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시계, 자동차 키 등 다양한 ‘란파라치’ 몰래카메라. 연합뉴스
란파라치란 김영란법과 파파라치를 합성한 신조어로 김영란법 위반 사례를 적발해 신고하는 하나의 신종 직업이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 공무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 약 400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을 전문적으로 감독, 감시해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데 앞장서겠다는 게 란파라치가 등장한 하나의 배경이다. 김영란법 위반 사례를 적발해 신고하면 포상금은 최대 2억 원, 보상금은 최대 30억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포상 대박’ 터뜨릴 수 있다는 생각에 란파라치는 파파라치 업계에선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사실 란파라치는 새롭게 등장한 공익 파파라치의 한 분류다. 공익 파파라치로 불리는 시민감시단은 2001년 카파라치(교통법규 위반차량 신고자) 등장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1년 9월 국민권익위는 국민의 건강이나 환경안전 등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공익침해행위를 적극적으로 적발하기 위해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시행하며 공익 파파라치는 더욱 성행하기 시작했다. 불량식품 제조판매, 친환경농산물 허위 인증, 가격담합행위 등을 확인해 해당기관에 제보하는 방식으로 신고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된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란파라치가 생겨나 파파라치 활동은 다시금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란파라치 양성학원도 특수를 맞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란파라치 학원은 전국에 2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란파라치 학원에서는 몰래카메라 찍는 법, 녹음 기법 등을 강의하며 카메라도 함께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 학원은 대부분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다’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란파라치 양성 학원은 오히려 피해자들만 양성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명옥 씨(55)는 지하철에서 란파라치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허위광고에 솔깃해 지난달 공익신고학원을 찾았다. 김 씨는 파파라치 경력 15년이라는 원장 말에 속아 부인카드로 몰래카메라를 150만 원에 샀다. 하지만 이내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식당 일을 하다가 우연히 신문광고를 접하고 찾아가보니 ‘이 카메라로 파파라치를 배우면 앞으로 돈 걱정없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다. 하지만 정작 카메라도 사고 교육을 받아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며 자책했다.
실제로 다수의 란파라치 양성학원에서는 초소형 몰래카메라 같은 장비를 고가에 판매하고 있었다. 시계, 자동차 키, 안경 등 몰래카메라의 종류도 다양했다. 구로구에 위치한 한 공익신고학원을 찾은 결과 일단 전문 교육을 받기 위해선 카메라 구입이 필수였다. 이 같은 전문장비는 학원 측에서 부르는 게 값이었다. 1 대 1 개인 과외 형식으로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이 학원은 현장교육에 나가기 위해선 소형 카메라를 사야 한다고 권유했다. 가격은 100만 원. 하지만 실제 해당 모델의 공급업체에 알아본 결과 카메라 가격은 20만 원 정도였다.
이들 학원은 수강료를 받지 않는 대신 카메라 등과 같은 고가의 장비를 수강생에게 판매해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바가지를 씌운 장비 가격에 수강료가 포함된 셈이다. 파파라치 경력 15년차인 김창선 씨(44)는 “보통 학원에서 100만~180만 원을 받고 파는 카메라는 중국산으로 원가가 20만 원에 불과하다”면서 “공익신고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몰래카메라 같은 전문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필요한 부분도 존재하지만 특수작업이 아닐 시에는 전혀 필요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핸드폰을 이용한 촬영기법만 잘 익혀도 카메라 구입비용을 아낄 수 있다. 스마트폰과 앱만 잘 활용해도 사용하기에 따라 몰래카메라보다 작업하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란파라치들의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작 경험 많은 베테랑 파파라치들도 김영란법 위반을 적발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퇴직 후 파파라치가 됐다는 12년차 경력의 이 아무개 씨(60)는 “김영란법 이후 공직사회를 살펴본 결과 실제 조심하자는 분위기라는 게 존재했다”며 “점심시간 돌아다니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식당이 아닌 카페로 들어가고 축의금을 여러 사람 이름으로 나눠 내거나 화환에 단체 이름만 적어 적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관찰, 미행만으로 사적인 자리인지 업무 연관성이 있는 자리인지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실제 경찰청이 지난 한 달간 김영란법 위반으로 서면 신고를 접수한 건은 12건, 이 가운데 란파라치가 신고한 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나마도 신고 대부분이 금품을 받은 공직자가 자진 신고한 것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지난 27일 국민권익위원회에도 한 달간 부정 청탁(17건), 금품 수수(25건), 외부 강의(2건) 등 총 44건이 신고됐지만, 란파라치 신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몰래카메라나 도청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무책임한 신고, 허위 신고 등을 방지하기 위해 112신고, 전화신고 등을 통한 신고는 접수가 불가하며 서면신고 및 증거제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포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영수증이나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신고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증거 확보가 중요한데 오히려 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형사처벌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게 전문 파파라치들의 입장이다. 서울공익감시단연합 조승민 씨도 “란파라치 관련은 예민한 부분으로 일반인이 단기간에 배워서 활동할 수 없는 종목이다”라며 “불법 사실을 완전히 밝히지 못하면 오히려 자신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방 동의없이 몰래카메라를 찍거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녹취를 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에 해당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질 수 있다. 또 3만 원 이상의 음식을 받았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식당 관계자로부터 영수증 재발급을 받는다면 식당 관계자와 란파라치 모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포상금 액수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파파라치 활동을 하며 김영란법 특수를 노리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김영란법에 적용된 신고포상금은 최대 2억 원이지만 실제로는 신고 내용의 공익 증진 효과를 감안해 선별적으로 지급한다. 보상금은 최대 30억 원(국고환수액 기준)이지만 신고로 부정한 자금이 국고로 환수됐을 때 지급한다.
이에 파파라치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정보력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들도 여느 형사와 다름없이 평소 정보원 관리를 철저히 한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선 평소 그들에게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조 씨는 “지금도 리스트 해 놓은 아이템들이 몇 가지 있다. 모두 정보원들로부터 얻은 정보다. 이것을 가지고 대상자를 파악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 그리고 증거포착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파파라치 이 씨도 “파파라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라며 “정보가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고급 식당가 종업원이나 매니저부터 경비원까지 안면을 트고 친분을 유지하면 좋은 정보원이 될 수 있다. 적발에 성공하면 수입을 일정비율로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