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6일 캐나다 밴쿠버의 퍼시픽 콜리시움에서 열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시상식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건 후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비밀스런 준비
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에 대해 말이 많았다. 김연아가 선수촌에 들어가지 않고 호텔 생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연아에게는 ‘김연아팀’이 있다. 어머니 박미희 씨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 데이비드 윌슨 안무 코치, 물리치료사까지, 김연아가 국제대회마다 항상 대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선수촌에는 오서 코치밖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택한 것이 선수촌 아닌 호텔 생활이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대회 현지에서 선수촌 생활을 거부하고 개인적으로 따로 생활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사다 마오가 “올림픽을 즐기고 싶다”며 선수촌에 들어간 것과 대조되며 김연아의 호텔행에 뒷말도 많았다. 더구나 김연아는 밴쿠버에 도착한 뒤 입을 닫았다. 언론과 접촉을 일절 피하고, 이틀 동안 간단한 코멘트만 하며 “쇼트프로그램이 끝난 뒤에 얘기하겠다”고 했다. 질문 역시 받지 않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마음의 안정과 집중을 위해 한 행동들이었다. 만약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자신감, 그리고 대담성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김연아가 가진 자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김연아는 금메달을 딴 뒤 “올림픽을 준비한 시간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준비가 너무 잘 돼있어 자신 있었다”며 “끝나고 나니 생각보다 올림픽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엄청난 자신감이다. 대회가 끝나고 김연아가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훈련이 뒷받침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라는 책에서 “김연아의 천재성을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연습 과정을 딱 사흘만 지켜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이 1년 연습할 동안 2년치를 연습할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던 김연아는 올림픽을 앞두고 더 피치를 올렸다. 인생 최고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12월 그랑프리파이널을 마친 뒤 미국 뉴욕에서 자동차로 7시간 걸리는 캐나다 토론토로 이동해 다음날 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올림픽을 위한 훈련이었다.
엄청난 훈련을 통한 자신감에 대담한 성격까지 이번 올림픽에서 빛이 났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5조 세 번째로 연기했다. 바로 앞이 아사다 마오(일본)였다. 이번 시즌 내내 부진했던 아사다는 지난달 4대륙선수권대회 우승으로 기지개를 켠 뒤 이날 쇼트프로그램에서 73.78점을 받으며 부활했다. 김연아가 지난 11월 그랑프리 5차대회 ‘스케이트아메리카’에서 세계기록을 경신했던 76.28에 비슷한 점수였다.
자신의 라이벌이 좋은 점수를 받은 뒤 바로 연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김연아는 특유의 대담성으로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연기를 펼쳤다. 이틀 뒤 프리스케이팅에서 순서가 정반대로 뒤바뀌어 김연아 바로 뒤에 연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는 침착하게 경기하다 결국 흔들리고 말았다. 그것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가장 큰 차이였다.
김연아는 지난 시즌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와 프리프로그램 ‘셰헤라자데’로 세계무대에서 날개를 달았다. 김연아의 장점을 극대화해낸 안무 코치 데이비스 윌슨의 작품이었다. 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바로 그 작품이기도 하다.
김연아는 이번 시즌 본드걸로 변신했다. 우아한 음악 위주였던 피겨스케이팅 프로그램에 ‘007 제임스본드 메들리’를 쇼트프로그램 레퍼토리로 들고 나와 피겨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진한 스모키 화장에 무채색의 강렬한 드레스와 섹시한 카리스마로 관중을 사로잡은 이 프로그램은 김연아가 왜 올림픽 챔피언인가를 보여준다. 김연아가 이 곡에 맞춰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유명한 피겨 안무가 산드라 베직이 김연아의 안무 코치 데이비스 윌슨에게 추천했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올림픽 중계방송사인 NBC 해설을 맡은 베직은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을 정말 사랑한다. 운동선수로서만이 아닌 한 여성으로서의 김연아를 성격까지 완벽히 보여준다.”
프리프로그램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는 우아한 김연아를 보여준다. 하얀 피부에 바닷물같이 파란 드레스를 입고 섬세한 표정 연기와 우아한 몸짓을 보여주는 김연아를 완벽하게 살려주는 곡이다. 이렇다 할 하이라이트 부분 없이 차분하게 흘러가는 곡이지만 김연아의 기술과 표현력은 확실히 돋보인다. 곡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기로 곡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완벽한 연기
클린 프로그램이란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마치는 것을 말한다. 김연아는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반드시 클린 프로그램을 해서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강했다. 세계기록 경신도 쇼트프로그램에서 더 많이 나왔다. 2분50초 동안 펼쳐지는 쇼트프로그램에 비해 프리스케이팅은 4분10초 동안 길게 이어진다. 김연아는 체력이 부족해 항상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완벽한 연기를 하지 못했다.
