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경제특보(특보)가 지난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짧은 두 번째 ‘야인생활’을 마무리한 것이다. 강 특보는 복귀와 함께 언론사들과 줄줄이 인터뷰를 갖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강 특보의 발이 넓어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금융위기 이후 접어뒀던 ‘MB노믹스’가 조만간 부활할 것이라는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금융위기에서 회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출구전략(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의 종결)이 논의되는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기를 극복한 뒤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강 특보의 임무라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강만수 특보가 MB노믹스 부활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전망은 강 특보 자신이 MB노믹스의 ‘입안자’라는 점과 함께 강 특보 특유의 성격에서 나오고 있다. 강 특보는 엘리트들이 가득 찬 각 부처 중 고집 세기로 유명한 기획재정부 내에서도 특유의 고집을 자랑한다. 한 번 마음을 굳히면 바꾸지 않기 때문에, 금융위기 여파로 한켠에 밀려 있던 MB노믹스를 되살리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다.
▲ 내 사람 내 곁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강만수경제특보를 비롯한 신임 수석, 특보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오히려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한미 통화스와프와 한일 통화스와프 등을 체결해 외환보유액 부족 사태를 넘겼다. 물론 외환시장의 강 특보에 대한 불신이 높아서 환율이 안정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강 특보는 지금도 수출주도형인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환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것이 옳다는 신념이 확고부동하다. 특보 취임 이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는 경상수지 흑자 유지만이 살 길”이라고 밝힌 데서 드러나듯이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물론 강 특보는 자신의 정책을, 언론이 지적하듯이 고환율 정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적정 환율이 유지되도록 정부가 개입하는 환율주권론’이라고 설명한다.
강 특보는 야인 시절이던 지난 2005년 외환위기 당시를 담은 책 <현장에서 본 한국 경제 30년>을 통해 환율주권론을 펼쳤고, 이에 대한 강한 믿음은 재정부 장관 취임 때는 물론 경제특보로 임명된 뒤에도 여전하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과거 재정부 장관들이 ‘환율은 시장에 맡긴다’고 했는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환율이 펀더멘털과 동떨어져 있으면 정부가 잘못돼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래도 쏠림이 있으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면서 “환율효과와 재정효과를 빼면 우리경제가 위기상황에서 완전히 탈출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강 특보에 대해 여러 가지 평들이 엇갈리지만 고집과 소신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강 특보에 대해 언론이나 시장에서 비판이 많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소신이 뚜렷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점은 분명하다. 경제 관료로 오랫동안 걸어오면서 생긴 자신만의 경제 철학을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서 “다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보니 말이 직선적으로 나오면서 충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이 확실한 것은 강점”이라고 평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 반대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부동산 종합소득세 개편 등 감세에 대한 의지 역시 확고하다. 비록 부동산 종합소득세 인하 당시 자신이 퇴임한 뒤 수입이 없는데 1000만 원이 넘는 부동산 세금이 나오는 것을 보고 고치려고 마음을 굳혔다고 밝혀 ‘사적인 원한(?) 때문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지만 감세에 대한 그의 소신은 뚜렷하다.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내려 소비를 진작시키고, 기업들에 대한 세금을 내려 투자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이라는 것. 정부가 지난해 금융위기에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재정적자가 크게 늘었지만 최근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강 특보의 소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 내에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다. 특히 내년도에는 2008년도 감세안에다 재정지출까지 합쳐져 세수감소폭이 13조 원을 넘어선다. 재정부는 올해 국가채무가 366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57조 7000억 원이 늘어나고 적자보전용 국채 순발행액도 사상 최대치인 33조 5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내년에 42.0%에 달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같은 신흥국의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을 경우 투자자금 회수에 들어간다.
