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깜짝 방문해 억류돼 있던 자국 여기자 두 명을 데리고 돌아가자 여론의 관심은 ‘국내에선 누가 나설까’에 쏠렸다. 북한 체제 비난 등의 죄목으로 현대아산 직원이 북한에 억류된 지 벌써 4개월이 넘어서던 시점이었다.
이 민감한 시기에 군사분계선을 넘은 사람은 다름 아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었다. 지난 7월 말 납북된 우리 어선 연안호 선원 4명이 아직 억류돼 있지만 이들 문제는 애초부터 현 회장 몫은 아니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는 현 회장의 모습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포스’를 느끼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어느덧 그는 대북관계에서 ‘대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리를 굳혔다.
현대그룹 측은 이번 현 회장 방북이 남편 고 정몽헌 회장 추모와 대북사업 정상화를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난 2003년 정몽헌 회장 사망 이후 현대그룹은 매년 기일(8월 4일)에 맞춰 금강산에서 추모 행사를 거행한 뒤 그곳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개최했다. 그러나 지난해엔 불의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여파로 현 회장은 금강산에 가지 못하고 하남 창우리 선영을 참배했다.
올해 남북관계는 지난해보다 더 악화됐다. 당연히 그룹 측에선 올해 고 정몽헌 회장 6주기 추모행사도 금강산에서 치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기일 직전 북측이 ‘가족만이라도 참배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현 회장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난 4일 현 회장 일행은 북측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관계자들과 함께 추모행사를 가졌다. 이때 이례적으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현 회장을 만나러 왔다. 이 자리에서 현 회장은 대북사업 문제 해결을 위한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긍정적 검토”였다. 그리고 방북 일정이 급물살을 탔다.
이후 현 회장의 행보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우선 금강산에서 돌아오자마자 9월에 예정돼 있는 신입사원 교육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올해 역시 금강산 행사 개최가 어렵다고 봐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일정을 잡아놨던 터. 이는 곧 올해 신입사원연수는 금강산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고 대북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룹 내부에서는 곧 “금강산이 열린다”는 말이 돌았고 현 회장은 10일 평양으로 향했다.
대북사업 재개는 단순히 현대그룹과 북측 간의 교감만으로 해결되는 사안은 아니다. 줄곧 대북 강경노선을 표방해온 현 정부의 협조 여부가 관건이다. 현대그룹 측은 “정부의 메시지 같은 것은 없었다”며 현 회장의 이번 방북에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현 회장 방북기간 동안 정치권과 재계에선 “현대가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와 교감의 폭을 넓히려 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정부가 북한에 억류돼 있던 유 씨나 연안호 선원들 문제와 관련,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을 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 억류돼 있던 미국 여기자들 송환이 이뤄졌다. 이로 인해 정부가 체면을 구기고 있던 찰나에 현 회장이 방북을 통해 유 씨 문제를 풀어냈으니 정부로서는 앓던 이 하나를 현 회장이 뽑아준 결과가 됐다.
현 회장 방북을 계기로 현대-정부 간 관계가 주목받는 배경엔 대북사업 재개 여부 외에도 조만간 일정이 구체화될 현대건설 인수전이 깔려 있다. 현대건설 같은 대형매물이 새 주인을 찾는 과정에선 정부의 직·간접적 영향력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범 현대가의 모태이자 그룹 지배구조의 핵인 현대상선 지분이 걸린 현대건설 인수 여부는 대북사업과 더불어 현 회장이 왕회장의 진정한 계승자로 인정받느냐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선 “현 회장의 이번 방북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들려온다. 유 씨 석방에 이어 대북사업 재개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대북관계 개선의 중심에 정부가 아닌 현 회장이 서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회장 방북기간 동안 북측이 남측의 군사훈련을 비난하는 담화문을 발표한 것도 현대그룹을 불편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한편 현정은 회장은 이번 방북 일정에 맏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를 대동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5년 방북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정 전무를 보고 “아버지(고 정몽헌 회장)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정 전무는 북측 인사들에게 대북관계에 적극적이었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나 고 정몽헌 회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인 셈이다.
정 전무는 평소에도 현 회장을 밀착수행하면서 “현 회장의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현 회장의 최측근 역할을 맡아 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현대그룹 주변에선 “현 회장 다음 경영권이 정 전무에게 갈 것”이란 다소 때 이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현 회장이 친딸인 정 전무를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그룹 내에 현 회장 측근세력이 약하다는 방증”이라 평하기도 한다. 현 회장은 2003년 경영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고 정몽헌 회장의 가신그룹을 내보내기 시작했으며 2005년엔 북측의 신뢰가 두터웠던 김윤규 전 부회장을 퇴출시키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그만큼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친정체제 구축 의지가 강했던 셈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 정몽헌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가신그룹을 거느릴 만한 역량엔 아직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점을 자각하는 듯 현 회장은 경영권 분쟁이나 대북관계 변수 같은 굵직한 외풍에 맞서온 와중에도 내부 조직 추스르기에 공을 꽤나 들였다. 취임 이후로 직원들에게 수시로 이메일을 발송하면서 친밀도를 높인 현 회장은 지난 2004년 그룹 신입사원 수련대회를 4년 만에 부활시켜 신바람 나는 기업문화 조성에 힘을 썼다.
