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왕자 아니었어요 정몽준 한나라당 신임대표가 지난 8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릴적 가족사진을 꺼내 보이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지난 9월 8일 공식 취임한 정 대표는 연일 파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는 정 대표가 현대중공업 대주주·대한축구협회장이 아닌 ‘정치인 정몽준’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당내 입지를 강화해 ‘대권잠룡’에 걸맞은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라는 관측이다. 더군다나 빠르면 2월, 늦어도 내년 7월 전당대회까지만 대표직을 맡는 ‘임시직’인지라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 대표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앞으로 정 대표가 걸어가야 할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당장에 재보선 성적표에 따라 조기 전당대회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고 친박-친이 간 계파 갈등도 쉽게 풀기 어려운 난제다. 여기에 정 대표의 ‘아킬레스 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재벌’ 꼬리표도 차기 대권을 꿈꾸는 정 대표로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걸림돌이다.
마치 대표 자리를 기다렸던 것처럼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긴가민가하던 의원들 사이에서 제법 반응이 좋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정몽준 대표의 최근 행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정 대표가 대표직을 승계하기 전만 하더라도 당내에서는 그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었다고 한다. 내년에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기 전까지 당을 한시적으로 맡을 ‘과도기 대표’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당의 주류인 친이 측에서 내년 2월에 조기 전당대회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 대표가 제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정 대표는 이러한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취임하자마자 당 전면에 나서며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첫 공식 일정으로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고 이어 방문한 국립현충원에서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다’는 한자성어 ‘見危授命’(견위수명)을 적으며 의지를 다졌다. 특히 취임 다음날인 9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20여 분간 독대를 한 것은 정치권에서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박희태 전 대표는 취임 40일 만에 이 대통령과 만난 바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이 당내 기반이 취약한 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정 대표는 야당 대표들과 종교계 인사들을 잇달아 접촉하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긴 했지만 정 대표는 그동안 당의 변방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도 당 투표에서 밀리면서 대표 자리를 내줘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치권에서는 그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는데 첫 손에 꼽히는 것은 ‘밥상론’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대선 직전 당에 입당한 정 대표가 선거 승리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당시 당내에서도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놓은 정 대표를 우리 식구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출신 성분을 거론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재벌가의 ‘로열패밀리’라는 점 때문에 당 내에 ‘이질감’이 형성돼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정 대표는 전문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스스로도 여의도와 일정 거리를 두려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 꿈을 꾸고 있는 정 대표로서는 싫든 좋든 결국 한나라당이라는 우산이 필요했을 터. 정 대표가 대표직을 승계 받은 후 “얼굴 마담에 그칠 것”이라는 주위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국회 보좌관 출신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지난 2002년 월드컵 열기와 함께 대선후보에 올랐지만 노무현 대통령과의 단일화 파기로 인해 쓴 맛을 봤던 정 대표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면서 “10월 재보선과 지방선거, 계파 간 갈등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을 잘 헤쳐 나갈 경우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대항마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대표직 승계로 단숨에 여권 내 권력구도의 한 축으로 떠오른 정 대표는 13대 때부터 내리 금배지를 달고 있지만 여의도에서 ‘6선급 초선의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90년대 초 민자당 입당 이후로는 1992년 아버지인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참여하고 2002년 대선에서 국민통합21이라는 정당을 만든 것이 그의 정치 인생 중 ‘유일한’ 정당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정 대표는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무소속’의 설움을 여러 차례 털어놓았다고 한다. 정 대표를 20년 넘게 지켜본 한 측근은 “정치인으로서 한 게 뭐가 있냐는 비난을 들을 때마다 정 대표는 안타까워했다. 