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운의 11세 당시 모습. | ||
하지만 정보당국과 북한 전문가 그룹 일각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권력승계가 지난해 8월 김정일 건강이상 이후 서둘러 마련된 징후도 한·미 정보당국의 대북감시망에 포착되고 있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절대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평양 로열패밀리와 군부를 포함한 권력실세들 사이에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마카오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된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남 김정남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때 후계 1순위에 꼽혔고 권력실세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비롯한 로열패밀리 핵심멤버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김정남이 이복동생 김정운의 후계지명에 때맞춰 평양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했으나 버티고 있다는 게 정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남은 지난 5월 말 중국 상하이에 머물던 중 북한에서 급파된 국가안전보위부와 호위총국(우리의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에 의해 평양행 요구를 받았다. 소식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이뤄진 조치였지만 베이징에서 평양행 고려항공기에 태워지기 전 빠져나가 자신의 근거지인 마카오로 잠적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남은 6월 6일 일본 N-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측근들이 평양에서 최근 체포됐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나의 측근들은 모두 북한이 아닌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며 부인했다. 그러면서 김정운 후계설에 대해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며 직접적인 확인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거취를 둘러싸고 일각에서 중국 망명설까지 제기하고 있는데 대해 일단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정보 소식통은 “김정남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후계구도 본격 구축 과정에서 김정남 추종세력이 모종의 반발행동을 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이럴 경우 권력암투 형태의 이상동향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3대 세습’가동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공군 제814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 ||
또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정됐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건 정운에게 물어보라”는 등의 언급도 했다. 이런 김정남의 행동은 자유분방해보였고 ‘황태자’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김정운 쪽으로 권력의 풍향계가 방향을 잡으면서 김정남의 힘은 급격히 빠졌다고 한다.
앞서의 정보 소식통은 “김정남은 마카오 카지노 등을 드나들며 많은 빚을 진 것으로 현지에서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마카오와 홍콩에서 고급 술집을 드나들며 현지의 여성들과 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나 주목받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 현지에 머물며 방탕한 행동을 해온 김정남의 발목을 김정운의 권력승계를 계기로 묶어둘 필요가 있다는 북한 관계당국의 조언을 김 위원장이 수용한 게 김정남 평양압송 시도의 배경이라는 게 소식통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6월 3일자 보도에서 ‘정보당국의 관계자들은 북한 군부와 김정운의 형이 막후에서 권력승계 계획을 막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또 ‘북한의 마지막 우방인 중국도 3대째 권력승계를 부자세습 형태로 가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보도와 관련, 소식통은 “김정운의 권력승계 보도는 성공적인 권력이양을 공표한 게 아니라 이제 첫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이라 봐야 한다”면서 “그만큼 복병이 많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사실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체제에는 별다른 준비를 해오지 못했다. 이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건강을 자신해 왔던 점에서도 확인된다. 2006년 10월 중순께 김 위원장은 자신의 집무실에 모인 핵심간부들에게 “동무들, 내가 팔구십까지는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지 않겠소. 난 자신 있어. 자신 있고말고”라고 공언한 적이 있다. 2005년 12월 아들을 비롯한 가족과 최측근들에게 “혁명의 후계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모두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처럼 자신의 건강에 대한 든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하지만 불과 2년여 만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2008년 8월 중순 ‘순환기 계통의 이상’으로 쓰러진 것으로 우리 정부 당국도 확인한 건강문제 때문이다. 특히 뇌졸중은 일시적으로 극복했다 해도 다시 한 번 닥칠 경우 최고 권력자도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건강 이상 등으로 변고를 맞을 경우 북한 권력층 내부는 격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정 또는 책정했다 해도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반발 또는 견제 움직임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김정운 측이 일단 칼자루를 쥔 형국 속에서 군부의 향배가 향후 북한 권력승계의 완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이가 어린 김정운의 입장을 감안할 때 김정일 위원장이 김정운에게 권력을 넘기는 중간단계에서 군부가 집단지도체제 형태로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 2001년 5월 김정일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맨 위 사진)이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아이, 부인·유모로 추정되는 여성 두 명과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됐다. 연합뉴스 | ||
