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0일 시민주권모임 발족식에 참석한 유시민 전 장관.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이 신당의 대표 격 인물로 거론돼온 이가 바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가 신당 창당에 대해 다소 거리감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무현 정신을 이어갈 사람은 유시민 외엔 없다’는 친노계 일각의 평가가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은 그동안 신당 참여에 대해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거리를 두어왔다. ‘언젠가는 참여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언론과 대중들의 궁금증만 불러일으키던 그가 최근 한 라디오 프로 인터뷰를 통해 “국민참여정당에 조만간 입당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참여정당 측 관계자는 “창당준비위원회가 공식 발족하는 11월 15일에 유시민 전 장관이 입당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장고하던 유 전 장관이 신당 참여를 결심한 배경은 무엇일까. 또 그의 신당 합류로 야권의 차기 대권방정식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유 전 장관과 그가 주축이 되어 이끌어갈 국민참여정당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짚어봤다.
유시민 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5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다. 그간 유 전 장관은 “집필 작업에만 매진하겠다”며 향후 정치행보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그동안 ‘친노 세력’ 중 일부는 ‘친노 신당’인 ‘국민참여정당(가칭)’ 창당을 준비했고, 또 다른 일부는 ‘시민주권모임’이라는 시민사회세력을 조직했다. 조직의 성격은 다르지만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가 몸담은 시민주권모임과는 달리 국민참여정당은 정당화를 목적으로 했기에 더 큰 관심을 받아왔다. 한때 여의도 정가에서는 “속단하긴 이르지만 민주당세가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차후 국민참여정당이 자리 잡을 가능성은 예상보다 높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정작 국민참여정당에 함께할 것으로 예상되던 유시민 전 장관은 “당분간 집필에 매진할 것”이라며 한발짝 물러나 있는 모습을 보여 그 배경에 궁금증을 더해왔다. 친노 인사의 대표 격인 그가 입 다물고 있는 속내가 무엇일지 각종 분석이 잇따르기도 했다.
지난 2007년 4월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전격 사임한 뒤 당에 복귀한 그에게 대선출마 가능성을 묻자 유 전 장관은 “당분간 책 쓰는 일에만 매달리겠다. 신문 정치면에 등장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해 8월 그는 대선 출마 선언을 하게 된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는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다스렸던 유 전 장관이었다. 이번에도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되는 시점이었다.
그랬던 그가 10·28 재보선을 일주일여 남겨두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를 통해 “이제 그 점(국민참여신당 참여여부)은 명료하게 말씀드려야 될 것 같다. 저는 지금까지 같이 안 해 왔습니다만 국민참여신당이라는 가칭 신당을 추진해온 분들이 요청하는 데에 입당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유 전 장관의 ‘구체적인 입당시기’에 대해 국민참여정당 측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유 전 장관의 입당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해온 시점은 11월 15일 창당준비위원회가 공식 발족하는 때다. 유 전 장관 역시 이 뜻에 동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친노 신당 참여 의사를 암묵적으로 밝히면서도 구체적으로 참여 의지를 내보이지 않던 그가 왜 이 시점에 입을 연 것일까. 가깝게는 10·28 재보선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유 전 장관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격돌지역으로 관심을 받은 경남 양산에 출마한 민주당 송인배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유세에 나섰다. 송인배 후보는 민주당 소속이나 ‘친노 후보’의 타이틀도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유 전 장관이 “소속 정당의 차이를 불문하고 현 정부의 독선과 독주를 누그러뜨리는 선거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듯이, 송 후보의 경쟁상대가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인 만큼 양산 지역의 선거 결과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렀고 서거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인근에 위치한 양산은 다른 영남 지역에 비해 친노 정서가 높다. 송인배 후보가 낙선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접전을 펼친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하고 있는 ‘친노 신당’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관측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효과와 친노 정서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친노 결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주인’을 잃은 친노 지지자들에게도 유시민 전 장관은 ‘새로운 기대를 걸게 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 전 장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훌륭한 조언자임과 동시에 그보다 좋은 정치적 동반자’라고 묘사했듯이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정치탄압에 맞서온 젊은 시절뿐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점에서라면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한 성격과 솔직하고 가감 없는 발언, 이로 인해 동지뿐 아니라 적도 많이 만들어온 점 등 성격 면에서도 두 사람은 많이 닮아 있다. 이 때문에 유 전 장관은 ‘리틀 노무현’으로 종종 묘사되기도 한다.
