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승준 위원장이 현 정권 개혁로드맵의 첫 단추로 ‘사교육 철폐’를 들고 나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역대 정권이 교육 문제만큼은 ‘정면대결’을 외치며 온갖 처방을 썼지만 작금의 왜곡된 교육현실을 감안하면 백약이 무효였다. 이 난제에 이명박 정권이 최근 다시 ‘칼’을 내밀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교육 문제’라는 100년 대계의 골칫거리를 풀 해결사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을 내려 보낸 것이다. 그는 이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으로 오랫동안 활약해왔다. 하지만 곽 위원장의 갈 길은 멀다. 그는 ‘사교육 철폐’라는 한 단어로 기존 교육제도에 일대 메스를 가하려고 한다. 하지만 관료주의의 대명사로 불리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완강한 저항과 여권 소장파 출신인 그의 정책에 일단 ‘노’를 외치고 보는 여당 반대세력의 발목잡기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중도론’ 주창자 가운데 한 명인 곽 위원장은 ‘사교육 철폐’라는 화두 하나로 이명박 정권의 개혁 로드맵 전체를 관통하려 한다. 과연 곽승준 위원장의 ‘위험한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왜하필 교육 문제를 건드리는 거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처음 사교육 철폐 문제를 빼들었을 때 교과부 관계자들은 영 마뜩찮은 반응을 보였다. 사실 곽 수석의 전공은 환경경제학이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기획했는데 그 사업성 평가까지 미리 계산하는 등 깔끔한 일처리와 비전 제시로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그는 청와대 초대 국정기획수석을 거쳐 현재의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복귀하기까지 산업은행 민영화, 금산 분리 완화,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 등 굵직한 정책을 모두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명박 정권의 ‘개혁 전도사’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복귀한 뒤 최근 ‘사교육 철폐’를 골자로 하는 교육 개혁 정책을 밀어붙이자 교과부 관료들은 ‘사람 경영을 경제학의 법칙으로 재단하려 한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 국무회의에서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이 대통령으로부터 학원 로비와 관련해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과부는 더 더욱 기분이 상해 있다. 교과부 일각에서는 “안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질책을 받았던 보도 내용의 배후에 곽승준 위원장이 있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까지 한다. 급기야 안 장관이 직접 나서서 질책 보도에 대한 해명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양측의 공방은 진실 규명을 넘어 생존을 위한 사투 단계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사교육 철폐에 대한 교과부와 곽 위원장 간의 경쟁은 그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짐을 싸야 할 정도로 ‘서로 너무 멀리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곽 위원장은 기존의 교육정책 전체를 불신하며 사교육 철폐에 대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일까.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곽 위원장을 절대 신임하고 있음을 그 배경으로 들 수 있다. 사실 그는 지난해 촛불정국 후폭풍으로 국정기획수석에서 경질된 뒤 ‘야인’으로 지내다 올해 1월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원래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과 친분이 깊었던 그는 지난해 개각 때 이주호 현 교과부 차관과 함께 잔류가 유력했지만 막판에 전격 경질됐다. 이 과정에서 이상득 의원의 ‘형님 파워’에 이 대통령의 ‘좌뇌’로 통하는 곽 위원장마저 날아갔다는 관가의 쑤군거림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과 특유의 활달한 성격으로 언젠가는 복귀를 할 것이란 게 정가의 대체적 분석이었다.
사실 그는 이 대통령과의 인연이 오래됐다. 90년대 말부터 안면을 익힌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정책을 의논하게 됐다고 한다. 그 뒤 본격적인 자문에 나선 것은 2004년경이라고 한다. 당시 이 대통령은 곽 위원장에게 “일요일 오후에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 여러 교수들과 스터디를 시작했다. 곽 위원장은 외부 전문가를 섭외하고 학습 자료를 준비하는 등 1년 넘도록 실무를 도맡았다. 특히 다변인 곽 위원장이 지난 대선 때 ‘이론적인’ 보고에 너무 치중하면 이 대통령은 가끔 “당신은 교수 출신이라 너무 이론적인 설명을 많이 한다. 복잡하게 얘기하지 말고 간단하게 이야기하라”고 애정 어린 호통도 쳤다고 한다.
