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두언 의원(왼쪽)과 이정현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전후해서 “예상대로’ 여권의 권력쟁투가 불을 뿜었다. 친이의 대표주자 정두언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박근혜 전 대표는 과거 제왕적 총재보다 더 하다는 세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친박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인신 비방에는 분명히 의도와 배후 세력이 있다”라고 맞받아쳐 양측 갈등은 두 의원의 ‘입’을 통해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특히 정-이 두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 발표 당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감정적인 단어까지 써가며 충돌, 청취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일요신문>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두언-이정현 두 의원과 직격 인터뷰를 가졌다. ‘라디오 전투’에 이어 지상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세종시 공방을 들어 보도록 하자.
한때 ‘이명박의 남자’였던 정두언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기 전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박근혜 전 대표님에게’라는 글을 통해 폭풍전야의 고요를 깨고 친이-친박 간 전투의 첫 포문을 열었다. 이 편지에서 정 의원은 시종일관 경어를 사용했고, 마지막 부분에도 “제가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중략) 다시 한 번 무례에 용서를 빕니다”라며 거듭 전직 대표에 대한 예를 갖추었지만 그 내용만은 박 전 대표에게 비수와도 같았다.
이에 친박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곧바로 ‘배후세력론’을 흘리며 정 의원의 ‘제왕적 총재론’을 공박했다. 지면으로 맞붙던 두 사람은 결국 한 라디오 방송에 시차를 두고 출연, 감정적인 ‘간접 설전’에 돌입했다. 이를 두고 여의도 일각에서는 “재선의 정 의원이 좀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먼저 정 의원에게 그 문제를 물으며 ‘2차전’을 유도했지만 기자의 기대는 의외로 쉽게 깨졌다. 친박과의 전투에 관한 한 물러설 줄 모르는 그였지만, 이번 ‘감정 설전’에 대해서는 곧바로 부덕의 소치를 인정하며 슬쩍 발을 빼는 바람에 질문하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정 의원은 “(전국구 비례대표가 하는 얘기에 일일이 대꾸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발언이 감정적이라는 논란을 빚은 데 대해) 내가 실수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내가 좀 부족했던 것 같다”라며 깨끗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박 전 대표에 대한 예봉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정 의원이 박 전 대표를 공격하는 핵심 타깃은 바로 정부의 수정안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제왕적’으로 봉쇄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설 연휴까지 어떻게 해서든 세종시 수정안의 기본 취지와 구체적 이해득실에 대한 국민적 설득 작업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당내 토론회가 선결과제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토론회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왜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말을 하면 꼼짝도 못하는 것인가. 무슨 종교집단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의사 결정 구조 때문에 현재의 당내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타협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막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 의원이 예상하는 세종시 문제의 결론은 무엇일까. 그는 이에 대해 “애초 2월 국회 상정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원론적인 것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4월 상정을 목표로 공론화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 의원은 “2월이든 4월이든 일단 상정이 되면 부결이 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내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당내 합의가 안 되면 상정 자체가 곤란하지 않겠는가. 부결되는 게 뻔한데 상정하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일단 상정을 안 시키고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세종시 수정안이 상정된다면 그것은 곧 수정안이 통과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상정 자체가 계속 미뤄지면 장기 미제 정책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도 그런 최악의 부담을 각오하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결코 물러서는 법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이 대통령은 결국 수정안 포기를 선언하고 원안 추진을 다음 정권에 맡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 의원은 세종시 문제가 박 전 대표의 반대 때문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박 전 대표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고, 결국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점수를 많이 잃을 것”임을 경고했다. 정 의원은 또한 “박 전 대표의 퇴로 없는 공세는 지방선거에서도 수도권 표심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본인도 그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요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최근 페이스를 좀 잃은 것 같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돼 친박의 출당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너무 비약해서 생각한 것”이라며 일단 선을 그었다.
한편 정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세종시 몽니’가 차기 대권을 보장받기 위한 ‘김영삼식 마산 투쟁’으로 보는 시각(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표였던 1990년 10월 내각제 합의각서 공개 파동이 일어나자, 당무를 거부하고 경남 마산으로 내려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압박한 사건)에 대해 “그런 관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당시와 비교해 사안 자체가 박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올인’하기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 많다. 현직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두고 정치적 흥정을 하는, 그 투쟁 대상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는 일에 대해 바로잡으려고 해야지, 이번 세종시는 이 대통령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 제동을 거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종목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도 되기 전에 미리 ‘반대의사’를 밝히며 초강경 모드로 나온 배경에 대해 말들이 많다. 그동안 박 전 대표가 의지해오던 정무라인이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고, 예전 대선 후보 경선 때 핵심 강경라인이 이번 사태를 주도했고 그에 의존했다는 시각이 그것. 정 의원도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이었던 A 씨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의 사무실이 다시 부활했고 최근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특히 요즘 들어 그가 힘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얘기도 들었다. 사실 박 전 대표 주변에는 이정현 의원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면에 나서는 다른 참모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편 정 의원은 지방선거 전 조기전당대회에 대해서는 “별 설득력이 없는 얘기”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최근 당 지도부 교체에 따른 사무총장 기용설에 대해서는 “나는 할 일이 따로 있다”라며 부인했다.