유 전 장관(경북 대구)과 노무현 전 대통령(경남 김해)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고향이 모두 한나라당 지지기반이 두터운 영남지역이라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해 대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경력 역시 지역감정을 허물겠다며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에 출마했던 노 전 대통령의 과거와 닮아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TK적 면모’에 대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들이받고 그런 건 좀 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 같은 성격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격과 비슷한 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공통점으로 인해 일부 친노 지지자들은 ‘유시민만이 노무현의 빈자리를 이을 인물’이라며 그의 모습에 노 전 대통령을 투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을 향해 ‘싸움닭’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유시민 전 장관은 한 때 ‘사납다’는 말과 ‘싸가지 없다’는 말을 종종 듣고 다녔다. 그 자신 또한 “몇 해 전 얼굴을 보면 내가 봐도 사납다”고 느꼈을 정도. 당시 토론회에 나갈 때면 보좌관들이 메모지에 ‘미소, 긍정, 참을 인자’를 적어주어 틈틈이 보면서 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친노 인사들 중 민주당 내에서 ‘안티 세력’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도 그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가 정당조직 출범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던 반면, 새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그에게 민주당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노 신당’ 창당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의 테두리 안에서 연대든 통합이든 논의할 수 있지 않느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서적 유산을 혼자 독차지하려는 심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시민 전 장관 또한 민주당에 대해서는 날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통합 논의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현재 민주당에 계신 분들이 거의 다 열린우리당 같이한 분들이다. 4~5년 같이 해봤는데 마음이 별로 없으시거나 마음이 있어도 거기(신당)에 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우신 것 같다”며 “비관적 판단 때문에 독자적으로 (당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국민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민주당과는 ‘확실한 선긋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과는 명확히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세가 미미한 ‘친노 신당’이 현재로선 여당인 한나라당과 상대하기는 벅찰 수밖에 없다. 국민참여정당 측이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진보개혁세력이 동의하는 목표를 위해선 필요한 연합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결국 야권의 분열만 더 초래할 것”이라며 유시민 전 장관이 주도하게 될 국민참여정당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호조세를 이어가고 현재의 민주당 등 야권의 세가 계속해서 지지부진하다면 국민참여정당의 입지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또한 민주당 내에서는 재보선 이후 조기전대론 논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정세균 대표 체제’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의 지방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민주당의 모습을 뒤바꾸자는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 한 민주당 관계자는 “유시민 전 장관과 친노신당이 바라는 시나리오는 그 시기에 자신들을 중심으로 ‘대통합 민주개혁 연대’가 실현되어 차기 대권을 노리는 계획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참여정당이 내년 초 본격 출범할 경우 정서적 연대가 있는 민주당 내 친노 세력과의 새로운 관계설정도 주목해봐야 할 부분이다. 이 경우 유 전 장관과 그간 신당에 대해 거리를 두던 민주당 내 친노 인사들이 민주진보세력 대통합이라는 명분과 양당의 화학적 결합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가 야권 재편의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참여정당이 당세 확산의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는 시기도 내년 지방선거이기 때문에 이러한 설은 설득력이 더해진다. 그는 이에 대해 “살아가는데 절대 그렇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긴 어렵다. 정치를 시작한 거나 국회의원 출마한 거 이런 것들이 다 내가 원하고 계획해서 된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도 그렇게 될 순 있겠다. 그러나 현재로서 거기에 출마할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앞으로 유 전 장관이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친서민적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해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을까.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스타 정치인’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스타 정치인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죠. 여기서 호랑이는 대중의 열망이에요. 한 번 올라타면 놓고 떨어지든가 죽기 살기로 매달려서 끝까지 가든가 둘 중의 하나예요. 위험하죠. 위험을 벗어나고 싶으면 지지자를 실망시키더라도 빨리 손을 털고 그만두든가 정치를 하는 한은 중간에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에요. 야수랑 싸우다가 야수가 되는 수도 있죠. 야수와 싸울지라도 성인의 고결함을 견지해야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국민들이 알아봅니다.”
촌철살인 유시민의 말말말
“가해자가 헌화하는 가면무도회”
▲ 2008년 2월 25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환영식. | ||
“가해자가 조문하러 와서 헌화하는 가면무도회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는 MB정부 관계자들을 향해)
“저는 그분처럼 살지는 못하고 흉내라도 내보려고 하는 것이다.” “요새는 생각하는 걸 다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새삼 노무현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전체를 상대로 싸울 생각을 하셨을까. 진짜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과 야수적 탐욕이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롭다.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롭다.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것이다.”(정치인에 대한 평가)
“출마해봐야 못 이긴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다.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라는 책 제목처럼 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2007년 대선 출마결심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우선 민방위 제도를 폐지하겠다. 동원 예비군 훈련도 반 이하로 줄이겠다. 국도변에 서 있는 각종 간첩 신고하라는 표지판과 같은 선전물도 다 철거하겠다.”(2007년 대선출마 당시 인터뷰)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