공직자로서는 도덕적으로 결핍되어 있었다.”
지난 2월 인사청문회 당시 장관 지명자 신분이던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에 대한 문화관광위원회 간사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의 평가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은 엄청난 사회의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강부자 내각’ ‘대한민국 1% 내각’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초대 내각 장관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이는 14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한 유 장관이었다. 게다가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2005년 4월 처음 재산을 신고했을 당시 총액이 82억 2900만여 원이었던 유 장관의 재산이 3년 만에 무려 58억 원이나 불어난 데 대한 지적이 뒤따랐다. 다만 투기 의혹 등의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재산을 증식한 의혹이 드러난 것은 아닌 만큼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유 장관의 무리한 정면 돌파에서 비롯됐다. “배우 생활을 35년이나 했는데 그 정도는 벌 수 있는 것 아닌가, 배용준을 보라!”는 소위 ‘배용준 발언’이 오히려 인사청문회를 집중포화에 휩싸이게 만든 것. 게다가 재산이 58여 억 원이나 불어난 지난 3년 동안 그는 배우로서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렵게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장관으로 취임한 뒤에도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유 장관의 활동사진과 취임식 동영상이 전면 배치돼 마치 유 장관의 개인 홈페이지를 연상케할 정도였던 것. 물론 장관의 동정이 홈페이지에 게재되는 것은 다른 정부부처도 매한가지지만 비교적 작게 다루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결국 문화관광체육부는 홈페이지를 두고 ‘유비어천가’ 논란이 불거지자 초기화면을 서둘러 교체했다.
▲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장관 취임 이후 행보도 닮아갔다. 이 전 장관은 노 정권 초기 언론정책을 주도했다. 기자실을 폐쇄하고 종합 브리핑실을 도입하는 언론 개혁을 앞장선 이가 바로 이 전 장관이었던 것. 유 장관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그 시작은 소위 물갈이론이었다. 지난 3월 광화문 문화포럼 강연에서 “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발언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임기가 보장된 단체장들에 대해 장관이 실명까지 거론해 사퇴를 강요한 것이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유 장관은 물갈이론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정부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에 남아 있는 지난 정권 추종 세력이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발언과 맞물리며 문화예술계 단체장에 국한되지 않은 정부 조직 전체로 확산됐다. 그리고 결국 KBS 정연주 전 사장 해임으로까지 이어졌다.
유 장관의 이후 언론 정책은 거듭되는 반발을 불러왔다. 촛불 정국이 이어지던 지난 6월엔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성명서를 통해 “수구언론이 장악한 신문업계의 판도를 공고히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신문유통원, 신문발전위원회 등 언론 기관을 통폐합해 사실상 수구언론의 이익을 대변하려 하고 있다. 진실 보도로 국민 지지가 높아진 MBC를 향해선 민영화 운운하며 비판 논조를 무디게 하려 했다”며 유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9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한 유 장관은 종교방송 등을 겨냥하는 뉘앙스로 “너무 편하게 해왔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했다. 한나라당 국민통합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전국의 신문과 방송사가 얼마나 많나? 이들이 시장 경쟁 환경이 오는데도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 지원이나 코바코 광고를 통한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 이에 종교방송은 물론 야당들이 거세게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자 유 장관은 종교방송 관련 발언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유 장관의 발언은 국회 속기록에 남아 있고 동영상 파일도 인터넷에 올라 있어 거짓말 논란에까지 휩싸이기도 했다. 다만 문화관광부 측은 “종교방송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정부 대변인을 맡고 있는 터라 유 장관은 언론을 상대로 정부 입장을 피력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지난 4월에는 관광업계 관련 제도개선과 관련해 “예전 정부에선 1년이 걸려도 못해냈을 일을 현 정부는 한 달여 만에 해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한 청와대와 불교계가 한창 대립 상황일 때에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꼭 대통령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돌려서 얘기하면 조금 어렵지 않겠는가”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불교계의 원성이 유 장관에게 집중되기도 했다.
촛불 정국이던 지난 7월엔 관광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촛불 집회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축시킨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유 장관이 “6월 관광객 수가 지난해보다 0.45% 줄어든 것은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촛불 집회 때문”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 그런데 유 장관이 이 발언을 한 날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2008년 상반기 관광 및 출입국 수지 분석 및 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관광객 수의 감소에 대해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에는 “국제적인 고유가로 인한 항공료 인상과 국내물가 상승으로 인한 음식과 숙박 등의 관광 가격의 상승이 외국 관광객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명시돼 있는 것. 물론 유 장관의 발언처럼 도심에서 진행된 촛불 시위가 외국인 관광객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자체 보고서의 내용처럼 더 직접적인 원인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촛불 집회가 주된 원인인 양 발언해 네티즌의 반발을 샀다.
▲ 유인촌 장관이 취재진에게 막말을 퍼붓고 있다. 사진=YTN 화면 캡처 | ||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유 장관의 발언은 민주당 조영택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졌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이 질문 역시 유 장관의 발언이 시발이 됐다. 지난 8월 청와대 만찬에서 유 장관이 문대성 위원에게 “대통령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라는 발언을 했던 것.
곧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연예인 응원단의 초호화 응원 원정이 논란이 됐다. 연예인 응원단 경비는 유 장관에게 재량권이 있는 스포츠토토 수익금 가운데 2억 1189만여 원이 쓰여 혈세 낭비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유 장관은 사정을 설명하며 연예인 응원단이 국가를 위해 나섰음을 강조했다. 다만 졸속 진행에 대해서는 사과 입장을 분명히 하며 “책임질 것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연예인 응원단이 문화체육관광부에 2억여 원의 국고 지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관련 행정절차를 모조리 무시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책임 공방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결국은 막말 발언까지 불거졌다. 이종걸 의원의 졸개 발언에 흥분해 자신을 촬영하는 사진기자들에게 “찍지마 XX. 어유 성질이 뻗쳐서 정말. XX 찍지마”라는 막말을 한 것. 이번에도 문화체육관광부는 급히 “사진을 찍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한 것은 사실이나 기자들에게 욕설을 한 것은 아니다.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요지의 보도 자료를 내놨다. 그리곤 다시 문화부는 또 말끝의 XX는 욕설인 “씨X”가 아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내뱉는 관습적 말투 “씨~”였다는 주장을 내놓아 여론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처럼 거듭되는 논란이 유 장관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0월 29일 이명박 정부 장관급 인사 16명을 대상으로 한 장관 종합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유 장관은 거의 낙제 점수를 받았다. 반면 10월 24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상임위 별 국회의원이 꼽은 ‘피감기관 우수 공직자’에서 7표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탤런트 출신이지만 문화부 업무 파악이 잘 돼 있다”는 게 <조선일보>에 실린 국회의원들의 평이다.
지금껏 여러 연예인 출신 장관이 배출됐지만 유 장관은 분명 준비된 장관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거듭되는 말실수와 거짓 해명 등으로 유 장관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과연 그가 여론의 거센 경질 요구를 헤쳐내고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