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올해 한국의 한자는 무엇이 적당할까.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대만의 ‘란’(亂)에 일본의 ‘변’(變)을 합친 ‘변란’(變亂)이 적절하지 않을 지 모르겠다. 유사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도 어려움에 속하지만 무엇보다 2008년 정치권은 현대정치사에 큰 장으로 기록될 만큼 ‘변란’이 많았다.
10년 진보정권이 무너지고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은 변화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총선 공천 논란,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의 대결 등을 노정하며 큰 ‘어지러움’을 보였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특별한 당직이 없음에도 ‘만사형통’으로 통하며 올해 일어난 굵직굵직한 정치적 이슈 등의 ‘배후’로 의심받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이상득 의원은 2008년 한국 정치의 ‘변란’을 관통하는 인물로 보이기에 충분한 듯하다. <일요신문>은 올해의 정치인으로 이상득 의원을 선정, 그 정치적 삶의 궤적을 재조명해보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 의원회관 419호. ‘만사형통’으로 통하는 이상득 의원의 사무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의원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거의 모든 의원들의 사무실 문이 활짝 열린 것에 비하면 좀 이상하다. 언뜻 보기에 사무실이 폐쇄되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좌진들이 조용히 업무를 보고 있다.
“왜 문을 닫아놓고 있어요?”
“요즘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닫아놓았습니다.”
그렇다. 정치권을 떠도는 ‘부나방’들은 언제나 살아있는 권력 주변으로 모이게 마련이다. 이상득 의원은 “솔직히 말해 (상왕정치 논란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라며 대통령 형의 ‘보이지 않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원실 문을 닫아놓을 만큼 어중이떠중이들이 권력의 ‘빛’으로 모여들어 그를 괴롭히는 게 이상득 의원이 발을 딛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현재 여권에서 이명박 대통령 다음으로 권력을 떨치는 인물을 꼽으라면 저자거리의 코흘리개 아이들도 이상득 의원을 꼽을 것이다. 이 의원이 아무런 당직도 없지만 대통령의 형님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은 증권가를 떠도는 ‘유비통신’(유언비어 통신의 준말로 찌라시를 가리키는 말)에서는 이미 낡은 ‘팩트’에 속한다. ‘이 의원이 모처에서 누구를 만났다더라’, ‘그 자리에서 인사 이야기도 오갔다더라’, 심지어는 ‘규모가 큰 기업체 인수의 뒤에는 이상득 의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유비통신도 있다.
특히 한나라당 일각에서조차 “이상득 의원이 여권의 지도부 구성, 장관과 기관장 인선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은 차라리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의원은 이미 지난 6월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논란이 벌어졌을 때 “당내에서 (내가) 인사에 간섭을 한다고 하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한을 모독하는 얘기다. 대통령도 판단력이 있다. 간섭한다고 그 사람이 듣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잘 안다. 서울시장 4년 하면서 인사 청탁 수없이 받았다. 이력서 들어온 것만 1000통이 넘는다. 힘들고 괴롭지만 (청탁을) 들어줄 수는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정치적 현실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사무실 문을 닫아놓을 만큼 무수한 ‘부나방’에 둘러싸여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요즘에는 이상득 의원의 축하 난 하나만 받아도 먹힌다. 그것으로 위에서는 부하직원의 ‘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런 ‘부나방’들은 이 의원의 보좌진들에게까지 학연 지연을 들먹이며 낯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동문 선배’를 설득해 돌려보내는 보좌진들도 “요즘 죽을 맛이다”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하소연은 어찌 보면 행복한 비명일 수도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권력은 수증기와 같다. 눈에 보일 때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지만 금방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모른 체하는 게 권력의 생리다. 이런 점에서 이 의원의 책상에 여전히 이력서가 쌓이고 여당 의원의 성향을 분석한 문건이 건네지는 등 모든 청탁과 정보가 그에게 집중되는 것은 아직도 ‘만사형통’이 통하기 때문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의원은 “자신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라고 항변한다. 최근 이 의원은 “(인사 개입설에 대해) 누가 조사 좀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지난 대선 때 도와준 사람들을 잠도 안 자고 만나고 다녔다. 이들을 다독이는 게 본인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 몇몇이 자리를 맡으면서 인사 개입설이 급속히 퍼져나갔다”라고 주장했다.
▲ 올해 1월 일본 민주당 대표의 친서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달하는 이상득 의원. | ||
“한 국영기업체 사장으로 내정된 전직 장관 L 씨가 이상득 의원의 바둑친구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지금 여권의 권력 구도를 보라. 캠프의 원로그룹이 다 해먹고 있다.”
