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요즘 흥분돼 프로입단 10년 만에 KIA의 중심 타자로 우뚝 서며 드라마틱한 부활 스토리를 쓰고 있는 김상현, 그는 벌써부터 내년이 걱정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요즘 자고 나서 눈을 뜨면 무슨 생각부터 들어요?
▲피곤하다? 개운하다? (웃으면서) 그래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제일 커요. 야구장에 빨리 나가고 싶고.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는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이거든요. 보통 12시 정도에 나가는데 일찍 나가면 아픈 데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웨이트트레이닝도 더 많이 할 수 있는 등 훈련 전에 여유있게 준비를 할 수 있어 좋아요.
―올 시즌 성적을 보면 마치 ‘신들렸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예요. (8월 27일 현재) 홈런 28개에 타점 104개를 올렸거든요. 2개 부문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고 장타율 역시 6할8리로 1위에 랭크되는 등 공격 각 부문 상위권에서 김상현 선수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어요.
▲신들린 것보다는 올해 운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인데 지금까지 어려운 시절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시간들을 오랫동안 즐기고 싶어요. 야구 은퇴할 때까지 계속 신들렸으면 더욱 좋겠고요(웃음). 이건 빈 말이 아니라 팀 성적이 좋으니까 저도 더 빛이 나는 것 같아요. 팀은 바닥을 헤매는데 저만 잘하면 기분 나겠어요?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부담돼요. 올해 반짝하고 내년에 죽을 쑤면 더 힘들잖아요.
―너무 잘나가서 걱정이 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야구 자체가 워낙 기복이 심한 운동이기도 하니까요.
▲정말 그래요. 페이스가 좋다보니까 그 좋은 페이스가 언제 떨어질지 몰라서 두렵기도 해요. 한 시즌을 치르면 희비쌍곡선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여기까지 올라왔고 8월에 최고의 타격감을 이룬 것 같은데, 여기서 떨어지면 안 되거든요. 제가 한 번 떨어지면 확 떨어지는 스타일이에요. 안 처지려고 노력은 하는데 노력한다고 해서 페이스 떨어지는 걸 어떻게 막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평소에 (이)종범이 형이나 (장)성호 형, (최)희섭이 형 등한테 많이 자문을 구해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나는 슬럼프가 언제였어요? 워낙 힘든 일이 많아서 일일이 꼽기도 힘들겠어요.
▲‘슬럼프’란 단어는 잘하다가 못해야 슬럼프지 꾸준히 못해왔는데 무슨 슬럼프가 있었겠어요. 프로입단 때부터 슬럼프였다가 이제 겨우 슬럼프에서 극복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거예요. 야구 10년 차가 된 후에야 지독한 슬럼프에서 벗어나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선수한테 기억나는 슬럼프를 물어보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요. 야구를 못했던 기억이 너무 많거든요. 팬들은 제 마음을 잘 몰라요. 말하기 쉽게 ‘저 선수는 LG에선 헤매다가 KIA에서 왜 이렇게 잘하지?’하며 비난도 하고,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밑바닥에서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지를 아는 선수들은 지금의 제 모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줘요.
▲분명 LG에서도 저한테 많은 기회를 줬어요. 그런데 그게 저랑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운대라고 해야 하나? 꾸준히 잘 하는 선수도 있지만 전 타고난 야구선수는 아니거든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죠. 운 좋게 KIA에서 이전에 사제의 연을 맺었던 황병일 코치님을 다시 만났고 조범현 감독님도 묵묵히 기다려주면서 계속 기회를 주셨고요, 저 또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정신 무장을 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끔 LG 홈페이지에 있는 ‘쌍둥이 마당’에 들어가 보거든요. 저에 대해 뭐라고 하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글을 보면 마음이 절로 아파요. 사회인이 직장을 옮길 수도 있는 거고, 옮기는 것도 제 의지로 옮긴 게 아닌데 왜 절 비난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김재박 감독님을 가끔 야구장에서 뵙게 되면 ‘힘들게 갔는데 잘하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격려해 주시거든요. 하지만 LG팬들의 섭섭함이 심정적으론 이해가 돼요.
―상무 제대 후 2006년 2군에선 MVP를 받을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어요. 그런데 2007년 1군에 복귀해선 2군에서처럼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1군과 2군은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1군에선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해서든 찬스를 만들고 살아남아야 해요. 어렵게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다음’을 기대하기 힘들죠. 그러다보니 매 게임 부담이 백만 배는 더 돼요. 기회를 날린다거나 나로 인해 게임이 망쳐버리게 되면 잠을 못 이룰 정도예요. 더욱이 못하면 경기에 빠지고 조금 잘하면 다시 들어가고, 이런 걸 반복하면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거든요. 대신 2군에서 하는 경기는 마음이 편해요. 못해도 기회는 또 있는 것이고, 나로 인해 게임이 망쳐도 큰 부담을 안 느끼게 돼요. 한 마디로 마음가짐의 차이? 경기를 임하는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군에서만 지내다 1군에 복귀하면 팀 적응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면서요? 예기치 못한 실수도 저지르고요.
