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숙 전 총리(왼쪽 사진)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유시민 전 장관(오른쪽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제 관심은 친노 세력의 중심에 선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에게로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가장 급부상한 ‘친노 인사’들이다. 노 전 대통령과 때로는 정치적 동반자 관계로, 때로는 인간적 동료이자 벗과 같은 관계로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왔다. 두 사람이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들어온 정치적 삶과 향후 정치행보를 추적해보았다.
▲ 레이디 퍼스트… | ||
노 전 대통령 역시 생전에 한 기자에게 ‘오프 더 레코드’로 “내 마음대로 차기를 지명하라면 한명숙”이라고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진의가 얼마나 담긴 멘트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노 전 대통령이 한 전 총리를 ‘남다르게’ 여기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까닭은 한 전 총리 특유의 ‘부드러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부드러움 속에 갖춰진 강인한 카리스마는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내는 모습을 통해 재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부드러운 외모에 담긴 강인함은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다. 평양에서 태어난 한명숙 전 총리는 1970년 강원룡 목사가 주도한 크리스천 아카데미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재야 운동에 뛰어들었다. 1979년에는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렀으며 이때부터 재야인사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그는 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진보적 여성운동을 조직화해 남녀고용평등법·성폭력처벌법 개정 등에 참여해 여성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 것은 재야운동 시절 인연을 맺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17대 국회에서 민주당 비례대표직을 제안받으면서였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노 전 대통령과 공식적인 첫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한 전 총리와 ‘사적인’ 인연이 없었음에도 그를 장관에 발탁해 눈길을 끌었다.
2002년 대선 때 여성부 장관을 맡고 있던 한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할 기회조차 없던 상황.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시절 여성부의 업무 보고를 눈여겨보며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여성부 장관 시절 한 전 총리는 여성 근로자의 출산휴가를 30일 더 연장하고 출산휴가 급여를 신설하는 등 여성 권익 신장에 앞장섰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05년 4월에 열린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다. 당시 문희상 신기남 의원 등과 함께 후보로 나선 한명숙 의원에 대해 ‘노심’을 얻은 후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결과는 문희상 후보의 승리였으나,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당의장 선거가 끝난 뒤에 “여성이 복수로 나왔으면 표가 좀 나왔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도 한 전 총리의 ‘필요성’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그런데 한 전 총리의 정치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때는 지난 2004년 환경부 장관직을 그만두고 17대 총선에서 고양 일산 갑에 출마했을 무렵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5선 중진인 홍사덕 전 의원을 꺾으면서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 ‘사건’을 통해 한 전 총리의 정치력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드러움을 표방했던 한 전 총리도 사안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인사들의 ‘방패막이’를 자임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당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정부 당국자가 현지에 직접 가서 협상의 장을 열어야 하는 만큼 (노무현) 대통령이 이 시기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대통령에게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탈레반과 접촉하고 협상하라니 도대체 상황인식을 어찌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냐”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 의원을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친노 차기 주자’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던 한 전 총리는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당시엔 함께 출마했던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친노 후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각을 세우면서 “내가 친노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께서 ‘친한명숙파’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든다”고 밝혔던 것. 그는 “친노 주자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느냐”는 질문에 “부담이라기보다 나는 대통령선거 출마선언을 한 사람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국민의 대안이다. 국민의 대안으로서 국민의 바다에 나를 던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한 사람의 범주에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를 주목받게 한 배경 역시 바로 ‘친노 주자’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민주대연합론’으로 반MB 연합전선을 구축하려고 하는 민주당은 현재 한명숙 전 총리,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 친노 인사들의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한 전 총리는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데다 유시민 전 장관에 비해 친화력이 강해 민주당 내에서도 호응이 높다는 후문이다. 또한 한 전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던 인연도 있어 ‘민주대연합론’이 구체화될 경우 ‘친노’에 이어 ‘친DJ주자’로 이름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8년 2월 퇴임하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한 통의 편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쓴 적이 있다. ‘고독한 대통령, 인기보다는 원칙을 순간보다는 역사를 생각한 대통령… 참 고생 많이 하셨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오늘의 아픔과 상흔을 묻어 내일의 발전을 만들어야 한다.’ 과연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 받겠다”고 밝힌 한 전 총리가 앞으로 어떠한 정치행보로 고인의 뜻을 실현하게 될지 당시의 글귀가 새삼 와 닿는 시점이다.
