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 뉴스 |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63)에게 붙은 수식어다. 윤 내정자는 행시 10회에 수석 합격한 이후 재무부 국제금융과장, 금융정책과장, 재경원 금융정책실장,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 등을 거친 스타 관료 출신. 추진력 강한 보스 스타일인 그는 말 그대로 소신을 내세우며 거침없이 살아왔다. 말을 아끼면서도 할 말은 다했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임기를 채웠다. 그런 그를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구원투수로 발탁한 것이다. 그것도 서울대 법대 동문인 강만수 장관의 후임으로. 그가 시장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킬까. 그의 과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재무부에서 핵심부서 과장을 지내고 1990년대 후반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한보 사태 이후 국내 재벌들이 연이어 도산할 때도 민감한 사안까지 소신을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소신 발언을 기자들이 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선 그도 어쩔 수 없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맡고 있었기에 이듬해 세무대학장으로 밀려났다. 이후 외환위기 극복으로 한창 바쁜 시기인 1999년 정책라인에서 완전히 배제돼 유배지로 떠나듯 필리핀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갔다. 그것도 장장 5년간. 그는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그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 불리던 고 이수인 교수와의 인연이 작용했다. 윤 내정자는 이 교수의 매제다. 이 교수 생전에 노 대통령과 윤 내정자가 함께 술자리도 종종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인연은 인연, 소신은 소신’이었다. 윤 내정자는 정책에 있어서는 노 전 대통령과 적잖게 각을 세웠다. 특히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재임 중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해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며 청와대 386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윤 내정자는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길을 터줘야 한다”면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에 돈을 쓰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며 참여정부의 금산분리 정책을 비판했다. 즉 산업자본의 효율적 활용이 글로벌 금융회사 육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금산분리 완화는 결국 이뤄내지 못했다. 3년 내내 목소리를 높인 덕분에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더불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역시 정치논리로 풀라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단칼에 묵살하며 “경제논리로 풀겠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윤 내정자가 소신 내세우는 ‘고집 센 관료’만은 아니었다. 그는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부동산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 상환비율(DTI)을 도입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들어 벌어진 부동산 값 폭락으로 인해 돋보였다. 만약 LTV·DTI 같은 규제가 없었다면 부동산 폭락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은 훨씬 더 컸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윤 내정자가 부동산 거품에 힘겨워하는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는 LTV와 DTI를 도입한 것은 필리핀에서 아시아개발은행 이사로 있으면서 일본 부동산 버블에 관해 공부한 덕분이라고 한다. ‘유배지’에서 갈고 닦은 내공이 빛을 발한 것이다.
더불어 그는 20년여를 끌어온 생명보험사 상장의 길을 텄고 LG카드 사태 처리도 잡음을 최소화하면서 해결했다. 특히 그는 집단소송제를 앞두고 분식회계 기업에 대한 ‘대사면’을 단행했다. 그는 당시 “집단소송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기업의 존망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고해성사를 받아낸 것이다. 윤 내정자의 이 같은 친 기업적 행보와 소신 있는 정책 집행이 이번 장관 발탁에 적잖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에 옷을 벗게 된 김성호 국정원장 역시 참여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당시 ‘우리나라 기업이 국민경제에 기여한 공적은 정당하게 평가돼야 하며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하는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하자’ 등의 친 기업적인 발언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 됐다.
사실 윤 내정자와 이명박 대통령의 인연은 그리 깊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참여정부 당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연례행사로 개최한 서울금융국제컨퍼런스에 금융위원장으로서 두 차례 참석해 기조 연설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때 당시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이 청와대 386세력의 눈치를 보며 서울시 행사에 불참한 것과 비교하면 이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윤 내정자와 이 대통령의 또 하나 인연은 대선 정국을 흔들었던 BBK 사건이다. 그는 지난 2007년 6월 국회에 출석,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의 BBK 연루 의혹에 대해 “현재까지 서류상 드러난 바로는 이 전 시장의 주가 조작 혐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수백만 표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큰 빚을 진 셈이다.
▲ 2007년 3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비전코리아 행사에서 윤증현 당시 금감위원장이 한나라당 대선주자이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윤 내정자는 지난 1월 8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첫 비상경제대책회의에 국민경제자문회의 멤버 자격으로 참석했다. 당시 회의엔 경제부처 수장인 강만수 장관, 정정길 대통령 실장,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등 현 정부의 당·정·청 핵심 멤버들이 모였다. 윤 내정자는 이 대통령 맞은편에 앉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중소기업에게 정작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력, 기술개발, 마케팅 지원”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종합적인 중소기업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놨다.
그는 장관으로 내정된 이후 오히려 말을 아끼고 있다.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고위 공직자의 말과 행동은 신중하고 일관되게 전해져야 정책의 혼선이 줄고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장관 발탁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을 들여다보면 향후 그가 그리는 경제 정책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윤 내정자는 이번 경제 위기는 실물과 괴리된 과잉 유동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이번 위기가 지난 10년간 초저금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최근의 저금리 기조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낸다. 이번 위기 극복을 위해 위기를 불러온 저금리 정책을 쓸 수밖에 없지만 과잉 유동성을 가능한 빨리 환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내정자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선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그동안 그는 ‘정체성 확립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언론 인터뷰 때마다 강조했다. 즉 이명박 정부가 실용이라는 틀에 갇혀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색깔을 확실히 해야 기업도 국민도 그에 맞춰 호흡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예측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그는 MTN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경제부총리제 부활에 “반드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며 적극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이명박 정부가 ‘녹색뉴딜’로 내세우고 있는 ‘4대강 살리기’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는 “대외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 시장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투자, 즉 내수를 살리는 쪽으로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4대강 살리기는 이번 경제위기와 관계없이 진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환경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일자리도 창출이 된다고 설명한다.
부동산 규제 역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투기가 일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동산 거래가 형성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규제로는 부동산시장이 경색돼 매매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향후 경제 전망에서는 지난 1월 초 MBC와 인터뷰에서 “현 경제 상황을 야구로 비유하면 9이닝 중 2이닝, 또는 3이닝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지나게 마련이고 지나가지 않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일단 선진국들의 경제가 언제 살아나느냐가 관건인데 전 세계적인 위기 앞에 각국의 공조가 신속히 진행 중이고 이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이 빠른 속도로 안정되고 있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회복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만시지탄’ 강만수 장관의 후임이 윤증현 내정자로 발표되자 참여연대 경실련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잘못된 인사’라며 일제히 포문을 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그가 1997년 외환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점, 금감원장 재직 시절 유동성 관리 실패로 현재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점과 친재벌적이라는 점 등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또 울산 주리원백화점 진도그룹 대출 압력 건도 거론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그가 ‘로비스트집단으로 보이는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출신’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시민단체들의 이 같은 지적은 곧 진행될 인사청문회의 주요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윤 내정자는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 발표가 있은 지난 19일 광화문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사무실을 찾은 기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모두 힘을 합치면 경제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면서 “위기 극복에 앞장서고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희망과 용기가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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