지난 10월 프랑스 에릭봉파르에서 열린 그랑프리 1차대회에서 133.95점으로 세계기록을 세웠던 김연아는 당시 프로그램에 구성요소로 포함돼있던 트리플플립을 건너뛰었다. 그러고도 세계기록을 받아냈다. 하지만 클린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시니어무대 데뷔 이후,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자주 해왔던 클린 프로그램을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김연아는 올림픽에서 결국 소원을 이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점프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 ‘김연아 표 정석 점프’에 심판들은 쇼트프로그램 역대 최고 점수인 78.50점으로 화답했다.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환상적인 점프와 뛰어난 표현력, 연기력으로 150.06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점수를 받았다. 자신이 갖고 있던 세계기록을 16점 이상 뛰어넘은 엄청난 점수였다. 그렇게 얻은 합산점이 228.56점. 역대 여자 싱글 최고점이자, 2위 아사다 마오(205.50점)와는 23점이나 차이 나는 완벽한 승리였다.
오서 코치는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와 함께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 봤을 때 김연아는 스케이트를 타는 게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일 때문에 타는 아이 같았다. 그래서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타게 해주려고 노력해왔다. 김연아는 지금 그렇게 됐고, 이제 어엿한 여성이 됐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자랑스럽다.”
교정기를 끼고 힘들게 연습하던 수줍은 소녀는 이제 세계를 평정한 행복한 스케이터가 됐다.
▲ 왼쪽부터 아사마 마오, 김연아, 조애니 로셰트. 로이터/뉴시스 | ||
한땐 마오가 너무 부러웠다
200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파이널. 김연아(20·고려대)와 아사다 마오(20·일본)는 여기서 처음 만났다. 김연아는 얼마 전 발간한 자서전 <김연아의 7분 에세이>에서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나와 비슷한 체형에 같은 나이. 공식 연습 때도 마오 선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가볍게 점프들을 성공시켰고 거의 실수가 없었다. 트리플 악셀도 실패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와, 잘한다. 세상에 뭐 저런 애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며 ‘동갑내기 라이벌’로 불려왔던 둘은 진정한 경쟁 관계였다. 어떻게 보면 아사다 마오가 있었기에 김연아의 성장이 더 빛날 수 있었다. 둘의 공통된 인생 목표였던 올림픽 금메달도 마찬가지다. 김연아의 금메달 역시 함께 경쟁해온 아사다 마오가 있었기에 훨씬 더 빛날 수 있었다.
아사다는 당시 주니어 선수로서 트리플 악셀(3회전 반)을 소화해 세계 피겨계를 뜨겁게 달궜다. 이미 주니어 시절이던 2005년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해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천재였다.
그런 아사다를 부러워했던 김연아는 세 번째 맞대결이었던 2006 주니어 세계피겨선수권에서 아사다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2006년 말부터 김연아의 역전이 시작됐다.
2006년 그랑프리파이널에서 우승하며 시니어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김연아는 국제대회마다 아사다와 맞붙었다. 2008년 말에 열린 2008-2009 그랑프리파이널까지만 해도 아사다가 앞섰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김연아가 우승한 그랑프리 1차대회에서 아사다는 2위를 했고, 2차대회에서는 역대 최저점(150.28)을 받았다.
역시 김연아가 우승한 4대륙선수권대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는 부진했다. 그랑프리파이널에도 진출하지 못해 국내 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진출권을 따낸 아사다는 차츰 기량을 회복해 이번 올림픽에 도전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에 4.72점 뒤졌지만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하필 프리스케이팅 조 추첨에서 김연아의 바로 뒤에 연기하게 된 아사다는 김연아의 놀라운 점수(150.06점)에 쏟아지는 환호를 들으며 링크에 나섰다.
필살기인 트리플악셀 두 차례를 깨끗하게 소화했지만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지 못한 아사다는 결국 후반 점프에서 실수를 하며 김연아와 비교도 되지 않는 131.72점에 그쳐 합계 205.5점을 받았다.
역대 개인 최고점수였지만 김연아의 기록 앞에서는 너무 적은 점수였다. 과거 ‘울보’였던 아사다는 경기에 나설 때도 시상식에서도 그리고 공식 기자회견장에서도 눈물을 참았지만, 결국 일본 취재진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쏟고 말았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이 스케이트를 타며 경쟁해온 그들의 7년 라이벌 관계는 올림픽 무대에서 김연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듯 보인다. 하지만 아사다가 없었다면 김연아의 성장도, 올림픽 우승도 그리 극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김은진 스포츠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