한국 정치에서 무소속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정 대표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정 대표가 한나라당에 들어온 것도 이러한 무소속의 한계를 체감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정당이라는 ‘발판’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 대표는 이제 20년 넘는 정치생활 동안 갈고닦았던 ‘내공’을 풀어내야 하는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대권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정치인 정몽준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신념들을 하나둘씩 실천해나가고 그것들이 국민들에게 인정받으면 (대권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취임 기자 회견에서 “변화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드려야 한다” “정치가 변해야 한다”며 정치개혁을 단행할 뜻을 내비쳤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조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이날 이례적으로 약 20여 분간 독대를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정치권에서는 정 대표가 이처럼 ‘변화’와 ‘소통’을 임기 내 최우선 목표로 내걸자 정치실험과는 별도로 그의 ‘대권 플랜’이 이미 가동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친박-친이로 양분돼 있어 당내 기반이 사실상 전무한 정 대표가 이 구도를 깨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대표 임기가 길어야 10개월인 상황에서 빠른 시간 안에 개혁을 이뤄내야 내년 전당대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정 대표가 초반부터 강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란 분석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정 대표 측근들이 외부 영입 인사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대표의 이점을 활용해 임기 동안 우호적인 세력을 최대한 확보해 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일단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지만 ‘정몽준호’가 앞으로 순항할지는 불투명하다. 선출직이 아닌 ‘승계직’인지라 정 대표 말이 당내에서 얼마나 먹힐지 미지수고, 자신의 색깔을 입히고 기반을 넓히기엔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기만 하다. 특히 벌써부터 정 대표를 두고 친이-친박 간 갈등이 불거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그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할 듯하다. 정 대표가 당내 주류인 친이 측의 지원사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친박 측에서 그를 ‘시한부 대표’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정 대표가 취임하자 여의도에서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미소를 짓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대표직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라도 정 대표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 것이란 판단 때문이라고. 실제로 정 대표는 지난해부터 친이계 의원들과 접촉 빈도를 늘리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엔 미국에서 연수 중이던 이 전 최고를 방문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정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가 확실히 정해져 있는 친박보다는 아직은 가능성이 많은 친이를 택한 것 같다. 친박에서는 정 대표를 진작부터 친이 쪽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정 대표가 자신의 비서실장에 정양석 의원을, 대변인에 조해진 의원을 임명한 것 역시 친이계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정 의원과 조 의원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로 꼽힌다. 이를 놓고 친박 측 의원들이 모인 한 비공식 자리에서는 “당의 화합을 중시한다던 정 대표가 오히려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는 등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또한 정 대표 측근들 사이에서는 친이계에 둘러싸여 제목소리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친박-친이 갈등은 워낙에 고착화돼 있어 정 대표의 짧은 임기 동안 이를 해결해내기 힘들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갈등을 잘 조율해내면 능력을 인정받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정 대표가 져야 할 책임은 그리 크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정 대표 발등에 떨어진 가장 급한 불은 오는 10월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다. 친이계인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10월 재보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승패에 따라서 정 대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정 대표를 압박하고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선거가 ‘정치인 정몽준’의 역량을 평가할 첫 번째 무대라고 보고 있다. 벌써부터 경남 양산에서는 박희태 전 대표의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들리고 있고 몇몇 지역에서는 승산이 희박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만약 10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다면 조기 전대론 요구가 거세질 것이 분명해 정 대표는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재보선에서 승리할 경우 정 대표는 ‘예비주자’로서의 이미지를 당 안팎에 확고하게 심어줄 수 있다. 당내에서는 정 대표가 10월 재보선에 이어 내년 지방선거까지 당을 무난하게 이끌면 의외의 ‘롱런’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10월 재보선이 정 대표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다.
정 대표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재벌’ 이미지다. 해마다 발표되는 공직자 재산 리스트에서 굳건히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정 대표는 지난 3월 공개된 국회의원 재산 목록에서 1조 6397억 원가량을 신고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 지분가치만 1조 5393억 원에 이른다(9월 2일 종가 기준).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민심과의 괴리도 크다. 6·25 당시 피난 사진을 공개한 것이나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간 것 역시 정 대표가 자신에게 붙어있는 ‘재벌’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서 펼친 행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지난 1988년 13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후 20여년 만에 집권 여당 대표 자리에 오르며 정치인생 최대 갈림길에 선 정몽준 대표. 과연 그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우려를 극복하고 더 큰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비상’할 수 있을지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