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비 교차 지난 16일 미국 미네소타 채스커에서 열린 91회 PGA 챔피언십에서 양용은이 4라운드 마지막 퍼팅을 한 뒤 기뻐하고 있다. 뒤로는 미국의 타이거 우즈가 지나가고 있다. 양용은은 8언더파 280타로 챔피언십에서 승리했다. EPA/연합뉴스 | ||
PGA챔피언 우승 기자회견 때 양용은은 태어나서 가진 기자회견 중 가장 길고,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국내외 미디어와 지인 등으로부터 쇄도하는 전화에 양용은과 매니저 라이언 박, 그리고 매니지먼트사인 IMG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많은 질문을 받았을까? 고민 끝에 <일요신문>의 첫 질문은 “원래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워낙 큰 대회에서 우승했기에 이번에는 도네이션(donation·기부)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양용은은 “최근 들었던 질문 중 가장 참신하다”고 했다. 매번 “14번홀, 18번홀 버디, 타이거 우즈, 긴장 등 이런 질문만 받았다. 반드시 좋은 일에 기부를 하겠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라이언 박도 “양 프로의 성격상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좋은 일을 하고도 종종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어, 최대한 신중히 그리고 좋은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부를 찾아보겠다”고 설명했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양용은은 소리 소문 없이 많은 기부를 한다. 2004년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후 2005년 1월 양용은은 자선클리닉을 열었다. “아직 성공한 게 아닌데 쑥스럽다”며 동네 아줌마와 꼬마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참석자가 적어 성금이 별로 안 모이자 대부분 자신의 돈으로 ‘쓰나미 구호 성금’을 냈다. 제주도의 모교(제주관광산업고)에 후원금을 내고, 종교단체와 여기저기 이웃돕기단체에 성금을 내왔다.
그러니 올시즌 이미 혼다클래식에서 우승했고, 다시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보태며 300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받았기에 양용은의 기부가 기다려지는 것이다.
뭐 사실 기부만 많이 한다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용은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첫 손에 꼽는다. 예컨대 양용은에게 던진 두 번째 질문이 양용은의 평소생활을 잘 보여준다.
“두 달 전 댈러스로 이사를 할 때 기존에 살던 팜스프링스 집을 한국 태권도 사범들에게 아주 싼 값에 쓰라고 했다면서요?”
양용은의 우승 전 캘리포니아주 태권도 사범들 사이에서는 양용은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양용은은 팜스프링스에 살며 자신의 아이들을 한국 태권도도장에 보냈다. 워낙에 성격이 좋고, 가정적이다 보니 양용은은 태권도 사범들과 가까워졌다. 미PGA 프로는 미국에서도 사회적 위치가 제법 높은데 소탈한 성격의 양용은을 태권도 사범들은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양용은이 교통편리 등을 이유로 두 달 전 댈러스로 이사를 가는데 경기한파로 집이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자신이 살던 집을 태권도 사범들이 편하게 쓰라고 내놓고 갔다. 말이 쉽지 실제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이 태권도 사범들 사이에서 “양용은이라는 골프선수 사람 정말 좋다”는 입소문으로 퍼진 것이다.
양용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매니저 라이언 박도 같은 생각이었다. “IMG에는 최경주 프로를 비롯해 대니 리, 앤서니 김 등 한국선수와 타이거 우즈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있어요. 많은 선수들을 옆에서 지켜봤지만 이렇게 사람 좋은 프로골퍼는 처음이에요. 이는 조금만 지내봐도 잘 알 수 있어요. 태권도 사범들 경우도 그런 거죠. 은근히 재미도 있으면서 함께 있는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줘요.”
라이언 박은 재미있는 비화도 소개했다. 이번 양용은의 우승으로 라이언 박도 공식인터뷰 등의 통역을 맡으며 많이 알려졌다. 물론 IMG에 근무한 것은 제법 됐지만 양용은의 전담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사실 제가 이번 대회부터 양 프로를 맡았어요. 이전에는 최경주 프로를 따라다녔고요. 그런데 첫 대회에서 이렇게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니 개인적으로도 아주 기분이 좋아요. 이전에는 직접 담당은 아니지만 같은 식구로 대회장에서 만나며 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시작이 너무 좋네요.”
양용은은 최근 주변에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제쳐놓고 고국팬들과 함께 골프 역사에 남을 쾌거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PGA챔피언십 우승 다음에 열린 윈담챔피언십에는 결장했지만 이후 8월 말부터 9월까지 10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미PGA 플레이오프대회가 차례로 열린다. 가장 중요한 대회인 까닭에 물리적으로 당장의 ‘금의환향’은 어렵다. 10월 프레지던츠컵이 끝난 후 신한동해오픈 출전 차 한국에 오는 것이 가장 빠른 일정이다.
“일단 플레이오프 4개 대회에서 1000만 달러의 상금에 도전한 후 메이저우승컵과 함께 한국에 가겠다.”
어쨌든 양용은은 귀국 날짜를 하루하루 손꼽고 있다.
한편 양용은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통화에 대해서도 소감을 밝혔다. “그러니까 16일 우승을 확정짓고, 뭐 이것저것을 한 후 클럽하우스에서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어요. 받아보니 이명박 대통령이었어요. 물론 좀 놀랐죠. 한 5분이나, 10분 정도 통화를 했는데 많이 축하를 해주셨어요. 좀 신기했어요.” 양용은은 갑작스런 청와대 전화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양용은은 타이거 우즈를 상대할 때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고 했다. ‘절친’에게 전화를 해 “2번 홀까지는 좀 떨렸는데 같이 쳐보니깐 우즈도 다른 선수와 별반 다를 게 없더라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우즈를 좀 끌고 다녔지. 으하하!”라고 큰소리를 칠 정도였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양용은은 ‘타이거 우즈보다 청와대 전화에 더 긴장한 셈’이다.
LA=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