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원세훈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여야 간 2차 대전을 알리는 서곡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등 야권은 ‘용산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와 함께 주무장관인 원 후보자의 파면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야권은 용산 사건 초기에 김 후보자에게 쏠렸던 책임론 화살을 청문회 정국에서는 원 후보자를 정조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 후보자가 청문회 정국과 2차 입법전쟁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용산 참사’ 책임론과는 별개로 원 후보자가 최고 정보기관 수장으로 적합한지를 둘러싼 자질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용산 사태 책임론과 자질론 시비에 시달리면서 정쟁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원 후보자가 야당의 파상적인 공세를 극복하고 국정원장 자리에 안착할 수 있을까. 정통 행정관료 출신인 원 후보자의 관료 인생 역정을 되짚어 봤다.
경북 영주 출신인 원 후보자는 서울대 법학과 재학시절인 1973년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원 후보자는 77년 서울시로 전입한 뒤 주택기획과장과 강남구청장(관선), 보건사회국장, 행정관리국장 등 서울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30여 년 공직생활 대부분을 서울시에서 근무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2002년 7월 서울시장에 취임한 직후에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에서 기획예산실장,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으로 연이어 발탁됐다. 그는 이 기간에 청계천 복원과 중앙버스전용차로 도입 등 중요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인사, 재정 등 서울시의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겨 이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원 후보자는 기획예산실장으로 발탁된 지 5개월여 만인 2002년 연말 서울시 조직개편안의 실무를 주도하면서 이 대통령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서울시 조직개편안은 기획예산실을 경영기획실로 바꾸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민간 경영관리기법을 도입하는 한편, 주요 시정에 관해 시장에게 직보할 수 있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도록 하는 등 시정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한 내용이 골격을 이뤘다. CEO(최고경영자) 출신 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조직개편안을 마련했던 셈이다.
이 대통령이 원 후보자를 2003년 11월 서울시 행정1부시장으로 전격 선임한 것도 그에 대한 남다른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행정1부시장 재임시절에도 원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신뢰와 믿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최대 치적 중 하나인 청계천 복원사업과 중앙버스전용차로 도입 등 중요 정책을 꼼꼼하게 챙기는 등 이 대통령의 시장 재임기간 내내 지근거리에서 핵심 보좌 역할을 수행했다.
서울시 재임시절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를 얻은 원 후보자는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비선캠프’에 합류해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치적 인연으로 발전시킨다. 2006년 6월 이 대통령과 함께 행정1부시장에서 물러난 그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비선 캠프에 참여해 정책분야 상근특보와 클린정치위원회 서울시팀장 등을 맡으면서 이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원 후보자는 지난해 2월 이명박 정부 첫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이 대통령의 측근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원 후보자는 혹독한 장관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본인과 장남의 병역 특혜 논란, 재산 형성 구설수 등 갖가지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원 후보자가 2006년 6월 서울시 퇴직 당시 5억 6000만 원이었던 재산이 1년 6개월가량 흐른 2008년 1월 기준으로 볼 때 29억 원으로 5배가량 늘어났다며 재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야권의 의혹 제기에 대해 당시 원 후보자는 “재산이 늘어난 것은 재산가액 변동을 신고해 급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해명했고, 자신과 장남의 병역 특혜 의혹도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원 후보자의 개인 비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원 후보자가 용산구청 총무국장 재임시절인 93년 2월 건영에 문정동 조합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특혜를 줬다는 이른바 ‘건영 특혜’ 의혹이 그것이다. 참여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원 후보자는 ‘건영 특혜’ 사건에 연루된 의혹으로 감사원의 인사조처 요구를 받았지만 93년 3월 서울시 기획관리실 기획담당관으로 인사이동을 한 뒤 93년 11월 지방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며 “이는 특혜와 관련된 징계라고 보기 어려운 인사이동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갖가지 의혹 제기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행안부 장관에 오른 원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의지를 반영하듯 정부조직개편은 물론 공직사회 개혁, 국민연금 개선 등 다양한 개혁과제를 수행해 왔다. 관가 주변에서는 “이 대통령의 심중을 알려면 원세훈 장관을 관찰하라”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로 원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복심을 잘 헤아리는 몇 안 되는 핵심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이 대통령이 1·19 개각을 통해 원 후보자를 차기 국정원장으로 낙점한 배경에도 두 사람만의 끈끈한 인연과 돈독한 신뢰관계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원 후보자가 이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현 정부 핵심 실세 자리를 구축하고 있지만 그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등 야당이 원 후보자를 ‘용산 참사’의 주무 책임자로 규정하고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청문회 보이콧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용산 사태에 대한 검찰의 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보이콧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어떤 식이 됐든 원 후보자 입장에서는 피 말리는 청문회 정국을 넘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이 보이콧을 결정할 경우 2월 국회는 2차 입법전쟁과 맞물려 또다시 극한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고, 청문회가 열린다 해도 야권의 파상공세로 책임론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물론 일부 보수 진영에서조차 원 후보자의 ‘자질론’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 정보기관 수장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경륜을 감안하지 않고 이 대통령이 권력기관 장악 차원에서 핵심 측근인 원 후보자를 국정원장으로 내정했다는 게 자질론 시비의 골격이다.
보수논객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앙대 이상돈 교수는 1월 2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번 1·19 개각인사에서 내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서울시청 출신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라며 “과연 국가 안보를 제대로 다루는 기관이 되겠는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교수는 또 “국정원장은 보통 직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분야의 전문성이나 실력 있는 사람을, 경력 있는 사람을 임명하는 게 순리”라며 “이른바 소위 보수정권이라면 국가의 안보를 중시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가 안보, 정보, 첩보를 경시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강한 우려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1월 28일 기자와 만난 야당 측의 한 인사는 “서울시에서만 30여 년 근무한 경력으로 어떻게 국가안보와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서울시 2인자’를 넘어 현 정부 초대 행안부 장관에 이어 국정원장에 내정된 원 후보자가 책임론과 자질론 논란을 극복하고 최고 실세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