군부와 함께 김 위원장과 혈연 등으로 얽힌 로열패밀리가 김정운 후계체제의 공고화 과정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의 남편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은 국가안전보위부와 검찰·재판소 등 권력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핵심 중 핵심으로 지목된다. 장성택은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에 포함돼 서울을 방문했을 때 최고급 양주로 꼽히는 발렌타인 30년산을 병째 비워내고 거침없는 실세로서의 언행을 보여 우리 측 관계자들로부터 눈길을 끌기도 했다. 관계당국은 장 부장이 북한의 사실상 2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낙점을 받은 김정운을 놓고 장성택과 김경희 등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가 향후 북한 권력의 또 다른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부자세습을 전제로 한 ‘김정일 후계자’ 문제가 처음 세인들의 관심사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게 된 것은 2001년 5월, 그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다 적발된 사건 때문이다. 김정남은 당시 위조여권을 소지한 채 아들로 추정되는 네 살배기 남자아이와 부인·유모로 보이는 여성 두 명과 함께 일본에 들어가려다 들통이 났다. 이 때문에 김정남은 완전히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 김정남이 후보에서 밀리면서 차남인 김정철이 유력한 후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김정철이 승계 1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는 새 정보가 나오면서 한때 북한 권력승계 구도는 혼미해졌다. 2006년 2월에는 한 북한 전문가가 “정철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우리 정보당국이 판단하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그는 “김정철이 여성 호르몬 과다분비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를 정보기관으로부터 입수했다”고 전했다. 김정철의 내성적인 성격을 김 위원장이 못마땅해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삼남인 김정운이 후보 우선순위로 급부상했다. 김 위원장의 어린 막내아들로만 간주되던 정운의 존재는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김 위원장의 사저에서 요리사로 머물다 귀국한 그는 2003년 6월 <김정일의 요리인>이란 책을 냈다.
이 책에서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정철보다 정운이 더 유력하다”고 증언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엄마를 많이 닮은 김정철보다 자신을 빼닮은 김정운을 더 좋아했다”고 전했다. 특히 2007년 3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언급은 김정운을 부자세습시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하게 했다. 김 원장이 “셋째아들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한 게 소문이 나면서 김정운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김정운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어릴 적 사진이 공개된 것을 제외하고는 현재의 모습이 어떤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고영희의 둘째 아들로 1990년대 후반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 잠시 다녔다는 정도가 알려진 내용의 전부다.
그렇지만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의 후계문제와 관련, 김정운이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주목해 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의 대북 정보라인은 북한의 국제전화 통화감청을 통해 후계구도와 관련한 결정적인 힌트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관련 정보는 핵심층에만 보고된 채 극비에 부쳐졌고 국정원의 최고위급 간부 사이에서도 보안에 신경 쓰는 상황이었다는 전언이다.
2007년 봄에 나돌았던 ‘김정일 건강이상설’의 경우도 이 과정에서 불거졌다고 한다. 당시 유럽지역으로 해외여행 중이던 김정운과 평양의 김정일 위원장 간 통화내용을 서방 정보기관이 감청했는데 김정운이 “아버님, 건강을 각별히 챙기셔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김정일의 건강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고 이어 ‘김정일 건강이상’ 소문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김정운 대세론’은 한때 어린 나이 문제로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장남인 김정남보다 12세나 어린 나이 때문에 후계자로서 자리하기 어렵다는 진단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정철과 김정운의 나이 차이가 두 살인데 그런 논리라면 김정철도 어렵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며 반론을 제기한다.
나이 문제와 함께 신변이상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김정운이 강원도를 방문하던 중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여름 쓰러진 것도 아들 김정운의 사고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란 얘기였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의 후계자 내정 첩보 등으로 볼 때 김정운의 중상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정보기관 안팎에서는 이런저런 ‘다른 얘기’들도 나온다. 국정원이 좀 더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판단할 문제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공관에 북한이 ‘김정운 승계’ 관련 전문을 보냈다는 첩보를 토대로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운이 낙점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명박 정부가 국면전환을 위해 북한 후계 문제와 관련한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한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는 “공관에 보낸 전문 외에도 다른 정황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후계 문제와 관련, 최근 <뉴욕타임스>는 ‘미 중앙정보국(CIA)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을 친애하는 지도자(Dear Leader)라고 표현하는 것에 빗대어 김정운에게 귀여운 지도자(Cute Leader)라는 닉네임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어린 후계자에 대한 미 정보 당국의 별칭 속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부상한 김정운이 여전히 불안한 카드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지금으로선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속할 가능성이 높은 김정운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김성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