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침통한 표정으로 서울광장을 떠나고 있는 김제동. 연합뉴스 | ||
김 씨의 KBS 하차 결정이 내려진 직후 방송인 손석희 씨(53·성신여대 교수)가 MBC <100분 토론>을 그만둔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며 이번 사태는 방송가와 정권의 ‘코드 논란’으로까지 점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손석희 씨 역시 그간 뉴라이트계 및 일부 보수단체들로부터 ‘반 MB적 성향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다.
KBS와 MBC 양 방송사에서 김제동 씨와 손석희 씨의 주된 하차 이유로 밝힌 것은 각각 ‘장기출연’과 ‘고액의 출연료’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방송사들이 현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예인을 퇴출시키는 것에 궁극적 목적이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들의 방송퇴출을 ‘정치탄압’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김제동 씨의 KBS 하차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방송가와 정치권의 외압설 배경을 들여다보고 논란의 중심이 된 김제동 씨 측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김제동 씨가 KBS <스타골든벨> 하차 결정 통보를 받은 것은 지난 9일 밤이었다. 김 씨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소속사 ‘다음기획’ 김영준 대표에게 <스타골든벨> 담당 PD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 김영준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김제동 씨 하차 결정을 알리며 다음날 만나자고 하는데 사실상 만나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 싶어 만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전하는 김 대표에게서 김제동 씨의 하차 결정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분노마저 느껴졌다.
김영준 대표는 사태가 터진 뒤 ‘김제동의 소속사 대표의 입장에서’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김 대표는 “통상적으로 방송국들이 MC를 교체할 때 취해왔던 일반적 관례에서 벗어나 전광석화처럼 전격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석연치 않은 과정 때문에 의혹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제동의 사회적 발언이 교체이유가 아니라면 (제작진은) 이러이러해서 모자라는 부분이 있었고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해 이런 부분들이 보완되어야 하겠기에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 정도는 해주는 게 예의였다”며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제동 씨의 하차 소식이 주목되는 것은 그가 보여 온 ‘정치적 성향’ 때문. 김 씨는 과거 한 방송에서 자신을 ‘중도좌파’라고 설명한 바 있다. 오락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이와 같은 김 씨의 발언을 ‘진지하게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나 그가 보여온 ‘사회참여적 행동과 발언’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조’였던 것은 분명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당시 노제 사회를 맡거나 지난 9일 노무현 재단 출범기념 콘서트에서 자원봉사로 사회를 맡았던 것도 현 정권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이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KBS는 촛불집회 당시 대중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불렀던, ‘친노 성향’의 연예인 중 한 명으로 불리던 윤도현 씨를 퇴출한 전례가 있기에 이번 김제동 씨의 하차 역시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윤도현 씨 역시 지난해 11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물러날 당시 김제동 씨와 같은 ‘정치적 이유 때문’ 아니냐는 의혹을 부른 바 있다. 윤 씨는 당시 7년간 진행해오던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함께 1년 반 정도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KBS <윤도현의 뮤직쇼>도 동시에 물러났다. 당시 윤 씨의 퇴출에 대해서도 KBS 측은 ‘제작비 절감 차원’이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후속 MC였던 이하나 씨와 유희열 씨의 출연료 역시 윤도현 씨와 큰 차이가 없었다.