정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4월에 수정안 상정을 시도해보고 안 되면 지방선거 후에도 계속 가지고 갈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생산유발 효과나 구체적인 수치 내용을 제시해 국민들의 닫힌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 킬러’ 정두언 의원의 비수는 과연 박근혜 전 대표의 초강경 방패를 뚫을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박근혜의 입' 이정현
친박계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세종시 문제로 촉발된 친이-친박계 간의 치열한 전투를 최전방에서 혈혈단신으로 맞서고 있다.
친이계인 정두언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제왕적 총재’로 비유하자 “박 전 대표에 대한 인신 비방 배경에는 분명 정치적 의도와 배후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반격하는가 하면 세종시 원안 고수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월 15일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이 의원은 “99 대 1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며 작금의 힘든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사필귀정’을 강조하면서 정면 돌파 의지를 내비췄다.
이 의원은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에게 “친이-친박계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세종시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만 얘기 하자”고 선수를 쳤다.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두언 의원과 한바탕 충돌했던 것이 본질을 벗어나 자칫 양측 간의 감정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세종시 문제는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신뢰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 및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반영돼야 한다는 게 본질”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세종시 원안 추진이 불가피한 절대적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을 뒤엎을 경우 향후 여야 합의는 깨지는 것이 전제될 수밖에 없고, 둘째 대통령이 약속한 사항을 지키지 못하면 향후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은 신뢰를 잃게 되고, 셋째 중요한 국가정책이 정권에 따라 찬반이 넘나드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고, 넷째 국민혈세가 투입되는 국책 연구기관이나 연구원의 불신으로 용역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특히 세종시 문제는 한나라당의 미래는 물론 당 존립과도 직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권은 세습이 아닌 선택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공약을 앞세워 출마하고 공약의 이행 여부 및 실천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에게 반드시 심판을 받게 돼 있다. 세종시 원안이 백지화될 경우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은 이제 공약을 제시할 수 없게 된다. 세종시 문제에 따른 모든 정치적 부담과 중압감은 한나라당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친이계 일각에서 박 전 대표가 표를 의식한 행보를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이 의원은 “그들은 박 전 대표를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지지율 7%대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당 대표를 맡아 무릎 꿇고 108번 사죄하는 등 애절하고 진심어린 호소로 당을 위기에서 구했다. 그런 박 전 대표에게 인신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박 전 대표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전국을 누비고 다닐 때 그들은 어디서 뭘 했는지 묻고 싶다”고 역설했다.
‘일부 여론조사 결과 수정안 지지 여론이 높게 나오고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우리는 수정안을 요구한 적도 기대한 적도 없다. 정부와 여당이 온갖 특혜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어 일시적으로 지지여론이 높게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주입식 홍보전은 결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고 국민들이 세종시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면 상황은 변할 것이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수정안 처리 시기 및 방식과 관련해서 “입법 시기나 방식에 아무 관심도 없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듯이 여론을 바꾸는 것도 입법도 불가능할 것이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 의원은 또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세종시 연대’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민주당 등 야당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관여할 바도 아니고 관심도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야당이 친박계와 공조하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우리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내에서 주장을 관철시키고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 야당과의 연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야당이 정운찬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추진할 경우 공조할 가능성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그런 부분까지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도 “경제전문가인 정 총리가 악역을 맡은 거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로 촉발된 친이-친박계 간의 갈등 국면을 현재권력 대 미래권력 간의 ‘파워게임’으로 보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이 의원은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박 전 대표의 신념에 따른 것이지 절대 정략이나 손익의 차원이 아니다”며 “박 전 대표의 순수한 의도는 국민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당 일각에서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회동을 갖고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은 분명하게 대통령 선거 전에 박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 내지는 국정 파트너로 인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안이 있을 때만 만나는 게 동반자 관계인지 되묻고 싶다. 언제 어디서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일관된 입장이다. 다만 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박 전 대표의 소신과 원칙이 확고한 만큼 이 대통령의 진일보된 입장 변화가 전제돼야 양자 간 회동 목적 및 성과가 도출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문제로 촉발된 친이-친박계 간의 첨예한 갈등 국면에서 친박계를 대변하고 있는 이 의원의 ‘일당 백’ 활약상이 양측 간 앙금을 해소하는 약이 될지 아니면 갈등을 부추기는 독이 될지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