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가 10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계복귀 선언을 마친 후 질문을 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10월 20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모든 기득권과 당적도 버리겠다”며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그는 “제가 무엇이 되겠다는,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 명운이 다한 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제게 아무 의미가 없다. 1987년 헌법 체제가 만든 6공화국은 명운을 다했다.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2014년 7월 30일 정계에서 떠났다. 약 2년 3개월 만에 복귀를 선언한 손 전 대표가 던진 승부수는 개헌이다. 개헌을 고리로 제3지대를 만들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손 전 대표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정치권에 휘몰아쳤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개헌과 탈당 승부수까지 던졌는데도 손 전 고문이 이슈 몰이에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회의 한 비서관은 “손 전 대표는 비운의 사나이다. 손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도 대형 사건이 터져서 묻히고 말았다. 절치부심했는데 이번엔 최순실 게이트로 손 전 대표가 지워졌다. 손 전 대표가 회심의 카드를 하나씩 던질 때마다 더 큰 것이 터졌다. 운 없는 정치인”이라고 전했다.
2006년 손 전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후보와 함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쟁에 돌입했다. 10월 9일 손 전 대표가 민심 대장정 100일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한 날, 북한은 제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007년 1월에도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에서 대선 출정식을 열었지만 유력 대권후보였던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으로 묻혔다. 2010년 10월 손 전 대표는 MB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맞서 서울역 장외투쟁을 결심했으나 이튿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손 전 고문이 ‘타이밍의 저주’에 걸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손 전 대표의 정무적인 감각이 너무 부족하다”는 회의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이른바 ‘촉’이 부족하다. 손 전 대표 입장에서 가장 큰 기회는 총선이었다. 총선에서 손 전 대표가 은퇴를 했더라도 백의종군을 해서 지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했어도 손 전 대표가 떴을 것이고 민주당이 이겼다면 대권잠룡 이미지를 더욱 굳혔을 텐데 타이밍을 놓쳤다. 뭘 해도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손 전 대표가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다. 다른 국회 관계자 역시 ”합리적인 사람이지만 은근히 고지식한 스타일이다. 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자신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항상 적기를 놓치곤 했다“고 보탰다.
손 전 대표 지지율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 10월 4주차 주간동향에 따르면 손 전 대표는 지난주보다 0.2%p 하락한 3.2%로 9위를 기록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9%의 지지를 얻어 1위를 달렸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20.3%)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10.5%)가 뒤를 이었다. 손 전 고문은 7위를 기록한 안희정 충남지사(4.2%)와 8위를 차지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3.4%)에게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이번 주간집계는 2016년 10월 24일~28일,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45명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였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문가들도 손 전 대표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손 전 대표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손 전 대표 정도의 정치경력이라면 빠르게 정보력을 동원해 이슈를 선점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유승민 의원은 진보 진영이 듣기에도 합리적인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적어도 자신의 지지 세력에게 최소한 속 시원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반면 손 전 대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 전 대표 최측근은 “유 의원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장은 자유롭게 앞서가는 말들을 할 수는 있겠지만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지금의 언행은 문제가 있다. 지지율도 통계적인 수치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도 지지율 1%부터 시작했다. 미국의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손 전 대표가 거국 내각 국면에서도 실기했다’는 비판도 들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10월 30일 여·야 합의를 통해 거국 중립내각 구성을 청와대에 제안하면서 손 전 대표와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차기 책임 총리 후보로 건의했다. 손 전 대표는 11월 1일 ‘SBS’ 뉴스브리핑에서 “대통령 자신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야가 진정으로 합의를 한다면 새로운 과도 정부 성격의 거국내각의 총리 제안을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튿날 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책임총리 후보자로 임명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손 전 고문이 굉장히 난감해졌다. 정치적 선택이 타이밍을 못 맞추는 이유는 너무 숙고를 하는 탓이 크다.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되려면 DJ의 인동초 같은 기질과 YS의 승부사적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손 전 대표는 승부사적 기질이 약하다. 지혜로운 정치인이지만 찬스를 전부 놓쳤다. 정계 은퇴 당시 보여줬던 감동이 사라졌다. 자신의 지지자들 감동이 아니고 국민이 느끼는 감동이 중요하다. 그것이 명분이다. 대권은 명분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손 전 대표의 제3지대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앞서의 한 국회 관계자는 “제3지대로 가겠다고 탈당한 것도 무리수다. 손 전 대표가 ‘또 탈당이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손 전 대표 본인은 내려놓는다고 했지만 당은 이미 ‘문재인판’으로 게임이 끝났으니까 다른 길 찾아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국회 관계자 역시 “여당에서 야당으로, 그리고 제3지대에서 거국내각의 총리로 간다면, 뭔가 자꾸 갈아타는 느낌이다.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손 전 대표의 커리어가 여기서 끝나 버릴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