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박찬호가 WBC 불참과 향후 대표팀 은퇴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
박찬호는 연예프로그램 KBS ‘1박2일’에 출연해 소위 ‘야구 외에는 허당’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진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 국민의 영웅이었던 그가 이웃집 아저씨가 됐다고 본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벌써 이웃집 아저씨가 된 거냐?’며 반농담으로 항의도 했지만 상당히 재미있었다며 좋은 추억이라고 말했다.
박찬호는 같은 운동선수 출신인 강호동과 이번에 상당히 돈독한 친분을 쌓았다. 촬영을 마친 후 사석에서도 만나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래서 연말의 한 시상식에 깜짝 모습을 드러내 강호동에게 축하를 건네기도 했다. 이번 프로에 출연하기 전까지 강호동은 물론 멤버들 중 누구와도 친분이 없었다고 밝혔는데 금방 친숙해지는 친화력을 보였다.
당초 촬영이 있던 그 주말에 박찬호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런 촬영이 잡혔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저 광고 촬영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 연예 프로그램의 출연이었다. 처음에는 출연할 생각이 없었다가 지인의 부탁으로 출연을 했는데 의외로 즐거웠다고 했다.
그 후로 각 방송국에서 섭외가 쏟아졌지만 박찬호는 곧바로 출국했다. 이제 당분간은 방송 출연이 불가능하겠지만 내년 겨울에는 각 방송국의 섭외 0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방송내용은 박찬호의 미국 진출 초창기 시절 모습이과 크게 비교됐다. 본인이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칭했고, 너무 어수룩하고 고지식해서 바보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박찬호였다. 부와 명예를 안으면서 이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세련됨으로 변신했지만 그의 본래 어수룩한(?) 모습과 착한 심성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필리스 구단은 박찬호를 환대했고 함께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대환영을 했다. 다만 그날 예정됐던 입단식이 같은 날 구원 투수 J.C. 로메로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50경기 출전 정지를 당하면서 어수선한 구단 분위기와 함께 취소된 것이 박찬호에겐 섭섭한 일이긴 했다.
또한 박찬호는 내심 필리스로부터 선발 투수로 힘을 실어 달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루벤 아마로 주니어 단장은 ‘선발 경쟁은 상당히 치열할 것이다. 선발뿐 아니라 구원 투수로도 뛸 수 있는 노장을 영입해 너무 기쁘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본인은 선발을 강력히 원하고 있지만 필리스 구단은 선발과 구원을 오갈 수 있는 옵션을 상당히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WBC 출전에 관해 상의했을 때도 ‘말리지는 않겠지만 선발 경쟁에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물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에 약간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빅리그 데뷔 16년차에 100승을 넘게 거둔 투수가 구단의 홀대 때문에 기자회견을 자청해 눈물을 보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는 국가대표로서 태극 마크를 더 이상 달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복받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도 의외의 눈물이어서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만큼 국가대표의 의미가 박찬호에겐 컸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박찬호는 고교 시절인 91년 청소년 대표를 시작으로 93년 호주 아시아 선수권, 9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98년 아시안 게임, 2006년 제1회 WBC 대회, 그리고 작년 초 베이징 올림픽 예선 등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뛰었다. 다른 스타들에 비해 유난히 국가대표 경력이 많은 것은 아니다. 본인도 자신의 국가 대표 시절을 회고하더니 몇 번 안 된다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런 느낌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미국에 진출한 이래 늘 국가대표였다. 항상 한국을 대표한다는 심정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국민의 기대도 컸지만 본인 역시 더욱 당당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지난 15년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국가대표였을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없다는 생각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고, 뜨거운 눈물을 쏟게 했다. 박찬호는 심성이 여린 편이다. 참을성이 강해서 그렇지 눈물을 가끔 보인다. 군대 4주 훈련을 마치고 나와서도 눈물을 비쳐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1박2일’에는 박찬호가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부분이 나온다. 코를 심하게 고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예민한 박찬호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모습도 나왔다. 박찬호는 성격이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해발 1600m에 위치한 콜로라도주 덴버로 원정을 갈 때면 늘 잠을 잘 못자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침 일찍 눈을 뜬 박찬호가 곧바로 몸을 뒤집어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은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 벌써 15년 전이다. 1994년 박찬호가 처음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미국에 진출했을 때 당시 특파원이던 기자의 집에 가끔씩 들리곤 했다. 그런데 아침이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바로 팔굽혀펴기 등의 운동이었다. 하루도 거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화가 있다.