▲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왼쪽 사진)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오른쪽 사진). | ||
이러한 이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은 곽 위원장이 ‘주무부서 관계자’가 아님에도 사교육 철폐를 골자로 한 교육 개혁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도록 하는 뒷배가 됐다. 사실 미래기획위원장직은 정부개혁 남북문제 인재개발 경제발전 사회통합 등의 거대담론을 업무영역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과 같은 교육 현장의 정책과는 일정부분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미래기획위원장직은 비상임인 데다 그동안 비중 있는 인사가 임명됐던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최근 곽 위원장이 사교육 철폐를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더욱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사교육 철폐를 들고 나왔던 것은 이명박 정권 2기 출범과 깊은 관계가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이 ‘중도론’을 외치며 그 동안의 국정 운영 기조에 대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1기 정권의 민심 얻기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곽 위원장은 올해 초 복귀한 뒤 이 대통령이 ‘혼신을 다해’ 열심히 일을 하는데 지지율은 바닥을 기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평소 사석에서 “지금 국민이 기대하는 것,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잘하는 것, 지난 정부는 못했지만 현 정부는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과거에 우리를 지지했던 층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부분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소신은 사교육 철폐라는 간단한 메시지 하나로 이명박 정권의 개혁 로드맵을 관통하려고 한다. 관료주의 개혁과 ‘중산층 살리기’, 그리고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는 3단계 구상의 첫 번째 출발이 바로 사교육 철폐라는 교육 문제였던 것이다.
먼저 그가 사교육 철폐 카드를 빼든 것은 이명박 정권이 아직까지 해내지 못한 관료주의에 대한 정면도전 성격이 짙다. 그는 평소 “공기업 노조와 임원, 관료, 일부 정치권이 전부 개혁 저항세력이었다. 정권 안정을 내세우며 굉장한 반대 세력을 구축했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로 이끌면 따라온다. 그러나 촛불시위로 반대 전선이 넓게 형성돼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정권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강력하게 관료주의 타파를 외친다면 공무원들도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권 초기부터 ‘강부자 내각’ 등 인사 실패와 민심과의 소통 불통으로 인해 공무원 사회의 지지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특히 곽 위원장과 코드를 맞추며 사교육 철폐를 외치고 있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최근 안병만 장관에게 “개혁하지 않으려면 딴 일을 하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 곽 위원장의 관료주의에 대한 현재의 시각을 대변해주고 있다. 관료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고 개혁하기 힘든, 파벌주의와 순혈주의가 뿌리 깊은 부서가 바로 교과부라는 게 관가의 정설이다. 이런 점에서 곽 위원장이 관가 개혁의 상징으로 교과부 개혁 카드를 빼든 것은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가늠할 중요한 잣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관료주의에 대한 개혁과 함께 사교육 철폐로 대변되는 곽 위원장의 교육 개혁 정책은 이명박 정권 2기의 국정 운영 기조 핵심인 ‘중산층 살리기’와 ‘중도론’으로 이어진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원 싸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복귀해 던진 화두가 바로 ‘휴먼 뉴딜’이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성장을 기본으로 한 녹색뉴딜을 추진하는 것과 함께 그는 복지를 기반으로 한 휴먼 뉴딜 정책에 ‘올인’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사실 휴먼 뉴딜은 이명박 정부의 승부처라고 생각한다. 흔히 축구는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이기는 싸움이라고 하지 않느냐. 정치도 누가 중산층의 마음을 얻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중산층을 잡아야만 이 정부가 산다. 그게 안 되면 정말 망한다는 심정으로,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휴먼 뉴딜’은 현재의 중산층을 지키고, 서민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고, 저소득층 아이들이 장래에는 중산층이 되도록 돕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교육이 그 핵심과제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그런데 곽 위원장의 이런 중산층 살리기 정책이 ‘중도론’을 기치로 내건 현 여권의 차기 대선 전략과 접점을 이루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진단이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청와대가 최근 강조하는 중도론은 경제력을 갖춘 안정적인 중산층의 확대로 좌우의 이념 대결을 뛰어넘겠다는 게 전략의 핵심이다. 또한 사교육 철폐로 대변되는 현 정권의 정책 이슈 변화 움직임은 그동안 정치 이슈 중심으로 치러진 역대 선거가 다음 선거에는 ‘생활 정치 이슈’로 옮겨갈 것을 예상해 만든 전략적인 프로그램이다. 이에 민주당은 허를 찔린 느낌일 것이다. 자신들의 영토마저 여권의 선점으로 더 이상 중도론을 외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현 정권이 정치 이슈가 아니라 교육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정치쟁점화할 경우 민주당의 대응이 곤란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곽 위원장의 사교육 철폐는 교육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위한 첫 번째 로드맵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승준 위원장이 사교육 철폐를 소리 높게 외치는 것은 어쩌면 주무 부서를 무시한 ‘월권’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자기 개혁에 둔감한 교과부를 이번에야말로 바꾸어야 한다는 게 여권 소장파의 주장이다. 백약이 무효였던 교육정책이 곽 위원장의 한 방에 과연 약발이 먹히게 될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