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인 10월 28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 김성근식 특유의 화법이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인터뷰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성근 감독의 부르튼 입술이 눈에 띄었다. “한국시리즈 끝나고 많이 힘드셨냐?”는 물음에 “입술이 좀 터져야 힘들어 보이지 않겠느냐”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었다. 선수단보다 이틀 먼저 떠나는 일본행을 놓고 “왜 감독이 먼저 떠나느냐?”고 묻자, “사람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고 말하기에 “어떤 사람을 구하려 하느냐”고 재차 질문하자, “이쁜 아가씨”라고 말해 순간 큰 웃음이 터졌다. 야구장 안과 밖의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김 감독이다. 사납고 냉정해 보이는 눈매가 경기장 밖에선 선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뒤바뀐다. 때론 지독히 고집스럽고 얄미울 정도로 프로 의식을 내세우지만 사석에선 이해심 많고 배려할 줄 아는 이웃집 아저씨의 이미지를 풍긴다.
김 감독은 우스갯소리라는 걸 전제로 하면서 “지인들 하는 말이 계속 이겼으면 안티 팬이 훨씬 더 많았을 텐데 그래도 한 번 졌기 때문에 안티 팬들이 조금 사라졌을 것”이라고 위로를 해준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사람들로부터 ‘잘 싸웠다’ ‘열심히 했다’는 동정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건 패자나 마찬가지다. 뒤에서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이겨야 한다. 난 욕을 먹어도 우리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기꺼이 총알받이가 될 각오가 돼 있다.”
김성근 감독은 7차전 중에서 가장 이슈로 떠올랐던 한국시리즈 5차전을 떠올렸다. 수비 방해 논란으로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다 선수단을 철수시키며 퇴장당했던 행동의 배경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시 내가 그렇게 어필했던 것은 세상 사람과 심판 판정과 그리고 여러 가지 편견들에 대한 몸부림이었다. 한국시리즈 내내 심판 판정이 우리한테 불리하게 움직이는 걸 느꼈다. 그때마다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계속 이어지니까 화가 나더라. 한국시리즈 같은 대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행동에 대해선 팬들한테 너무 미안했지만 퇴장당한 데 대해선 아쉬움이 없었다.”
한국시리즈 관련된 얘기가 나온 김에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김상현의 슬라이딩과 두산과 플레이오프 5차전 때 나주환이 두산 포수 용덕한과 충돌한 부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나주환의 슬라이딩이 문제가 아니라 왜 거기에, 아니 그 위치에 용덕한이 있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김상현의 플레이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얘길 하면 또 다시 ‘SK가 하는 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시각으로 몰아갈 것이다. 슬라이딩이나 빈볼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그걸 누가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끊임없이 논란이 됐던 사인 훔치기에 대해서도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아들인 김정준 전력분석 팀장의 수비 시프트 지시 논란 등은 김 감독한테 또 다른 편견을 안겨줬을지도 모른다.
“자꾸 우리한테 사인을 훔쳤다고 하는데 사인 훔친 건 KIA가 먼저 시작했다. KIA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었고, 우린 그에 대비를 했다. 두산과 플레이오프 때도 사인을 훔쳤다 치자. 그렇다면 KIA는 왜 거기에 대비를 안 했느냐? 왜 자꾸 상대팀이 사인을 훔쳤느니, 어떠니 하면서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했는지 모르겠다. 난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사인을 훔친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문제 제기하는 건 프로로서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인이 노출됐다면 이전과 다른 사인을 내면 되는 것이다. 사인은 남한테 뺏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만 아는 신호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걸 뺏으려 한다. 우린 그걸 안 뺏기려고 한다. 한마디로 전쟁이고 경쟁이다. 그걸 이겨내야 한다.”
평소 김 감독한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이런 김 감독만의 야구관이나 야구 철학, 또는 SK나 감독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편견이라고 말하는 배경에는 김 감독 자신이 갖고 있는 피해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오버’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다.
“피해의식은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난 피해를 당하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투지와 도전정신을 키웠다. 올라가면, 정상에 서면, 비난의 질이 달라진다. 못하고, 못나서 비난 받는 것보단 잘 나고 앞서나가서 비난 받는 게 덜 아프지 않겠나. 요즘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 건 진실이 왜곡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40년 넘게 살면서 변명도, 해명도 하지 않고 살았다. 오로지 결과만 가지고 상대를 납득시키고 내 존재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날 자꾸 볼품없는 인간으로 몰아간다. 그런 행동은 약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질문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피해의식을 갖고 살았던 부분에 대해선 인정을 하면서도, 그 피해의식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킨 내용에선 김 감독의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KIA 조범현 감독과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데 대해 언론에선 ‘사제대결’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김 감독은 승부의 세계에선 스승과 제자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스승과 제자는 사복 입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야구장에선 리더 대 리더로 만나는 것이다. 조범현 감독이 내 밑에서 야구를 배웠다고 해도 내가 추구하는 야구와는 다른 점이 많다. 둘 다 똑같이 훈련을 많이 시키는 감독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훈련을 많이 시킨다고 선수들이 잘하는 게 아니다. 리더가 어떤 생각을 갖고 훈련을 시키는지가 중요하다. 조 감독은 야구장에서는 제자가 아닌 경쟁자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끝난 뒤 조범현 감독은 SK 더그아웃을 찾아 김성근 감독에게 인사를 했다. 그 순간 김 감독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패장의 심정이 어떤 건지를 느끼게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조 감독 입장 아니었나. 억울했냐고? 그런 감정보단 빨리 인터뷰 끝내고 쉬고 싶었다.”
