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의 정종복 예비후보(후보)는 이 대통령의 측근임을 내세워 “여당 유력주자의 당선만이 경주 지역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친박계’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정수성 예비후보(후보)는 “반드시 이겨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웅변한다. ‘신라대첩’에서 마주 선 정종복-정수성 후보의 면면을 따라가 봤다.
정종복 후보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상득 의원의 양아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명박 정권 최대 실세인 이 의원과의 관계가 깊다. 그는 17대 총선 때 이 의원의 포항과 인근 지역구인 경주에서 당선돼 평소에도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또한 이 의원은 신중하고 꼼꼼한 일처리로 인해 원내부대표-사무부총장 등의 요직을 거친 정 후보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정 후보가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이 의원이 굉장히 애석해했을 정도다. 당 일각에서 ‘정 후보의 한나라당 공천은 떼논 당상’이라는 얘기가 일찍부터 나온 것도 ‘뒤에서 이상득 의원이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라는 소문이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현 정권 실세들과의 ‘보이지 않는 끈’은 정종복 후보에게 양날의 칼처럼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 때 그는 사무부총장과 공천심사위원회 간사 등을 맡으며 선거 전반을 책임지는 핵심 실세였다.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현 정권 실세와의 교감 속에서 그는 초선이지만 ‘전국구’ 정치인으로서 그 위상이 대단했다. 전국의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하면서 자연히 자신의 지역구 선거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초선으로서 18대 공천을 ‘주무르는’ 위세를 떨치며 웅비했지만, 정작 경주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
정 후보는 지난해 18대 총선의 패배에 대해 “지난 2년 반 동안 경주 지역구 관리를 전혀 하지 못했다. 지역구에서 내 얼굴을 못 봤다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초선이지만 한나라당의 사무부총장 등을 거치며 중앙무대에서만 주로 활동했다. 국가와 당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상대적으로 지역구 활동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지난 총선 때 ‘친박’ 바람이 불어 석패했다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를 뽑아준 경주시민들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경주 발전에도 더욱 진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정 후보는 지난해 총선 패배가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그는 지역주민들로부터 “힘이 세지고 나서부터 건방져졌다” “사람이 변했다”라는 험한 말들을 많이 들었다. 지역주민들과의 스킨십 부족이 부른 오해와 편견이었다.
정 후보는 이런 세간의 평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 후보는 자신의 사무실 건물 전면에 소년소녀가장들 집에 연탄을 나르는 사진을 크게 실었다. 그 자신도 재래식 시장에서 국밥을 천연덕스럽게 먹으며 주민들과 가까이하려고 한다. 정 후보 자신이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서민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는데, 그동안 검사 출신인 자신의 엘리트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번 선거에는 철저하게 ‘낮은 데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 지난해 공천심사위 간사로 활동했던 정종복 후보. | ||
일단 정 후보 측은 ‘박풍’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있다. 정 후보 측은 이에 대해 “대구 구미 등지는 친박 바람이 분명히 거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주 안동 등의 지역은 친박 바람이 ‘본향’에 비해 떨어지고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다. 지난 총선 때도 패인은 친박 바람보다 지역구 관리 소홀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지역구 주민들도 ‘공천만 받아오면 이번에는 다르게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은 지난해 12월 말 ‘라이벌’ 격인 정수성 후보의 출판기념회에 박근혜 전 대표가 참석했을 때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당시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 박사모 소속 회원이 거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일반 시민들은 그렇게 박 전 대표에 대해 열광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정 후보는 특히 정수성 후보에 대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이 지난해 12월 말 출판기념회 참석을 끝으로 사실상 중단됐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이번에 정수성 후보 사무실 개소식에 박근혜 전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캠프 안보특보를 지낸 정 후보에 대한 인간적 보은 차원에서 지난해 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것이다.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박 전 대표가 당시 주변 만류에도 끝까지 참석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것으로 박 전 대표는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라고 생각해 이번 사무실 개소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정 후보와의 ‘끈’을 끊으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친박 바람도 상당 부분 잦아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최근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화해 기류도 한몫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민감한 지역인 경주에 가지 않는 것은 최근의 ‘친이-친박’ 화해 모드를 깨지 않으려는 정치적 판단도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정종복 후보가 ‘박풍’과 맞서는 데엔 한나라당 친이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안경률 사무총장 등 친이 세력 핵심 실세들은 연일 정수성 후보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이번 선거를 친박 바람에 의존해 정략적으로 몰아가는 정수성 후보의 전략을 비판하며 ‘경제’를 이번 선거의 이슈로 끌어내고 있다.
18대 총선 ‘재수’에 나서는 정종복 후보는 “원내에 재진입하면 친이-친박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보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 자신이 친박 바람을 이겨내고 원내에 재진입하게 된다면 누구보다도 양대 계파의 화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경주시민들은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만드는 정치의 역설적인 미학을 정종복 후보에게 기대할지도 모른다.
“정수성 후보가 누구지?”
