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후 5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재계 일부에서는 대림그룹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이준용 명예회장이 물러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회장 자리가 공석인 데다 각종 공식 행사에 그룹 대표인 이해욱 부회장이 아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준용 명예회장이 참석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이 2009년 9월 10일 전경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유장훈기자 doculove@ilyo.co.kr
이 부회장에 경영 전반을 맡겨놓고도 굳이 회장직을 6년째 공석으로 둔 것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막후경영 근거로 지목된다. 이 명예회장은 지금도 매일 아침 9시 출근해 회사의 주요사항을 보고받고 있다. 보수적 조직문화로 유명한 대림그룹에서 이 명예회장의 결재 없이 경영 전반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너가 있는 기업에서 명예회장이나 고문으로 물러난다 해도 경영상 큰 문제는 꼬박 점검한다”며 “최종 결재권자인 이들의 허락 없이는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말은 대외적 미사여구일 뿐”이라며 “회사에 출근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 경영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굵직한 일은 아직 이준용 명예회장의 허락이 떨어져야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이해욱 부회장이 1968년생이라 회장직을 맡기엔 아직 젊고 대내외적으로 경영능력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지 못한 점을 그 근거로 보고 있다. 앞의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그룹 내부 사람을 믿지 않는다”며 “이 부회장이 수십 년을 일해 온 대림 직원 대신 유명 컨설팅회사 등 외부 전문가를 신뢰해 불만을 품은 임원급 인사들이 다수 이직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대림그룹 내에 이 부회장을 뒷받침하고 도울 가신이 없다보니 오너 대표임에도 큰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부회장이 대림그룹 내에서 추진한 사업이 ‘절반의 성공’에 그친 것도 그룹 내 지배력을 키울 동력을 꺾은 요인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은 e편한세상을 도입해 아파트 최초로 브랜드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이는 이 부회장의 큰 성과로 부각됐으나 대신 해외사업에서 부진하다.
대림그룹은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창업주 고 이재준 회장에서 오너 2세 이준용 명예회장, 3세 이해욱 부회장까지 장남에게 경영권이 승계됐다.
3세 승계 과정에서 한때 장남 이해욱 부회장과 삼남 이해창 부사장 간 대립이 있을 것이라는 잡음도 있었지만 이해욱 부사장이 지주회사 격인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52.26%를 보유하면서 경영권이 이해욱 부회장 손에 넘어갔다. 특히 지난해 이 명예회장이 자신의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전부(32.65%, 2000억 원 상당)를 통일과나눔재단에 기부하기로 해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의 싹을 잘랐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대림산업 빌딩 전경. 일요신문DB
더욱이 대림그룹은 그룹 내에 대림문화재단, 대림학원, 대림수암장학문화재단 등 비영리법인 재단이 여러 개 있다. 그럼에도 굳이 외부 재단에 재산을 기부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또 통일과나눔재단은 특정 언론사가 주도한 재단인 탓에 의문을 증폭시켰다.
이에 대해 이 명예회장은 “내 산하의 재단은 이미 충분히 많다”며 “직접 재단을 운영하면 또 비용과 노력이 드는 것도 부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림 관계자는 “가톨릭신자이신 명예회장님이 가톨릭재단에 기부할 뜻도 갖고 있었지만 후세와 통일에 더 큰 뜻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일과나눔재단은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2261억 원의 펀드를 조성했다. 이 중 이준용 명예회장이 기부를 약속한 2000억 원을 제외하면 261억 원만 민간에서 조성된 기금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 소유의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32.65%가 14일 재단으로 양도됐다. 문제는 통일과나눔재단이 이 명예회장이 기부한 주식을 현금화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장외시장에서 현금화할 수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장외시장에서 한꺼번에 많은 지분을 매도하기 힘들 뿐 아니라 자칫 대림그룹 경영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재단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쉽게 현금화할 수 있도록 (대림코퍼레이션이) 상장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림 관계자는 “상장에 대해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일단 외부 재단에 기부한 만큼 훗날 돌려받을 수 있는 여지는 없다”며 “이준용 회장은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독특한 행동을 여럿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해욱 부회장이 이미 52%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터라 이 명예회장의 지분 기부가 대림그룹 경영권을 흔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의 전 지분이 외부 재단에 넘어가면서 차남이나 삼남이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대림그룹은 분명 3세 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준용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났고 자신의 지주회사 지분도 모두 기부했다. 그럼에도 재계와 건설업계에서 이준용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하다고 보는 결정적인 까닭은 대림그룹의 문화나 분위기에 변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건설업계가 원래 보수적이지만 대림건설은 그 중 으뜸”이라며 “조직 분위기뿐 아니라 사업투자나 의사결정 과정도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이준용 명예회장 시절이나 이해욱 부회장의 3세 경영시대나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