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갯짓 펄럭펄럭 지난해 7월 강원FC와 FC서울과 경기에서 이청용이 골을 넣은 뒤 기성용과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 ||
# K리그 최고=유럽 최고 희망
이청용과 기성용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FC서울 소속이었다. 이청용은 2009년 중반 볼턴으로 이적했고 기성용은 2009시즌 종료 직후 셀틱 유니폼을 입었다.
볼턴은 프리미어리그 팀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 기량을 갖춘 정상급 선수들, 글로벌 기업 또는 세계 갑부의 자본이 동시에 집중된 리그로 명실상부한 현재 세계 축구 중심이다. 스코틀랜드 리그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세리에A), 스페인(프리메라리가), 독일(분데스리가)에 밀린다. 하지만 셀틱은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함께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다. 심심치 않게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한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국내 프로축구에서 유럽 구단으로 곧장 진출했다. 이같이 K리그에서 유럽 명문 구단으로 직행한 경우는 드물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전 토트넘), 설기현(전 풀럼, 전 레딩) 등 유럽 진출 1세대로 꼽히는 선배들은 네덜란드(에인트호벤), 벨기에(안더레흐트) 등 유럽 중위권 리그를 거쳐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김두현(전 웨스트브롬), 조원희(전 위건) 등은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은 “이청용, 기성용의 유럽진출은 한국에서 최고 기량을 보인 선수는 세계 어디에서도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한국축구의 위상과 실력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 기술로 살아남아야 한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과거 유럽파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면이 있다. 바로 뛰어난 기술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이 강한 체력과 성실성을 앞세워 유럽생활을 했다면 이청용, 기성용은 선배들이 부족했던 테크닉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이청용은 공격수 발 앞에 바로 떨어뜨려주는 칼날 어시스트, 1대1에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드리블과 볼 트래핑, 침착함과 정확성을 겸비한 송곳 슈팅이 트레이드 마크다. 기성용은 세계 정상급에 이른 프리킥, 중앙 미드필더의 필수조건인 정확한 패스워크와 넓은 시야, 폭발적인 중거리 슈팅력을 고루 갖춰 스티븐 제라드(리버풀)와 비슷한 스타일의 전천후 미드필더다.
박지성은 골을 넣는 능력이 부족해 해결사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이영표는 공수에서 모두 세계 정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뒤로 크게 움직이면서 크로스를 올리는 등 선이 굵은 축구를 해온 설기현은 세밀한 움직임과 정확한 패스, 빠른 스피드가 생명인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더 이상 매력을 잃었다. 이같이 선배들에게 부족한 2%로 남은 게 ‘기술’이었다. 반면 이청용, 기성용은 세계 정상급에 이른 뛰어난 기술을 앞세워 유럽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팬들이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과는 다른 기대를 이들에게 거는 이유다.
# 해결사 그리고 센터요원
이청용은 해결사 능력을 갖췄기에 큰 기대를 모은다. 과감한 슈팅과 날카로운 패스로 승부를 결정짓는 힘이 이청용에게 있다. 이청용은 이번 시즌 18경기에 나서 4골 4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볼턴은 이청용이 골을 넣은 4경기에서 모두 이겼고 어시스트를 기록한 4경기에서는 1승2무1패를 거뒀다. 박지성, 설기현은 해결사형 공격수가 아니라 조력자형 스트라이커였다. 그러나 이청용은 승패를 가를 칼자루를 쥐고 있는 키 플레이어다. 이청용은 최근 인터뷰에서 “아직 내가 갖고 있는 기량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팀과 동료들에 대한 적응이 끝나면 더욱 무서운 공격력이 뿜어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 기성용은 지난 16일 스코틀랜드 리그 20라운드 폴커크전에서 성공적인 셀틱 데뷔전을 치렀다. 로이터/뉴시스 | ||
그런데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 모두 측면 요원이다. 이동국, 김두현, 조원희 등 K리그를 대표하는 센터 요원들은 유럽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기술축구를 최우선시하는 일본에서는 나카타 히데토시, 나카무라 순스케 등이 유럽 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뛴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로서 유럽 명문팀에서 센터 요원으로 활약하는 것은 허정무 대표팀 감독(선수 시절 에인트호벤) 이후 기성용이 처음이다. 기성용은 “센터 요원들은 기복 없이 항상 최고 기량을 유지해야 한다”며 “한국 선수가 유럽 명문팀 센터 라인을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겠다”고 다짐했다.
