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그런 만큼 대화 소재도 다양했다. 이런 다양한 소재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끌어 가기 위해 기자는 ‘재핑(zapping) 인터뷰’를 준비했다. 이를테면 TV 앞에 함께 앉아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화면에 잡힌 몇몇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새로운 인터뷰 스타일에 흥미를 보인 김장훈은 다양한 소재마다 깊이 있는 속내를 들려줬다.
무한도전
그가 생각하는 특별한 공연
재핑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눈길을 끈 프로그램은 재방송 많기로 유명한 <무한도전>이다. 김장훈은 가수지만 공연 연출자로도 유명하다. 와이어로 하늘을 나는 것은 기본, 최근엔 공학도들의 도움을 받은 최첨단 과학 무대까지 선보였다. 늘 새로운 무대를 선보여온 김장훈도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무한도전 공연’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김장훈의 24시’라는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내가 24시간 내내 무대 위에 있으면서 졸리면 자고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또 배고프면 먹는 공연이죠. 관객들도 하루 패스 끊어서 오고 싶을 때 와서 노래 듣다 가고 싶을 때 가는 형식이죠. 뭐 만약 하필 내가 잠자는 시간에 오면 억울하겠지만.
자다 깨면 노래하기 힘들 정도로 목이 잠겨 있겠지만 서서히 목소리가 풀려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일 테고, 노래를 계속 불러 목이 쉬어 있어도 그 나름의 매력이 풍길 거예요.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공연이죠.”
김장훈이 이런 공연을 꿈꾸는 이유는 노래를 잘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아침에 막 일어나 발성이 하나도 안 된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면 ‘정말 가수가 맞나’ 싶을 정도의 탁성이 나오는데 그는 개인적으로 그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인생을 틀 안에 끼워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은 노래 역시 ‘잘 부른다’는 ‘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서 가수를 판단한다. 본인 역시 자신이 원하는 노래가 아닌 노래 잘하는 틀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1박2일
그를 감동시킨 지방 공연
유난히 공연을 많이 하는 가수인 김장훈은 ‘전국 투어’라는 이름으로 지방 무대에서 자주 선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지방 중소 도시의 소극장 공연도 자주 가지며 팬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장학재단 주최로 박강성 남궁옥분 등과 함께 문화 소외지역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지방공연은 언제였을까.
“아무래도 보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보령에서 서해안 페스티벌 공연을 마치고 몇 달 지나 장학재단에서 하는 문화 소외지역 공연 일정을 보니 보령이 있더라고요. 정말 설레었어요. 보령이라면 정말 뜨거운 분위기가 형성될 거란 기대가 컸거든요. 역시나 대단했어요. 예술회관 입구에 ‘환영 김장훈’이라고 대형 플래카드까지 붙어 있더라고요. 나이 많은 관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내 소개를 하는 순간부터 첫 곡이 끝날 때까지 환호성이 계속됐어요.”
김장훈은 지난 2007년 12월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터지자 2008년 초 직접 봉사대를 꾸려 서해안 살리기 방제작업에 나섰고 그해 여름엔 관광객 유치를 위한 서해안 페스티벌 공연을 직접 기획했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터진 뒤 조사를 해보니까 태안 쪽은 이미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는데 보령 지역 70여개 섬은 작업이 어려워 방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더라고요. 서울에서 새벽 5시 출발해 차 타고 두 시간 가서 배로 한 시간 넘게 가야 섬에 도착해요. 절벽 타고 내려가서 방제작업을 했는데 서해안은 금방 물이 들어와 정작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됐어요. 그땐 내 방에 ‘물때 달력’까지 있었어요. 정말 1박 2일도 했죠. 봉사대 1진이랑 같이 갔다가 섬에서 자고 다음 날 2진 내려오면 또 같이 작업하곤 했으니까.”
아내의 유혹
왜 결혼을 안 하는 것일까
다시 채널을 돌리니 장서희와 김서형이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인기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나온다. 김장훈은 평소 이 드라마를 잘 안 봐 내용을 잘 모른단다. 그럴 만하다. 올해 나이 마흔하나, 노총각 가운데서도 원로에 속하는 그가 어찌 ‘아내의 유혹’이 뭔지 알 수 있을까. 도대체 그는 왜 결혼을 안 하는 것일까.
