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먼저,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자료 검색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양준혁은 참 행복한 선수다’라고. 안티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글들이 ‘양신’을 찬미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오래하다 보니까 팬들이 많이 좋아해준다. 그런데
영원히 내 편일 것 같은 몇몇 팬들이 작년에 좀 부진하다고 갑자기 안티로 돌아서선 나에 대해 마구 뭐라고 하시더라.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도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편이다.
―양준혁하면 ‘기록의 사나이’라는 수식어가 생각난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혼자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솔직히 ‘기록의 사나이’ 자체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내 나이 정도 되면 그런 수식어를 듣고 흥분하거나 예민해지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홈런 기록에 대해 가장 많이 신경 쓰였다. 작년에 깨져야 하는 게 339개를 치고 더 이상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 341개를 치기 위해 해를 건너 뛰어 한 30경기 정도는 뛴 것 같다. 시즌 초에는 ‘과연 올해 안에 기록을 깰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았다. 340개를 쳤을 때도 안심하지 못하겠더라. 부상도 있었고 왼손 투수가 나오면 빠지게 되고…, 한 해 20홈런을 치던 선수가 2개 때문에 절절 맨 꼴이다. 이젠 속 시원하고 후련하다.
―개인 통산 홈런 신기록을 수립한 후에 ‘그래도 진정한 홈런왕은 장종훈 선배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난 단 한 번도 홈런왕에 오른 적이 없었다. 꾸준히 출전하면서 신기록을 달성한 케이스다. 홈런 신기록은 홈런왕에 올랐던 선수가 그 명예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난 장종훈 선배가 진정한 홈런왕이라고 생각한다. 341개의 기록은 잠시 지나가는 정류장일 뿐이다. 나한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400홈런이다.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하지만 그걸 향해 달려가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 않겠나.
―한때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이라고 불릴 만큼 3할 하면 양준혁 선수가 떠오른다. 본인도 3할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9년 연속 3할을 친 적도 있지만 이 3할을 계속 유지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나한테 3할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까 조금만 못해도 되게 못한 것처럼 보인다. 작년 성적(0.278)도 그렇게 볼품없는 성적이 아니었다. 최형우나 채태인 박석민 등 후배들도 나랑 비슷한 성적이었다. 아마도 내가 연봉을 많이 받으니까 기대치가 높을 수 있다. 연봉에 비해 못한 건 맞다.
―‘한국시리즈 우승’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
▲2002년 삼성라이온즈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우승은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를 통틀어서도 첫 우승이었다. 그때까지 우승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워낙 우승 경험이 없다 보니까 우승을 못 시키는 팀의 중심 타자라는 비난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그 우승으로 인해 모든 게 풀렸다. 당시 내 개인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팀의 리더로서 선수들을 독려하며 파이팅을 이끌었다. 우승 확정 직후 (이)승엽이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 지난 15일 두산전에서 솔로홈런(개인통산 343호)을 날려 개인 최다홈런을 기록한 양준혁. 연합뉴스 | ||
▲맞다. 내가 좀 사연이 많은 남자 아닌가. 우승과 인연이 없는 선수다 보니 트레이드할 때 항상 그런 커리어가 따라 다녔다. 삼성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될 때도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커리어도 한몫했다. 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팀은 자랑 같지만 타격은 더 강해졌다. 난 내 것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포볼도 고르고 타점도 올리는 등 시너지효과를 불러 일으켰는데 그런 게 부각이 안 되더라. 우승하려면 투수가 강해야 한다. 아무리 타자가 잘 때려도 투수가 무너지면 우승과는 인연이 없다. 삼성이 2002년 우승했을 때 임창용 오승환 권오준, 이런 투수들이 잘 막아줬기 때문에 우승이 가능했다.
―이제 ‘트레이드’란 단어와 관련해서 얘길 해보자. 몇 차례의 트레이드 중에서 1998년 시즌을 마치고 1 대 3 트레이드가 가장 황당했을 것 같다. 당시 해태 임창용과 삼성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에다 현금 10억 원을 얹어서 트레이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임창용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양준혁과 1 대 3으로 트레이드 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믿질 못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거포 양준혁에다 다른 선수 2명을, 그것도 현금까지 얹어서 트레이드를 한다는 게 제정신으로는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 당시 사장님한테 미운 털이 박혔다. 내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안 들었다. 당시 IMF가 왔는데 사장님이 약속했던 부분을 잘 안 지키셨고 난 선수들을 대표해서 사장님께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대들었다가 결국엔 트레이드로 반응이 온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나름 잘나가는 선수라 큰소리를 친 건데 진짜 트레이드를 시키더라. 트레이드 얘기도 전화 한 통으로 통보만 받았다. 정말 황당했다. 그땐 야구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며 거품 물고 날뛰었다. 너무 억울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삼성에 들어가려고 1년을 재수하면서까지 기다렸고 내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팀이었는데 이 팀을 떠난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다. 정말 야구하기 싫었다.