바로 지난주에 있었던 WBC 불참과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 때의 일이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직전 회견장 밖에 서 있었는데 박찬호가 급히 뛰어왔다. 기자회견이 열리기로 한 예정시간이 몇 분 정도 지나고 있었다. 박찬호는 땀에 젖은 모습으로 손을 내밀면서 “운동을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 몰랐다”고 허둥댔다. 그는 바로 전날 밤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기자회견이 잡혀있었다. 그런데도 새벽에 일어나 또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KBS 예능프로 ‘1박2일’에 출연해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 박찬호. 이번 방송으로 강호동 등 출연진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 ||
중·고교 시절 박찬호는 투수이기도 했지만 3루수를 보면서 중심 타자로 뛰기도 했다.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그렇다.
그런데 박찬호는 좋은 타자가 되기 위해서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매일 밤 옥상에 올라가 1000번의 스윙을 하고서야 잠을 잤다. 때론 스윙을 하다가 잠깐 쉬는 사이에 옥상에서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치고는 만만치 않은 타격을 보이는 것도 다 그때 내공이 쌓인 덕분이다.
박찬호는 또한 중학교 시절부터 밤이면 산에 가서 홀로 섀도 피칭과 팔운동, 스윙 연습을 하기도 했다.
나무에 고무줄을 걸고 팔운동을 하던 훈련 장소가 이번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깜깜한 밤중에 인적도 없는 그곳을 훈련장으로 택한 이유는 마음이 약하다는 말을 듣고부터였다. 내심 용기와 근성을 키우기 위해 중학생 박찬호는 깜깜한 산중을 훈련장으로 택해 매일 그곳을 찾았었다. 처음엔 정말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다람쥐가 훈련에 심취한 그의 바로 옆에까지 왔는데도 몰랐다고 한다.
박찬호가 오늘의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타고난 강인한 어깨와 건강한 신체가 기본이지만 성실하고 끊임없는 노력의 소산이다. 본인과의 약속에 그렇게 철두철미한 인물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다.
박찬호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근래 들어 많이 변했다. 언제부턴지 ‘박찬호가 변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미국 진출한 날부터 그를 오래 밀착 취재했던 기자도 ‘과연 박찬호가 변했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박찬호와 일부 언론의 관계가 매끈하지 않은 시절이 꽤 오래 지속됐었다. 낯을 가리는 편이었던 그는 현장 특파원들이 아닌 멀리서 출장 온 언론과는 살갑게 지내는 편은 아니었다. 태평양을 건너 출장 온 사람들은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낯을 가리는 데다 자신의 운동이 먼저인 박찬호와 삐걱대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급격하게 스타로 부상하면서 부와 명성을 쌓은 박찬호가 교만했던 시절도 있었다. 본인도 그것을 가장 경계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발생했다. 20대 중반에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부와 명성에 현명하고 겸손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물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해도 된다. 많은 이들의 눈에 건방지고 자기중심적이며 ‘왕자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박찬호가 변했다기보다는 본래의 모습을 많이 되찾고 있다는 생각이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부상과 부진으로 어려운 시절도 오래 겪었고, 또한 가정을 꾸미고 자식을 낳으면서 많이 성숙해졌다. 그리고 본인이 늘 책을 잃고 명상을 하면서 정신 수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찬호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그가 정말 대단한 국민의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잘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교만이나 착각은 거의 다 떨쳐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말도 듣고, 기자회견을 할 때도 오히려 기자들에게 더 질문할 것이 있으면 해달라는 식의 편안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베풀겠다는 의식을 조금 더 갖고 요즘처럼 편안하게 대중에게 다가간다면 박찬호는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민훈기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