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당시 반기문 장관의 퇴임식 날, 여직원들이 유엔 사무총장 내정 소식을 듣고 축하하고 있다. | ||
장외시장에서의 높은 ‘인기’ 때문인지 반 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여야를 막론하고 뜨거운 편이다. 먼저 한나라당의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그룹이 그에게 호감을 나타낸 적이 있었다. 친이그룹은 현재 자신들을 대표할 만한 마땅한 대권 주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반기문 총장도 그 대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전략·기획분야에서 일했던 핵심 관계자 B 씨는 이에 대해 “사실 반기문 카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천기누설이다. 친이그룹 핵심에서는 그를 진작부터 대선 주자 가운데 하나로 점찍고 준비도 했던 것으로 안다. ‘세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라는 논리가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 현재의 정치가 국민들에게 뿌리 깊은 불신을 주고 있기 때문에 차기 대권 주자는 정치인 색채가 덜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본다. 반 총장이 비록 참여정부 최대의 ‘역작’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의 정치적 성향이 그리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나라당과도 코드가 맞다. 또한 정치적 이력과 경륜을 볼 때 그만 한 대선 주자도 찾기 힘들다. 앞으로도 그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마땅한 대권 주자가 보이지 않게 되면서 계속해서 그에게 구애의 몸짓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당 핵심 관계자들은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이미경 사무총장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차기 대권후보 영입설과 관련해 “국외에 있는 분이 국내에서 잘 하겠느냐”고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외교가 주변에서도 반 총장이 한국의 대권 주자에 자주 언급돼 차기 대선에 나갈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유엔에서도 반 총장의 대통령 도전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 하지만 유엔 현지 관계자들은 반 총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반신반의하고 있다.
유엔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 A 씨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점에서 반 총장의 대권 도전은 무리라고 본다. 먼저 반 총장 자신이 ‘세계 대통령’이라는 명예직이 아니라 ‘이전투구, 복마전’으로 대변되는, 골치 아픈 한국 대통령 자리를 맡으려 할지 모르겠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재임(총 10년)이 관행이다. 만약 반 총장이 대선 도전 때문에 재임이 보장되는 총장 자리에서 중간에 물러난다면 그는 실패한 사무총장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프로페셔널 외교관 출신인 반 총장이 그런 무리한 정치적 스케줄을 짤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현실적으로도 그의 대선 도전 가능성은 낮다. 그의 첫 번째 임기는 2011년 12월 31일 만료된다. 그런데 그가 재임을 포기하고 정치에 도전하려면 적어도 2011년 6월까지는 유엔에 통보해 차기 사무총장 인선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스케줄을 한국 정치 스케줄과 대입시켜 보라. 한국 대선은 2012년 12월에 열린다. 지금까지의 관례를 보면 한국 대선 주자는 선거 3~4개월 전에 결정된다. 그렇다면 반 총장은 자신에게 올지도 모르는 대권주자 ‘월계관’을 위해 적어도 1년 전에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한국 대선의 속성상 반 총장이 1년 이상 남겨둔 대선 판에 유엔 사무총장직을 버리고 뛰어들 만큼 무모하다고 보진 않는다. 이는 그가 외교관 생활을 할 때 유난히 인사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그만큼 도전적이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대선 시장 입성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반기문 카드’를 애지중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선 ‘깨끗한’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의 리더로 자리 잡아 가는 반 총장에게까지 그 흙탕물을 튀겨 ‘고건 전 총리가 썼던 실패의 월계관’을 씌워줄 필요가 있을까하는 소리도 적지않게 들린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