―당시 김응용 해태 감독(현 삼성라이온즈 사장)이 전화로 팀에 합류할 것을 종용했다고 들었다.
▲감독님이 전화를 하셨다. 왜 안 들어오냐고. 그때
감독님께 해태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억울하고 심적으로 힘들어서 도저히 운동을 못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1년만 버티라고 하셨다. 1년 있다가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당시엔 한국에 있기가 싫어서 아는 사람 통해 미국 마이너리그 팀을 알아보고 있었고 거의 성사 단계에 와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이 따뜻하게 이해해 주시지 않았다면 난 아마 한국을 떴을 것이다.
▲ 2002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삼성의 양준혁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 ||
▲어휴 나도 사장님한테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듣기엔 욕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진심으로 선수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 표현만 강할 뿐 마음은 정말 따뜻한 분이시다. 사장님과 1 대 1로 얘기해서 뭔가를 요구하면 다 들어주셨던 것 같다. 방황하는 날 해태로 이끌어서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게끔 동기부여를 해주신 분도 사장님이고 나에게 다시 삼성 유니폼을 입게 해주신 분도 그분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이다. 나한테는.
(양준혁은 SK 김성근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LG 시절 불과 1년간 사제의 인연을 맺었을 뿐인데 그 1년이 양준혁한테는 ‘야구의 혼’을 깨닫게 됐던 중요한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양준혁은 게임에서 부진했다고 김성근 감독이 경기장에서 숙소까지 뛰어오라고 했던 일화를 설명하면서 ‘그때는 분통이 터지고 내 자신이 너무 창피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나를 위하는 감독의 혹독한 가르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회상했다. SK가 우승 이후에도 계속 좋은 성적을 내는 배경에는 ‘인간 개조를 시키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 철학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SK 선수들을 보면 눈빛이 달라요”라며 김 감독의 야구에 존경과 애정을 나타냈다.)
―‘내 몸 속엔 파란 피가 흐른다’라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자신의 몸속에 파란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나.
▲트레이드 돼서 다른 팀을 떠돌며 다시는 삼성 유니폼을 입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결국 삼성에 다시 오는 걸 보면서 내 몸 속엔 파란 피가 흐른다고 믿었다.
―지금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한 살이다. 나이 먹은 걸 절감할 때가 있다면?
▲기사를 통해 새삼 내 나이를 느낀다. 조금만 부진해도 나이 운운하는 기사가 바로 나온다. 젊은 선수들이 부진할 때는 컨디션 난조로 보도되는데 왜 고참 선수들이 부진하면 바로 나이로 연결시키는지 모르겠다. 젊을 때처럼 똑같지는 않아도 야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어려움이 왔을 때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즉 만세타법처럼 몸에 맞는 타격폼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그걸 못하면 은퇴로 가는 거다.
―송진우(43·한화) 이종범(39·KIA) 선수 등 고참 선수들의 활약을 보면서 공감대를 느낄 때가 많을 것 같다.
▲진우 형은 나보다 세 살 많은 선배인데 그런 분들이 오래 해줘야 나도 버틸 수 있다. 종범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선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많기 때문에 고참 선수들이 잘 해줘야 나도 덩달아 신바람을 낼 수 있다. 작년에 종범이 은퇴 얘기가 나왔을 때는 남 일 같지 않았다.
―인생의 만루홈런은 언제쯤 칠 생각인가? 팬들도 이젠 야구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도 챙겨야 한다고 성화더라.
▲결혼 말인가? 항상 생각은 하는데 잘 안 된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나?
▲좀 밝고 친구처럼 편안한 여자? 외모도 좀 괜찮으면 좋을 것 같다.
―그동안 ‘결혼할 뻔’했던 여자가 있었나?
▲있었다. 내가 떠나진 않았고 그쪽에서 날 떠났다. 가끔 후회될 때도 있다.
야구와 관련해선 자신의 철학을 내비치며 말을 아끼지 않던 양준혁이 결혼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말이 짧아진다^^. 어떤 팬은 ‘준혁 오빠야, 몸만 온나’하며 애정을 나타내고 또 어떤 팬은 ‘이젠 야구가 아닌 인생에서 만루홈런을 쳤으면 좋겠다’라고 은근히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느긋하다 못해 관심이 없는 투다.
양준혁은 인터뷰 때마다 나오는 결혼 얘기가 이젠 듣기 싫은 질문 중 한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양준혁을 인터뷰할 때마다 그걸 꼭 물어봐야 하는 기자도 지겹기는 마찬가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