김성근 감독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WBC 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고사했던 것과 관련해서 솔직한 당시의 입장을 듣고 싶었다. 김 감독은 ‘처음 밝히는 내용’이라고 운을 떼며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감독직을 고사하며 이유를 댔던 게 ‘몸이 아파서’였다. 그러나 진짜 몸이 아픈 게 아니었다. KBO에서 나한테 그 제안을 갖고 오는 절차가 기분 나빴다. 김경문 감독한테 갔다가 거절당하니까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을 들먹이며 나한테 찾아 온 것이다. KBO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는 윤동균 기술위원장이 찾아와서 감독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기에 거절했다. 그랬더니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선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 날 한화 김인식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 예상대로였다. 만약 윤동균 위원장이 약속대로 다음 날 다시 찾아왔다면 맡을 의향이 있었다. 내 자존심의 작은 반발이었다.”
▲ 2등은 실패자야 ‘이기는 야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난도 상관없다는 김성근 감독. 프로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패배’는 없다고 주장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김인식 감독이 (김성근 감독은 ‘인식이’라고 표현했다) 왜 형은 안 하느냐고 묻기에, 내가 몸이 좀 아프다고 했더니 자기가 더 아프다고 하더라. 그 얘길 듣고 내가 이 친구한테 평생 빚을 졌구나 싶었다. 이건 재밌는 얘기가 될 것 같은데, 만약 인식이가 날 대표팀에 불러줬다면 코치라도 맡아서 그 빚을 갚고 싶었다. ‘형 도와줘’ 했더라면 100% 대표팀에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감독을 안 한다는 놈이 코치로 들어가는 걸 두고 또 말들이 많았겠지만 김인식 감독에 대한 미안함을 갚을 수 있다면 그런 비난은 아무 문제가 안 됐다.”
김성근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눈물겨운 호투로 팬들의 가슴을 적신 SK 채병용에 대해 이례적으로 이런 칭찬을 드러냈다.
“속된 말로, 채병용이 있어서 우리가 이겼고 작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했고, 2007년에도 우승할 수 있었다. 올해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플레이오프에서 이기고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간 데에는 병용이가 큰 힘이 됐다. 인간적으로 아주 멋진 친구고 한마디로 ‘남자’다. 그 근성과 오기가 있는 한 수술도, 또 군 생활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한국시리즈 때 김광현을 엔트리에 넣을 생각이 있었는지 물었다. ‘예스’라고 했다.
“젊은 나이였다면 광현이를 무리해서라도 명단에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부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인생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꾸 광현이를 쳐다보게 됐지만 애써 그 아이 이름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선수나 코치들한테 김광현, 박경완 이름은 꺼내지도 말라고 주문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내년 시즌을 준비하러 일본으로 떠나는 김성근 감독의 마음은 한숨으로 가득찼다. 군 입대로 자리를 비우는 투수가 2명이고 부상자도 많고 수술하는 선수들도 만만치 않아 정상적인 훈련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래도 김성근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 항상 최악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뤄내는 오기와 집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야구의 신’이라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김성근 감독은
출생 1942년 12월 13일
신체 키 180cm 몸무게 82kg
학력 가쓰라고(일본)-동아대
프로입단 1982년 OB 베어스 코치 감독 경력 OB 베어스(84~88) 태평양 돌핀스(89~90) 삼성 라이온스(91~92) 쌍방울 레이더스(96~99) LG 트윈스(01~02) 일본 지바 롯데 코치(05~06) SK 와이번스(07~현재) 수상 2008년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감독상
김성근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야신이라니...‘야신’을 이긴 사람은 뭔가
―빈볼을 던진 투수가 상대 타자에게 사과를 하면 바로 2군으로 보낸다는 소문이 있다.
▲난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맹세코 지금까지 선수들한테 일부러 맞히라고 지시내린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에게 사과를 했다고 2군으로 보낸다는 말은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채병용이 실투로 조성환 얼굴을 맞혔을 때 병원까지 찾아가서 선수한테 미안하다고 얘길 했을까?
―비난하는 글들 중에, 너무 세밀한 야구로 야구장을 찾은 팬들을 질리게 만든다는 얘기도 있더라.
▲자고로 구두쇠나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기 마련이다. 난 최악의 상황에서 이기는 야구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만약 팬들을 위해 재밌는 야구를 하고 성적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면, 그래도 날 좋아해주고 능력 있는 감독이라고 지지를 보내줄 것인가? 아마 금세 잘렸을 것이다.
―‘야신’이란 표현에 대해 불쾌해 했다고 들었다.
▲그건 김응용 사장이 나한테 빚진 거다. 김 사장이 나한테 ‘야구의 신’ 어쩌고 저쩌고 해놓고 결국 나를 이기지 않았나. 그럼 ‘야신’을 이긴 사람은 뭐가 되는 건가?
―김인식 감독과 ‘절친’이신데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다 나누는 사이인가.
▲둘이 가까운 건 맞지만 야구에 관해선 항상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 지금 그 친구가 감독직에서 물러나 있어도 언제 다시 복귀할지 모를 일이다. 즉 언젠가는 또 다시 상대팀 감독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 날 다 보여줄 수는 없지 않나(웃음).
―SK를 제외하고는 감독들 연령 대가 모두 50대다(선동열 감독만 47세). 젊은 감독들로부터 종종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나.
▲내가 그들 나이였다면 나도 그랬을 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 나이 대에 그렇게 행동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들도 나이를 먹어서 60세가 넘고 내 나이까지 와 보면 이전과는 다른 행동과 말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