# 현재보다 미래가 더 밝다
이들의 어린 나이도 주목할 만하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적할 때 24세였다. 이영표는 28세 때 토트넘으로 갔고 설기현이 레딩 유니폼을 입으면서 프리미어리거가 됐을 때가 27세였다. 모두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완성도에 이른 나이다. 노련미와 경기경험은 늘 수 있겠지만 기량 자체가 성장하기에는 늦은 나이다. 그러나 이청용, 기성용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다. 이청용은 도봉중학교를 중퇴하면서까지 프로에 일찍 발을 들여놨고 축구인 아버지 피를 물려받은 기성용은 어린 시절 호주에서 축구를 익힌 조기 유학파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인생을 걸고 모든 걸 축구에 바친 게 어린 나이에 유럽파가 된 비결이다.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17세 때 유럽 명문 프로 구단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것보다는 늦었다. 하지만 23세 때에 비로소 유럽으로 진출한 ‘축구천재’ 박주영(AS모나코)보다는 이청용과 기성용의 페이스가 빠르다. 모나코 붙박이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박주영이 스무 살 때 유럽으로 나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협적이고 무서운 공격수가 됐을 것이다. 축구 기술은 20세 전후 때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25세가 넘어가면서 몸이 굳어지기 시작하면서 기술적인 성장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이청용, 기성용에게 어린 나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강무기다.
# 남아공월드컵 용트림 기대
이들은 앞으로 5개월 후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다. 부상 등 변수가 없는 한 이들이 월드컵에, 그것도 전 경기를 주전으로 뛸 게 확실하다. 이청용은 박지성과 함께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한다. 기성용은 김정우(광주), 김두현·조원희(이상 수원) 등과 함께 중앙 미드필드를 이끈다.
월드컵 16강에 오르려면 수비만으로는 안 된다. 최소 1경기 이상은 이겨야하고 그래서 골이 필요하다. 이청용, 기성용이 바로 골을 만들어낼 선수들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유럽리그가 끝난 뒤 월드컵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한 시즌을 끝내면 몸 상태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유럽에서 데뷔 시즌을 보낸 이청용과 기성용도 더하면 더하지 덜 할 리 없다. 그저 부상 없이 남은 시즌을 무사히 마친 뒤 건강한 몸으로 월드컵에서 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청용은 “월드컵에서 우리와 싸울 팀들이 강하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내가 가진 공격적인 재능을 과감하게 보여주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기성용은 “리그에서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많은 경기에 나서는 게 월드컵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서 “원정 월드컵 첫 16강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 이청용(왼쪽). | ||
출생 1989년 1월 24일 신체 키 187cm 75㎏ 소속 셀틱 FC 학력 금호고등학교 데뷔 2006년 FC 서울 입단 포지션 MF 경력 2010년 1월 셀틱 FC, 2006년~2009년 FC 서울,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2008년 윈저어워즈 베스트 11, 2008년 K리그대상 베스트 11,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2007년 U-20 대표, 2006년 U-19 아시아선수권 대표
●이청용은
출생 1988년 7월 2일 신체 키 180cm 69㎏ 소속 볼튼 원더러스 FC 학력 도봉중학교 중퇴 데뷔 2004년 FC 서울 입단 포지션 MF 경력 2009년 7월 볼튼 원더러스 FC, 2004년~2009년 7월 FC 서울,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2008년 K리그 베스트 11, 2007년 K리그 도움왕, 2007년 U-20 대표, 2006년 U-19 아시아선수권 대표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