방송가 일각에서는 김제동 씨가 윤도현 씨와 같은 소속사인 ‘다음기획’에 속해 있다는 점도 퇴출 이유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윤도현 씨 퇴출 이후 같은 소속사의 김제동 씨마저 ‘친노 성향’의 발언을 해온 것에 대해 소속사 차원의 길들이기를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언론개혁 시민연대 관계자는 “윤도현 씨와 김제동 씨의 퇴출 모두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예인들의 방송 활동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김제동 씨가 노제 사회를 맡을 당시부터 윤도현 씨처럼 조만간 퇴출당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김제동 씨의 하차 직후 그의 소속사인 ‘다음기획’이 경찰수사를 받게 된 사실도 이와 같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소속사에 대한 경찰 수사 역시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김영준 대표는 “이번 서울경찰청 수사는 전반적인 연예기획사 조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법률적 지식이 짧은 제가 경찰서에 출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더 귀찮아지지 않도록 빨리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자진해서 조사를 받은 것”이라며 더 이상의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김제동 씨의 퇴출이 KBS 이병순 사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벌어진 ‘정권 입맛 맞추기용’ 방편이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병순 사장은 정연주 사장 퇴임 이후 사장직에 오른 뒤 연이어 KBS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며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관계자는 “이병순 사장이 임기 한 달을 남겨두고 연임을 위해 정권에 아부를 하고 있다. 이 사장은 K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이었던 <시사투나잇>을 <시사360>으로 개편한 데 이어 결국 폐지했고, 시사기획 <쌈>도 명칭 변경으로 프로그램 성격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KBS 측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반박했지만 한 내부 관계자는 “한마디로 이병순 사장의 ‘충성쇼’ 성격이 짙은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사장은 그간 정부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오던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한 기자와 PD들을 지역 및 한직으로 발령하는가 하면, 친정부적 보도를 하는 데 앞장선 간부들을 승진시키는 등의 행태로 내부 비판에 시달려왔다. 이미 그는 취임식에서부터 “KBS가 지난 몇 년간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온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은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시사프로그램 폐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제동 씨의 하차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전병헌 의원은 KBS 측 조대현 TV 제작본부장을 상대로 “김제동 씨의 방출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조대현 본부장은 “제작진이 프로그램 사회자를 바꾸는 것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는다”며 “(자신도) 금요일(9일) 보고를 받았다. 내막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민주당, 진보신당 등 야권은 일제히 KBS를 비난하고 나섰고, 일부 여당 의원들도 이에 가세했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홈페이지에 ‘김제동은 내공으로 웃기고, 그들은 어리석음으로 웃긴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KBS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연예인들의 정치참여 활동에 대해 방송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김제동 씨의 정치적 활동이 방송의 제약을 받을 정도의 ‘수위’였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 전직 PD는 “정치인들보다 어떤 면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은 정치인들의 정치 발언보다 더 뜨거운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연예인들의 정치참여는 신중해야 하며 공개석상에서의 발언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연예인들도 사회의 일원인 만큼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의사표현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김제동 씨의 소속사 다음 기획 김영준 대표는 “연예인들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 옹호하고 전 국민적 관심이 되는 사안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정치적 시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연예인들의 사회참여활동에까지 제한을 가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또 이와 같은 연예인들에 대해 ‘폴리테이너’(정치참여 연예인)가 아닌 ‘소셜테이너’(사회참여 연예인)라고 주장했다.
정작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제동 씨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묵묵부답이다. 주변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이번 일로 인해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태라고 한다. 평소 산행을 좋아하는 그는 조만간 지리산 등반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제동 씨는 KBS 하차와 동시에 MBC의 신설 프로그램인 <오마이텐트>(10월 16일 밤 첫 방송)의 MC를 맡게 된 상황. 이 프로그램의 출연은 KBS 하차가 결정되기 이전인 9월 중반 결정된 것이었으나 이번 ‘정치외압’ 논란으로 인해 예상외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파일럿으로 편성되어 아직 정규방송으로 진행될지의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
<오마이텐트>의 조준묵 PD는 “첫 방송에서는 김제동 씨가 김제동 본인을 만나는 콘셉트의 여행을 하게 된다. KBS 하차 이후 김제동 씨와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일로 인해 김제동 씨 본인도 곤혹스러워하고 있으나 새 프로그램에 대한 활동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가에서 흔히 김제동 씨는 속 깊은 방송인으로 꼽힌다. 일선 행사의 진행자로 바닥부터 톱클래스까지 올라온 그의 예사롭지 않은 내공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 주변 인사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결국 김제동의 내공이 더 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소셜테이너 김제동’이 새로운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꺼내놓을 얘기들은 어떤 것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손석희도 하차 술렁
MBC “밀려난 것 아닌 물러난 것”
▲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 ||
MBC의 한 관계자는 “두 달여 전부터 MBC 노조에서 손석희 씨를 설득해왔지만 결국 본인의 하차에 대한 결심을 돌이키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손석희 교수가 진행자보다는 교수로서의 역할에 보다 충실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가 <100분 토론>에서 물러나게 됨에 따라 MBC 내부에서도 자사의 상징적 프로그램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손석희 교수가 스스로 <100분 토론>을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되기까지엔 <100분 토론>의 진행자로서 적지 않게 정치권의 구설수에 시달려왔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냉철하고 날카로운 질문과 매끄러운 진행솜씨로 인기를 끌어온 손석희 교수는 그동안 뉴라이트계 및 보수 우익세력들로부터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본인 의중과는 별개로 여러 가지 논란에 시달려야 했던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손석희 교수 자신은 <100분 토론>에서 물러나면서 더 이상의 ‘정치논란’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이제 화면을 통해 볼 수 없게 된 그가 라디오 진행자(<손석희의 시선집중>)와 교수로서 사회를 향해 어떤 ‘목소리’를 내줄지 주목된다.
정치참여 연예인 수난사
밥줄 끊기고...상도 뺏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