▲스물네 살 때인가? 정말 황당한 실수를 반복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김재박 감독님이 현대 유니콘스를 맡고 계실 때인데 9회 말에 플라이 볼이 떴어요. 그런데 그걸 놓쳐버린 거예요. 다행히 게임은 이겼고 한숨 돌린다 싶었더니 다음날 경기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그 플라이 볼을 놓쳤고 경기는 제 실수로 인해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임 끝나고 관중들이 다 보는 데서 타격코치님이 플라이 볼 잡는 연습을 시키시더라고요. 창피하기도 하고 너무 속상해서 연습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어요. 2군 경기는 낮에만 하니까 야간 경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에요. 라이트가 켜진 상태에서 공이 허공으로 뜨면 그냥 하얗게만 보이거든요. 잡을 것 같아서 서 있으면 공이 뒤로 빠지고, 정말 뭐가 팔릴 정도였죠. 그런 공을 자주 놓치면 자신감이 사라져요. 또 다시 그런 상황에 닥치면 두려운 나머지 자꾸 다른 수비수들을 쳐다보게 되고요. 한마디로 ‘헬프 미’인 거죠.
김상현은 자신의 활약과 관련해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한대화 삼성 수석 코치와 80년대 홈런왕 김봉연 선수와의 비교에 대해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자신은 올 한 해 ‘반짝’하는 중이고 그 선배들은 꾸준히 오랫동안 잘해왔던 선수들이라 감히 자신을 그들과 비교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몸을 낮췄다.
▲ 앗싸! 30호 홈런 8월 28일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김상현이 30호 홈런을 친 후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 ||
▲그게 그때 다른 것 같아요. 정치인이 메인이 될 때도 있고 두산 김상현의 성적이 좋으면 그 친구가 메인이 될 때도 있고요. 두산 김상현과는 생일만 다를 뿐 나이나 이름의 한자까지 똑같아요. 상무시절 제 선임병이기도 했고요. 이전 LG 시절에 만날 때는 제가 두산의 상현이한테 제발 갖고 있는 ‘기’ 좀 달라고 장난도 치고 그랬거든요. 요즘엔 그 친구가 저한테 제 기 좀 몽땅 달라고 해요. 두산의 상현이랑은 각별한 사이예요.
―올해 연봉이 5200만 원이에요. 지금도 5200만 원인데 이전엔 연봉이 더 적었기 때문에 생활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버는 대로 쓰는 편이었어요. 많이 벌지도 못했기 때문에 저축하고 뭐 하고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와이프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죠. 결혼도 하기 전에 와이프에게 제 월급 통장을 맡겨버렸거든요. 그런데 막상 맡기고 나니까 돈 받아 쓰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친구들과 술 마실 때도 눈치보이고. 금세 후회했지만 한 번 들어간 통장은 절대로 저한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웃음). 당시 애인이었던 와이프가 그렇게 강하게 끌고 갔기 때문에 제가 정신을 차린 것 같아요. 전 와이프한테도 ‘만약 야구랑 당신 중에 한 가지만 택하라고 한다면 야구를 택할 것이다’라고 선언했어요. 야구를 해서 돈을 벌어야 서로가 행복해지는 거라고 설득하면서. 처음엔 서운해다가도 이해해줬어요.
―잘나가는 선수한테는 이런 저런 구설수가 많기 마련이에요. 요즘 들은 소문들 중 가장 황당한 게 뭐예요?
▲저한테 갑자기 뜨니까 사람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제 표정이,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리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특히 타석에 설 때는 하도 인상을 써서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거든요. 그런데 야구장에서 이 얼굴로 다니면 이상한 시각으로 오해를 하시더라고요. 아! 좋은 말도 들었다. 어떤 분은 제가 인상을 쓰니까 카리스마 있어 보여 좋대요. 야구 못할 때는 인상 쓴다고 뭐라고 하셨던 분이^^.
―약물복용한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어봤죠?
▲(웃으면서)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요.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선수들조차 절 만나면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잘해? 혹시 약물 복용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전 진짜 밥밖에 안 먹어요. 와이프가 요즘 한약 좀 챙겨주긴 하지만 이전엔 약을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만약 그렇게 약을 투여했다가 이런 성적이 났다면 언젠가는 파탄이 나겠죠. 그런 점에선 한점 부끄러운 게 없어요. 오로지 밥심입니다. 워낙 밥 먹는 걸 좋아하고. 고기보다 맛있는 김치찌개가 있으면 두 그릇 이상은 비워요.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 미팅 시간이 다가워서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얘기를 주고 받다가 한 야구 팬이 김상현을 가리켜 ‘장종훈 이후 최고의 감동을 주는 선수’라고 한 말이 기억나서 건넸더니 김상현은 바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말은 오히려 저보단 김현수(두산)한테 더 잘 어울리죠. 연습생으로 들어와서 우리나라 최고의 타자가 됐잖아요. 전 10년 동안 죽 쑤다가 이제 한 해 반짝 하는 선수인 걸요. 그렇게까지 비교하시면 너무 부담돼요. 저, 그런 스타 대접 받으려면 한참 멀었어요.”
광주=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