그동안 경험에서 신흥국의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으면 빚과 이자를 갚기 어려웠다는 것을 학습한 때문이다. 정부에서 중기 재정계획을 통해 국가채무비율을 40%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강 특보가 금융위기 이후 재정부 장관에서 물러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라는 한직으로 물러나 있으면서도 이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다는 점 때문에 시장에서는 경제 수장들 간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 특보의 자리가 보통 특보가 아니라 대통령과 언제든 독대할 수 있는 청와대 내에 마련된 자리라는 점에서 이런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강 특보가 이 대통령과 소망교회에서 알고 지낸 지 30년 가까이 되는 데다 이 대통령의 경제 공약인 ‘7·4·7’(연 7%성장·국민소득 4만 달러·세계 7대 경제강국)의 입안자라는 점도 우려를 크게 한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강 특보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물러난 뒤 힘이 빠져서 제대로 업무를 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새벽부터 나와서 여러 가지 일을 기안하고 추진하는 등 활기차게 지냈다. 시행을 앞둔 보행자 우측통행도 강 특보가 오랫동안 구상해오던 것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시절에 현실화시킨 것”이라면서 “당시 강 특보와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세 위원장이 서로 경쟁하듯이 새벽부터 강행군으로 일을 해서 밑의 직원들이 다들 따라가느라 고생들을 했다. ‘왕특보’라 불리는 경제특보를 맡은 만큼 현 경제 관료들과의 일정 부분 충돌은 불가피할 듯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강 특보가 다른 사람들과 친화력이 부족한 데다 일부 인사들에 대한 편애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강 특보가 장관 시절 서울대 법대 동문 장관 모임에서 “서울대 법대 인맥이 끊겨 일시킬 사람이 없다. 서울대 법대가 경제학과 나온 사람들보다 일을 더 잘한다”고 발언한 것도 강 특보의 친화력 정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다.
실제 과거 재정부에서는 ‘서울대 법대 라인’이 따로 존재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 들어오면 사무관 시절부터 서울대 법대 출신 장관이 직접 각종 업무를 지시하고, 과장이나 국장 보고 없이 장관에게 직보하는 일이 잦았던 탓이다. 지금은 이런 일이 없어졌지만 서울대 법대는 여전히 재정부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도 강 특보와 서울대 법대 69학번 동기다.
이러한 강 특보의 성향 때문에 시장, 특히 외환시장에서는 강 특보의 부활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다. 외환시장 개입보다는 외환보유액 확대를 통해 환율 안정을 꾀한 윤 장관과 달리 강 특보는 외환시장 개입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1100원대를 바라보고 있고 비록 불황형이지만 사상최대를 기록하던 무역흑자의 폭도 줄어들고 있다. 강 특보의 경제관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강 특보가 특보 임명장을 받기 전날인 지난 8월 31일 환율이 전날 대비 4.50원 오르면서 ‘강만수 효과’라는 말까지 시장에 돌았다. 그만큼 시장에서는 그의 특보 임명을 사실상 경제 수장으로의 복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각 경제 분야에서 강 특보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그를 30년 가까이 지켜본 이 대통령의 믿음은 확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통령은 외환위기 이후 야인으로 떠돌던 강 특보를 서울시장 시절이던 2005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임명하며 곁에 뒀다. 대선 과정에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심는 각종 경제 공약 수립을 위해 일류국가비전위원회 부위원장 겸 정책조정실장에 임명했고, 금융위기 이후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난 강 특보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앉혔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가라앉는 기미를 보이자 특보로 부활시켰다. 여권 일각에서는 최근 이뤄진 개각에서 윤진식 경제수석의 정책실장 겸임이라든가 임태희 최경환 의원 입각 등에 강 특보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와 재정부에서 힘을 발휘했던 EPB(경제기획원) 출신들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모피아(재무부) 출신들을 대거 발탁한 것도 강 특보의 힘이라는 말도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이 오는 10월 시행을 앞둔 ‘보행자 우측통행’도 이 대통령의 강 특보에 대한 믿음과 강 특보 소신의 합작품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이뤄지던 좌측통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이 들 것이 확실하지만 지하철부터 우측통행이 시작된다. 현재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나 각종 노선 안내, 환승역 안내 등이 좌측통행 위주로 되어 있어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각종 공사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강 특보의 우측통행 주장이 워낙 강한 탓인지 별 말없이 진행되어가고 있다.
강 특보의 강한 영향력 때문에 우려가 나오는 반면 강 특보가 현 경제팀과 일정 부분 조화를 찾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강 특보가 자신이 여당이나 언론에게 많이 흔들렸던 탓인지 재정부에 무게를 실어주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장관과는 성격과 생각도 잘 알고 있는 사이”라고 말하거나 “현 경제팀이 외부의 비판에 굴하지 않고 소신 있게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그 증거로 꼽힌다. 지난 8일에는 서울 시내 모처에서 강 특보와 윤 장관, 윤 정책실장,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 중심으로 이뤄지던 경제정책 컨트롤이 강 특보의 부활 등으로 흐트러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윤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자리라는 평가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윤 장관 등 현 경제팀이 여러 논란으로 힘이 빠지면 강 특보 자신에게 더 큰 피해가 온다는 것을 아는데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언행은 크게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시장이나 언론, 정치권이 강 특보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언급보다는 거시정책 전반을 살피는 일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