“결혼이요? 으~음 어느 순간에 시기를 놓치고 너무 많이 와버린 거죠. 지금은 자연스럽게 결혼을 안 하고 있는 것이고 언젠가 자연스럽게 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결혼한 후배들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결혼 안 하면 애라더군요. 무대에서 늘 꿈과 환상을 접하는 가수라 그런지 정말 난 현실에 적응 못한 애 같아요.”
“맞아요. 그때 잠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딱 이틀 동안. 무대에서 쓰러진 뒤 너무 힘들어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5일 뒤 전주 공연이 있어 이틀 누워있다 다시 공연 준비에 들어갔거든요. 그러면서 결혼 생각도 날아가 버렸죠.”
패밀리가 떴다
연예계 패밀리는 누구
채널에 <패밀리가 떴다>가 잡히자 연예계 마당발로 유명한 김장훈의 눈이 반짝거린다. 과연 연예계에서 소위 김장훈 패밀리는 누가 있을까. 그래서 기자는 그에게 지금 당장 연락해서 술자리를 만든다면 부르고 싶은 연예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친한 분들이 죄다 세상에 잘 안 나오는 분들이라 함께 술 먹긴 힘들겠는데요. 우선 싸이하고 (성)시경이는 군대가 있고 (전)인권이 형님은 칩거 중이시죠. (박)경림이는 산후조리 중이고 유희열과 이소라는 자기 앨범 나와도 활동을 안 할 정도로 잘 안 돌아다니는 친구들이라… 이거 참 술자리 가질 사람이 정말 없네요.”
무릎팍도사
그는 무얼 고민하며 지낼까
대부분의 채널을 다 돌려본 것 같아 재핑을 관두려고 하는 찰라 운 좋게 <무릎팍도사>가 화면에 잡혔다. 이번엔 기자가 ‘무릎팍도사’가 돼 그의 고민을 물어봤다.
“이미지가 날조(?)되고 있는 게 가장 고민이에요. 사실 난 공적인 사명감 같은 건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먹을 걸 안 먹고 입을 걸 안 입으며 기부나 봉사 활동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충분히 럭셔리하게 지내는데도 남는 게 있어 가족들 챙기고 그럼에도 더 비워낼 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까지 챙기는 것이거든요. 사실 인간은 까놓고 보면 다 똑같아요. 적어도 마음 속 죄는 다 짓고 나 역시 그래요. 아니 난 행동으로도 부끄러운 짓 많이 하며 한심하게 살아가고 있죠. 다만 ‘공연’과 ‘더불어 삶’에 대한 소신과 양심만큼은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인격에는 하자가 많은데 이 두 가지 때문에 나머지 하자까지도 다 좋게 보이는 것은 미안한 일이죠. 원래 난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 한두 가지 때문에 다른 부분까지 포장되는 게 정말 미안해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숨이 덜컥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겸손한 연예인을 정말 많이 만나봤다고 생각했는데 김장훈처럼 삶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겸손의 철학을 갖고 있는 연예인은 처음이었다. 이런 기자의 반응을 전혀 눈치 못 챈 김장훈은 최근 녹화한 <명랑회고전>과 <놀러와>에 함께 출연한 절친한 동료 연예인들이 본인의 ‘하자있는 인격’에 대한 뒷담화를 많이 해줘 적어도 30%는 사는 게 편해질 것 같다며 들떠있다. ‘무릎팍도사’를 자처한 기자가 이런 고민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자 그가 스스로 처방한 해답을 들려줬다.
“생긴 대로 살자, 자연스럽게 살자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언론에 공개된 것도 내 탓이고 이런 분위기도 내가 만든 것이잖아요. 인격이라는 것도 습관처럼 형성이 되는 만큼 사람들이 원한다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나한테 좋은 일이겠구나 싶어요. ‘하루하루 돌을 쌓는 마음으로 나를 바꿔나가면 좀 좋아질 수 있겠네’라고 정리된 상태예요.”
생각해보니 재핑을 하는 동안 가요 프로그램은 단 한 번도 채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수에게 가수로서의 목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올해 발표할 새 앨범으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거라고 얘기한다.
“여기저기 곡을 부탁했는데 유명 작곡가는 아니지만 우연히 실력파 신예에게서 좋은 곡을 얻었어요. 정말 좋은 곡이라 기대가 커요. 최근에 히트곡이 별로 없었는데 2009년에는 최신 히트곡으로 대한민국을 한 번 뒤흔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