L 씨는 한 전직 대통령을 통해 이 의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꾸준히 이 의원과 친분을 쌓으며 이번에 거대 국영기업체의 수장에 내정된 것이다. 물론 관료를 거친 그의 능력이 인정되기도 하지만 인선 과정에 ‘바둑친구’라는 구설수가 나오는 것을 보면 현 정권의 인사가 ‘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실세의 사적인 친분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정가에 파다하다.
그렇다면 이상득 의원은 왜 이렇게 권력의 핵심에 여전히 서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도 여당 내의 불만 중 상당부분이 ‘이상득 독주론’과 관련된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이 권력 갈등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는 그의 ‘형’을 견제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한나라당의 한 친이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사적인 모임에서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게는 부모 같은 형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대통령도 신문에 자꾸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근본적으로 형님 이야기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으로 안다. 이 대통령은 이 의원이 이미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오히려 정치계의 대선배인 ‘형님’에 크게 의존하는 게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참모들이 골치 아픈 보고서를 들고 가면 ‘그건 이상득 의원과 상의하라’는 말을 하며 형님을 신뢰했다. 지금도 그런 관계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주변에선 “마지막까지 사심 없이 대통령을 지킬 사람은 형님밖에 없다”라는 말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혈육의 정을 냉정하게 내치지 않을 것’이라는 두 사람 간 일종의 ‘묵계’도 이 의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스타일 때문에 형님의 권력을 인정하고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계파 갈등을 싫어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친정체제를 구축해야 불도저 스타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가 기업 CEO로 있을 때에도 충성심이 강한 참모들을 주로 중용했다는 것이 그 연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나 정두언 의원이 이상득 의원과 권력 갈등을 빚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권력 용인술은 양극 체제가 안정적이라고 본다. 의사 결정의 지연 등 단점이 많은 다극 체제는 강력한 리더십을 장기로 하는 그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
이렇듯 이 의원의 실세 등극 배경에는 혈육의 정에다 이 대통령의 권력 운용 스타일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외적 변수 외에 이상득 의원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장점도 그를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은 측면이 있다. 이상득 의원은 본인 스스로 “최초의 기업 CEO 출신 정치인”인 점을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그는 1988년 13대 국회 때 당시 육사 14기 입학 동기인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의 천거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평사원으로 입사해 코오롱 사장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뒤 이 의원은 정책위의장-원내총무-사무총장-최고위원-국회운영위원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그가 6선 관록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엔 물론 영남 지역구(포항 남·울릉)의 탄탄한 기반이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정적이 별로 없는 남다른 친화력이 ‘영일대군’의 지위를 유지하는 배경이 된다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그가 항상 강조하는 ‘실사구시’의 기업가 철학이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 영향도 있다. 이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그에 대해 “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와도 서슴없이 대하고 사고가 유연해서 협상에 아주 능하다. 그렇다고 ‘누구의 사람’으로 분류된 일이 없다”라고 평가한다.
그는 사무총장을 거치면서 당 사무처의 ‘1진’이었던 장다사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영입하는 등 특유의 친화력으로 당의 인재들을 대거 자기 사람으로 심었다. 이 의원이 발탁한 사람들은 경선-대선 과정을 거쳐 이명박 정권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친위부대로 성장했다. 이들은 이 의원의 우산 아래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이 의원은 그들의 정보와 인맥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상득 의원이 아무리 대통령의 형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이 없었다면 그 권력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철저한 자기관리,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 여기에 실리를 추구하는 협상 스타일 등을 가진 그를, 이명박 대통령은 ‘형님’이라는 존재 이상의 정치 선배로서 권력 실세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이 의원이 권력의 한 꼭짓점을 계속 맡을 가능성이 큰 배경에 색다른 분석도 있다. 경선·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캠프에서 크게 활약했던 A 씨는 이에 대해 “이상득 의원은 정두언 의원과 함께 캠프 내부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특히 자금 조달 면에서는 기업가 출신의 이 의원이 거의 전적으로 도맡은 것으로 안다. 이렇듯 이 의원은 무덤까지도 가져가야 할 비밀들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정권이 끝날 때까지 같은 배를 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상득 의원이 권력에서 멀어졌을 때 친동생의 비밀을 폭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이 대통령이 권력 운용상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극비사항을 혈육의 정을 나눈 형님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이명박-이상득 비선 라인’은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원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이 대통령으로선 정무감각이 뛰어나고 협상에 능한 정치 선배로 이 의원을 찾을 것이고, 이 의원 또한 동생의 성공을 바라는 동시에 정치 경력의 최고봉을 만끽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 의존적이다. 이러한 의존적 관계는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계속 잇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상득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을 가능케 해 정치권의 ‘변’(變)을 이끌어낸 1등 공신이다. 하지만 그 뒤 ‘만사형통’의 ‘란’(亂)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올해 한국 정치의 ‘변과 란’은 이상득으로 시작해 이상득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내년에도 ‘이상득의 변란’은 계속될지 국민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