그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들에게 교육전문도서를 나눠줬는가 하면 초복을 앞두고 임원 가족들에게 삼계탕을 선물했고 수능시험을 마친 직원 자녀들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고 격려 이메일도 보냈다. 지난 5월엔 그룹 임직원 전원에게 ‘매일 KISS(Keep It Simple & Speedy) 하세요’란 사내 이메일을 보내 여성 경영인 특유의 감수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 회장 자신은 ‘투지’와 ‘뚝심’의 경영인으로 비치길 원하는 듯하다. 이는 시숙부와 시동생의 경영권 위협, 대북사업의 고초 등 숱한 시련을 뚫어온 것에 대한 자부심인 동시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닮은꼴이 되고픈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현 회장은 지난 2004년 8월 현대그룹 비전 선포식을 갖고 “2010년 매출 20조 원 달성, 재계서열 10위 진입”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을 남겼다. 이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즐겨 쓰던 표현이었다. 이후로도 현 회장은 자신의 행보에서 왕회장을 연상시키는 듯한 배짱을 보이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가정주부’라는 편견을 불식시켜왔다.
현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위기를 맞을 때마다 왕회장의 전매특허였던 정면돌파 카드를 꺼내들곤 했다. 현 회장 취임 직후인 2003년 10월 ‘현대그룹이 정 씨가 아닌 현 씨네 집안에 넘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명분으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정상영 KCC 명예회장에 대해 현 회장은 ‘국민주 모집을 통한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 선언으로 맞섰다.
2004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회장 자리를 지키며 대내외적으로 현대그룹 총수의 위상을 알린 현 회장에 대해 주변에선 “불과 얼마 전까지 전업주부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고 공격적”이란 평가가 따랐다. 이 일로 현 회장은 ‘현다르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취임 초기부터 정몽헌 회장 가신그룹 물갈이로 친정체제 구축에 나선 현 회장은 2005년 7월에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금강산은 남편에게 줬는데 백두산은 현 회장이 해보쇼”란 약속을 이끌어내면서 입지를 굳건히 하게 됐다. 그러나 그해 8월 대북사업의 상징적 존재였던 김윤규 전 부회장을 비리 혐의로 축출시키면서 북측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당시 현 회장은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 여러분께’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남북한의 경제 협력은 상호간의 정직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강산 방문 때 핸드백까지 열어 보이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저는 한 가지만 생각하였습니다. ‘목숨과 맞바꾼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 모욕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저들도 나의 진정한 뜻을 알아줄 것이라고 가슴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이는 현 회장에 대한 옹호성 여론을 불러 일으켰고 북측도 결국 현 회장 측의 대북사업 독점권을 재차 확인해주게 됐다.
2006년 4월엔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대거 매입한 이른바 ‘시동생의 난’을 겪는다. 친정의 도움과 우호지분 등을 끌어 모아 경영권 분쟁을 막아냈지만 대북사업 독점권 논란 등이 다시 불거지며 위기를 겪던 2007년 10월 현 회장은 방북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된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앞으로 (백두산) 들쭉술을 마시려면 현 회장한테 허락받으시오”란 말을 남겼다. 그해 10월 현 회장은 백두산관광과 금강산 비로봉관광, 개성관광에 대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대북사업자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재확인받았다.
현 회장은 지난 1975년 아버지인 고 현영원 신한해운 사장을 따라 울산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참석했다가 정주영 명예회장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고 정몽헌 회장과 결혼한 이후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페어리 디킨슨대학교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지만 그의 사회생활은 거기까지였다.
이후로 2003년 정몽헌 회장 사망 직전까진 천생 ‘주부’로 살아왔던 현 회장에게 지난 6년간 ‘회장님’으로서의 삶은 작지 않은 인생의 굴곡을 안겨 줬다. 그런 그가 지금은 대북사업의 물꼬를 튼 시아버지 왕회장과 가장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지금껏 적잖은 성과를 일궜지만 현 회장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다. 물꼬는 텄지만 대북사업 정상화는 아직 멀다. 그룹의 사활이 걸린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도 다른 잠재적 후보들이 쟁쟁해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력 계열사 실적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의 비판세력도 만만찮다.
현대그룹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대북사업이 당장 시작된다고 해도 갈 사람이 많지 않아 수익 창출은 요원하다. 대북사업 외에 그룹의 주력인 현대상선의 적자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 회장 리더십에 대해서도 “너무 감성적”이라고 폄하했다. 과현 현 회장이 이번 성과를 발판으로 도약해 그룹 안팎의 비판세력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당분간 계속 뜨거워질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