▲ 이제 고향길로… | ||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리는 유시민 전 장관은 고인과 남다른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다.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 노무현’에게 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무렵.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모태인 정법회(정의실천법조인회)에서 처음 본 노 전 대통령의 첫인상은 그저 말없이 앉아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후 88년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이해찬 의원 보좌관의 신분에서 지켜본 당시 노무현 의원은 대우자동차 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부 노정국장을 상대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문제점을 따지고 있었다.
유시민 전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노정국장이 말도 안 되는 답변으로 버티니까 마이크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분개하더라”며 “그걸 보고 여당이던 민정당 보좌관들도 나보고 ‘노무현 의원 알면 언제 인사 한번 시켜줘라, 남자 대 남자로서 반했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고 말했다.
유시민 전 장관 역시 ‘남자 대 남자’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반해 그를 지지하기로 결심한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와 유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던 그는 2002년 9월 갑작스레 ‘절필’ 선언을 하고 노무현 지지를 선언했다. 더 나아가 2002년 11월 직접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어 ‘노무현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개혁국민정당은 일반 당원들이 내는 매월 1만 원의 당비를 근간으로 해 만들어진 대한민국 정치사 최초의 시민중심 인터넷정당이었다.
노무현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당이었던 만큼, 애초부터 ‘노무현 정당’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 먼저 들른 곳 역시 민주당이 아닌 개혁국민정당이었다.
유 전 장관이 노무현 지지를 선언하며 내뱉은 말은 우리나라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학을 안 나왔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서울대를 나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내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 그 사람을 위해 일할 의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유시민 전 장관은 변함없이 ‘노무현 지키기’에 앞장섰다. 탄핵위기에 처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지만 그는 “나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 사령관이 진두지휘를 하다보면 잘하는 일도 있고 못하는 일도 있는데 그럴 때 같은 편이라면 일단 사령관을 따르고 지지해야 한다”며 ‘나홀로 지지’를 이어갔다.
그는 최근 추모공연에서 과거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느꼈던 애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어떤 정치인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은 정치사상이나 이념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며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을 한결같이 사랑했는데 때로 심한 모욕을 감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을 이야기할 때 노 전 대통령과 닮은 점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한 가지는 바로 ‘화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감성적 화법’으로, 유 전 장관은 그 특유의 ‘논리적 화법’으로 평가받곤 한다. 동시에 두 사람 모두 다소 거칠고 투박한 말투로 많은 지지자만큼이나 안티 팬을 만들기도 했다. 정치사상이나 이념 등 정신적인 공통점과 더불어 이러한 그의 ‘외양적’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모습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부 ‘투영’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그가 한없이 눈물을 쏟자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은 과거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흘렸던 ‘노무현의 눈물’과 닮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부에서 ‘노무현의 복제품’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유 전 장관은 차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 대선후보 시절 한 인터뷰에서 그는 “노 대통령님은 연민, 동정심을 가지게 만드는 분이다. 독특한 리더다. 나는 객관적으로 참 잘나가는 사람이다…. 나는 동정 연민 안쓰러움 같은 것을 가지게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답변마저도 노 전 대통령의 ‘감성적 흡인력’을 평가한 것이었다.
이렇듯 그가 지금까지 보여 온 정치행보와 소신을 살펴보면, 앞으로 그가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이어갈 것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한 정치평론가는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이나 애정으로 지지했던 것과 동시에 그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철학을 실현하려고 애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신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할 것”이라고 평했다.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낸 지지자들은 그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다. 유 전 장관과 친노 주자들이 과연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될까. 이 결과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남긴 정치적 유산이 될 것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