이번 경주 재선거에 출마하는 정수성 무소속 후보는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3시에 열린 출판기념회를 갖기 전까지 정치권에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용사’였다. 그는 경주에서 출생해 중학교까지 다닌 뒤 경북고로 진학했다. 그 뒤 갑종 202기로서 1966년 소위로 임관한 뒤 수도군단 참모장(준장)과 제1군 사령관 등을 거친 뒤 2003년에 전역했다.
정 후보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만 해도 군에서는 ‘알아주는’ 유명 인사였다. 그는 육사나 3사 출신이 아닌 비주류였던 갑종 출신으로서 사성장군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갑종장교는 고졸 이상의 사병이나 병역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후보생’을 뽑은 뒤 군사교육을 시켜 소위로 임관하는 제도로 40여 년 전에 이미 폐지됐다. 6·25 전쟁 때는 장교들을 보충하기 위해 사병 중에서 장교를 뽑았는데, 갑종 출신 장교들이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한다. 갑종 출신 장군은 약 200명이 배출됐는데 그 가운데 사성장군은 정 후보를 포함해 단 4명뿐이었다고 한다. 정 후보는 적어도 군에서는 주류의 온갖 견제를 뚫고 능력 하나로 ‘일가’를 이룬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천하의’ 정수성도 정치권에선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출판기념회를 통해 그는 혜성과 같이 정치권에 등장했다. 왜? 바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사격’ 때문이었다. 박 전 대표는 당시 서울에서 경주로 직접 내려와 축사를 친히 해주었다. 초선 출신도 아닌, 무소속의 예비후보에게 보여준 박 전 대표의 파격이었다.
그런데 당시 친이 세력에선 박 전 대표의 경주행을 두고 계파 갈등을 부추기는 해당행위로 몰아세웠다. 이것이 오히려 친이 세력과 상대방 정종복 후보에게 향하는 부메랑이 되어버렸다. 일개 무명후보에서 친이세력의 대항마로, 친이-친박 계파 갈등의 상징으로 일약 ‘전국구 스타’가 돼 버린 것이다.
사실 정 후보와 박 전 대표의 인연은 그리 길지도, 깊지도 않다. 지난 2005년 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의원들을 이끌고 원주의 한 사단 신병교육대를 방문했다. 그때 정수성 후보가 1군사령관으로서 직접 브리핑을 하는 등 박 전 대표 예우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특히 당시 두 사람 간의 대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대표님을 비롯한 의원님들을 직접 보니 굉장히 건강해 보이신다.”(정수성 1군사령관)
“웬만한 체력 갖고는 정치를 못해요. 정치는 건강해야 하고 몸 쓸 일도 많아요(웃음).”(박근혜 대표)
▲ 지난해 12월 정수성 후보 출판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 | ||
정수성 후보는 이런 박 전 대표와의 인연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번 경주 재선거의 의미에 대해 “(박 전 대표와의 관계는) 전생에 인연 같은 것이다. 반드시 이겨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그런데 친이 세력에서는 “그런 발언은 정치 초년생답지 않은 매우 정치적인 정략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당 내에서는 “자신의 금배지를 위해 한나라당의 ‘친이-친박’ 간 계파 갈등을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당시 일각에서 네거티브 전략으로 지난해 출판기념회 이후 나와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이번 사무실 개소식에도 오지 않는다는 말들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출마를 포기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런 네거티브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이겨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특히 정 후보는 “이번 사무실 개소식과 관련해서도 박 전 대표에게 전화도 드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하지 않은 것도 친이-친박의 세 대결로 몰려 박 전 대표에게 부담을 줄까봐 그랬다. 하지만 무소속으로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 후보는 일부 참모들이 사무실 개소식에 친박 의원들도 초청하고 연예인도 불러 세 과시를 하자는 주장에 대해 “그런 허세 부리지 말고 이번에 제대로 경주시민들의 힘을 한번 보여주자”라고 다독였다고 한다.
사실 이번 정 후보의 사무실 개소식에 박 전 대표의 참석 여부는 선거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 변수였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참석하지 않자 일각에서 계속 “이제 정 후보의 박풍 약발이 다 떨어졌다”라는 말들이 나왔다.
그런 지적은 자연히 경주시민들의 정 후보에 대한 흥미 하락과 지지율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뼈아프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 후보 측은 “공천 신청 전만 해도 정 후보가 박 전 대표와 수시로 통화한 것으로 안다. 박 전 대표가 ‘정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된다’라는 조언도 했던 것으로 안다. 친박 의원들도 자주 연락하고 같이 논의도 한다”라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은 또한 일각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잘나갔던 군 출신이 박근혜 전 대표나 한나라당 코드와 맞느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 대해 “정 후보는 노태우 정권 때 처음 별을 달았다. 현재 우리나라 장성 중에 당시 별 안 단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렇다고 자신의 정치적 코드와 맞지 않다고 당시 퇴역했다면 그것이 진짜 정치군인 아니겠느냐”라고 항변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오는 3월 30일 경주 인근인 대구를 방문한다. 이런 뉴스에도 경주는 지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풍이 살짝만 불어도 경주의 선거 결과는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친이-친박’ 대결의 상징처럼 돼 버린 경주 지역구. 정수성 후보는 지역발전이라는 경주 재선거의 취지를 변질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박근혜=당선’이라는 정치적 공식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