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입기자를 맡은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기자가 이미 국민감독 반열에 오른 김 감독과 특별한 친분을 쌓았을 리가 없다. 국민감독과 사석에서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좋은 취재기회라는 직업정신을 훌쩍 뛰어넘는 개인적인 흥분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자리에 초대된 모든 담당 기자들에게 김 감독이 직접 연락을 돌렸다는 것이다. 보통 구단 직원을 시켜 약속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굳이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고 했다. 본인의 손으로, 휴대폰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출입기자들을 불러 모은 김 감독의 정성에 6명의 기자들이 단숨에 강남 한복판으로 ‘집합’했다.
모두가 마다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직을 수락한 지 한 달 여. 김인식 감독의 얼굴은 무척이나 수척해져 있었다. 자리에 모인 출입기자들이 한 입으로 “많이 힘드시죠?”라고 인사말을 건네자 김 감독은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던 당시는 백차승(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출전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 말이 많던 때였다.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을 한 백차승의 국적은 미국. 팬들 사이에서 그런 백차승에게 국가대표 자격이 있냐는 논란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줄곧 “메이저리거와의 승부 경험이 풍부한 백차승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김 감독의 희망도 잠시. 백차승은 일부 언론을 통해 대표팀 고사 입장을 전달했다.
김 감독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는 상황이었다. 김 감독 역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백차승의 국적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백차승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고싶었던 것뿐이다. “백차승도 45명의 (예비엔트리) 후보 선수 중 한 명이다. 45명을 모두 살펴봐야 할 때인데 백차승에게 너무 이목이 집중되니 코칭스태프도 고달프다”며 “그냥 좀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 감독의 말에는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그 정도로 김 감독이 만들어낸 2회 WBC의 신화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저녁 자리 말미에 잠시 합석한 하일성 KBO 사무총장의 말이 김 감독의 어려움을 대변해줬다. “정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어요. 아무도 감독은 맡으려 하지 않았고, 주력 선수들도 대표팀 합류를 꺼려했죠. 남은 건 김 감독뿐이었습니다. 김 감독이 나를 살려준 것이나 다름없어요.”
김 감독은 오랜 친구 하일성 사무총장의 간절한 부탁을 수락하면서 “국가가 있어 야구도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한국 야구에 있어 김인식 감독은 ‘은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김 감독의 선택은 의리를 중시하는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선후배와 동료 등 주위 사람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김인식표 ‘믿음의 야구’는 의리를 중시하는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 셈이다.
▲ WBC대표팀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위치한 센트럴 오아후 리저널파크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연합뉴스 | ||
김 감독이 프로감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쌍방울과 두산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였다. 이미 17년 전 얘기가 됐다. 그가 쌍방울 사령탑에서 물러난 1992년, 원인은 구단 고위층과의 마찰이었다. 하와이 캠프 도중 코치들에게 심한 말을 한 고위층 인사에게 당당히 ‘할 말’을 하고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후 김 감독은 1995년부터 OB(두산)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2003년 말 선동열 영입 파동 당시 김인식 감독은 구단으로부터 부사장직을 제의받았다. 두산은 주니치에서 코치연수를 끝낸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고 김인식 감독을 일선에서 후퇴시켜 팀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김 감독은 “박용오 KBO 총재가 2년 전부터 선동열을 감독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말을 했다. 나도 선 감독을 놀게 할 수 없어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받아들였다. 그런데 신임 감독이 오면 무조건 내가 데리고 있던 코치들이 모두 옷을 벗게 된다. 후배들이 없는데 내가 부사장을 하면 뭐하나 싶어 그만두기로 결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른바 ‘덕장’(德將)이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으로 김인식 감독이 꼽힌다. 선수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주위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다. 대표팀의 전지훈련이 열렸던 하와이에서 김 감독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배려를 보여줬다.
김병현이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대표팀 합류가 무산됐을 때 모두가 그를 비웃었다. 여권을 잃어버린 것도, 발목을 다친 것도 모두 핑계라고 쏘아 붙이며 혀를 찼다. 이미 신뢰를 잃은 김병현은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모두들 1년이나 운동을 쉰 김병현은 안될 것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그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건 단 한 사람, 김인식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김병현에 대해 단지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일어날 수도 있는 거다. 다만 이번 일로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현이는 아직 희망이 있다. 흔치 않은 투구스타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충분히 메이저리거로 복귀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야구뿐만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며 진심어린 충고를 보냈다. 김병현의 돌출행동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 감독의 입에서 나온 격려의 말이었다.
김 감독에게 또 하나의 별명이 ‘재활공장 공장장’이다. 선수에 대한 끊임없는 신뢰는 결국 보답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포기했던 선수들을 꾸준히 지켜보며 다시 키워냈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한화의 톱타자로 출전하고 있는 강동우(35)는 부상과 부진을 오가며 서서히 잊혀져 가는 선수였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의 호출로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됐고, 꾸준히 기회를 얻어가며 다시 한 번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다.
강동우는 말한다. “저도 놀랄 정도예요. 흔히들 이렇게 기회를 주시면 감독님과 제가 학연이나 지연이라도 있는 것으로 오해하시는데, 이전에 전혀 감독님과 운동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별다른 인연도 없는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시는 게 저로서도 의아할 정도예요. 무조건 열심히 해 감독님 믿음에 보답하는 길밖에 없죠”라고.
이번 WBC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위대한 도전’이었다.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김인식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던진 ‘위대한 도전’이라는 단어는 이미 유행을 지나 사회적인 신드롬이 되고 있다.
“국가가 있어 야구가 있다”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는 명언을 쏟아내는 김 감독에게 온 국민이 환호하고 있다. 최악의 경제상황에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은 그의 명언 하나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고 있다. 이처럼 김 감독은 드라마틱한 감동을 선사하는 법을 알고 있다. 작위적인 연출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말과 행동에 팬들은 열광하고 그의 지지자가 된다.
지난 2005년 7월. 잠실에서 한화와 두산의 경기가 벌어졌다. 김인식 감독이 친정인 두산전에서 통산 1500경기를 채우는 날이었다. 전광판에 축하 메시지가 뜨자 잠실구장을 메운 두산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1995년부터 9년간 두산 사령탑을 맡으며 ‘미러클 두산의 창시자’로 불렸던 김 감독. 그에게 보내는 두산 팬들의 뜨거운 존경의 표시였다.
WBC 우승을 차지한 일본 대표팀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김인식 감독에게 보내는 극찬이다. 김인식 감독은 이번 WBC에서 전세계 야구팬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구사하는 작전은 어김없이 맞아 떨어졌고, 절묘한 용병술에 상대 더그아웃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진영(LG) 이용규(KIA) 고영민(두산) 추신수(클리블랜드) 등의 기용은 절묘하게 적중했다. 주전과 후보를 오간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120% 살리며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 또한 김 감독은 대회 내내 팔꿈치 통증으로 부진했던 추신수에게 끝까지 신뢰를 보냈다. 추신수가 베네수엘라와 4강전에서 터뜨린 쐐기 3점홈런, 일본과 결승전에서 터뜨린 동점 솔로홈런은 김 감독에게 보내는 값진 선물과도 같았다.
마운드에서는 부진한 ‘원투펀치’ 김광현(SK)과 류현진(한화) 대신 봉중근(LG)과 윤석민(KIA)을 내세웠다. 정현욱과 정대현, 임창용으로 이어지는 철벽 계투진을 구축했고, 김광현과 류현진은 고비 때마다 중간계투로 활용해 빈틈을 메웠다. 일본 언론은 2라운드 승자전에서 한국에 패한 뒤 “김인식 감독의 투수 운용에 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혀를 내둘렀다.
적시적소에 김 감독이 직접 조정한 수비 위치로는 상대 타구가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김 감독의 정확한 판단은 선수들의 투지와 어우러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미국 현지 중계진조차 “김인식 감독의 작전은 백발백중이다. 김 감독은 모든 수비를 관리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은 낭비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김인식 감독은 올해를 끝으로 한화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벌써부터 국내외 야구계가 ‘국민 감독’의 거취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 야구의 기개를 온 세계에 맘껏 떨친 김인식 감독. 그가 앞으로 어떤 역사를 써나갈지, 야구팬이 기다리는 그의 신화창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재원 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