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3월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의 ‘올인’ 승부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재판 초기 곽 전 사장의 진술 번복과 폭탄 발언이 잇따르면서 수세에 몰린 검찰이 중반전 이후 회심의 반전 카드를 꺼내들면서 재판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재판부는 한 전 총리 뇌물 사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까. 자신의 정치 명운을 넘어 선거 판세와 정국 주도권 향배를 좌우할 초대형 재판의 중심에 선 한 전 총리의 인생 및 정치 역정을 되짚어 봤다.
평양 출신인 한 전 총리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을 따라 월남했다. 당시 한 전 총리의 부모님은 “몇 달만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값 나가는 집안의 전 재산을 고향땅에 묻어 둔 채 월남했다고 한다. 하지만 짧은 몇 달은 부모님의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됐고, 결국 50년이 넘는 세월을 고향을 그리다 끝내 타향에서 망향의 넋이 되고 말았다. 유년시절부터 부모님을 통해 분단의 한을 보고 느끼며 자라 온 한 전 총리가 이후 통일과 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화여대 3학년 때 만난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는 한 전 총리의 평범했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 전 총리는 자서전을 통해 “남편으로 인해 내 인생은 평범한 삶에서 고난에 찬 삶으로, 문학소녀에서 맹렬한 여성운동가로 변해버렸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 박 교수는 서울대 기독교 학생연합 단체인 ‘경제복지회’ 회장을 맡으면서 사회운동을 주도했고, 한 전 총리는 박 교수를 통해 점점 사회문제와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연애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두 사람은 1967년 하나님 앞에서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서약과 함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를 채 익히기도 전에 신혼의 단꿈은 무참하게 깨졌다. 결혼 6개월 뒤인 1968년 7월 박 교수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당시 15년 형을 선고받고, 1981년 12월 출소한 뒤 최근까지도 극좌·반미단체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1970년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새 직장으로 선택한 ‘크리스찬 아카데미’는 한 전 총리의 인생을 뒤바꾼 두 번째 계기가 됐다. 크리스찬 아카데미는 당시 한국사회에 산재해 있던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창설됐지만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중간자적 중재자를 양성하는 데 그 실질적인 목표를 두고 있었다. 노동자, 농민, 여성, 학생, 종교 등 다섯 계층으로 나눠 집중적인 중간집단 교육을 실시했는데 당시 한 전 총리는 여성 프로그램을 맡았다. 그는 이곳에서 6년 동안 여성 교육을 전담하면서 여성노동자, 여성농민 등 가난하고 소외 받는 여성들과의 소중한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1979년 박정희 정권 말기에 8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제 비판적인 각종 이념서적을 학습하고 반포했다는 이른바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 끌려간 한 전 총리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하는 등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회고했다. 서울구치소와 광주교도소에서 2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한 전 총리는 1981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4개월 뒤인 같은해 12월 25일 남편도 13년간의 기나긴 형기를 마감하고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한 전 총리는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2월에 결성된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전국 21개 민주여성단체가 연합해 결성된 이 단체는 이후 진보적 여성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하며 민주화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 전 총리는 이 단체를 통해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처벌법 등 여성권익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에 앞장섰다. 그는 1993년 이 단체 공동대표로 선출되면서 명실상부한 ‘여성운동 대모’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당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1년 여성부 초대장관으로 발탁된 한 전 총리는 여성근로자의 출산휴가기간을 30일 연장하고, 출산휴가 급여를 신설하는 내용의 모성보호법 개정의 산파역을 맡아 여성권익 신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 전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2003년 2월 참여정부 첫 환경부 장관에 오른 그는 2006년 3월 총리로 발탁되면서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승승장구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확대한 한 전 총리는 친노진영 핵심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난해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과 같은 해 8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맡을 정도로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지도자로 거듭났다. ‘이명박 정권 중간 심판론’을 기치로 필승을 다짐하고 있는 민주당 등 야권이 한 전 총리를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 전 총리도 ‘소통령’으로 통하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자신의 미래 정치 청사진을 펼쳐가고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가 순탄하게 서울시장에 출마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가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4월 9일로 예정된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될 경우 ‘이명박 정권 심판론’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고, 서울시장 선거는 물론 전국 선거 판세도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유죄 판결이 날 경우 한 전 총리는 정치생명에 큰 타격을 받게 될뿐더러 선거 정국 주도권도 여당이 쥐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6월 선거정국과 정국 주도권 싸움의 최대 분수령이 될 ‘한명숙 재판’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재판 초기에는 한 전 총리 측이 승기를 잡았다. 뇌물 수수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곽 전 사장이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하는가 하면 폭탄 발언을 쏟아내면서 검찰을 궁지로 몰아 넣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곽 전 사장은 법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인사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가 하면 인사 청탁의 대가로 건넸다는 5만 달러에 대해서도 “한 전 총리에게 직접 전달한 게 아니라 의자에 놓고 나왔다”고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번복했다. 한 전 총리에게 10만 달러를 송금한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사가 무서워서 거짓말했다”고 대답했고,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골프채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곽 전 사장의 진술 번복과 폭탄 발언으로 사실상 무죄가 확정됐다고 판단한 한 전 총리 측과 민주당은 ‘검찰의 표적수사’ ‘한명숙 죽이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검찰과 여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로 전환했다. 재판부도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주문하고 나서 검찰의 ‘KO패’로 결론이 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검찰도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을 태세다. 검찰은 3월 24일 열린 재판에서 총리 공관 경호원이었던 윤 아무개 씨가 한 전 총리 측 인사의 회유에 의해 위증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윤 씨는 지난 3월 18일 열린 6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 전 총리는 오찬 모임 뒤 제일 먼저 나오고 늦게 나오는 경우 경호수칙상 경호원들이 문고리를 잡고 총리를 주시하도록 되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윤 씨의 이 같은 증언에 따라 한 전 총리가 돈을 챙겼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 씨가 위증을 했다는 검찰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향후 재판 과정에서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법정에서 한 전 총리가 1일 사용료가 66만 원에 이르는 제주도의 L 골프빌리지를 26일간 사용하고, 사용료를 곽 전 사장이 대납하거나 곽 전 사장의 요청으로 특별 할인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 전 총리 측은 “공소사실이나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악의적 흠집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명숙 공대위’는 3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 전 총리가 책을 쓰기 위해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소개로 숙박을 한 적은 있다”며 “이 기간 휴가차 내려온 동생 부부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한 전 총리가 유죄판결을 받기 어렵게 되자 흠집이라도 내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겠다는 것인가”라며 “이런 형태의 정치적 수사, 흠집내기용을 강력히 규탄하며 검찰이 이성을 찾고 문제의 본질로 돌아오길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의 법정 공방전이 중반전 이후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한 전 총리의 도덕성이 새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검찰이 작심하고 꺼내든 승부 카드가 사실일 경우 한 전 총리는 유·무죄를 떠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정치권 입문 이후 최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는 한 전 총리가 무죄를 선고 받고 ‘이명박 정권 심판론’ 불씨에 기름을 부을지 아니면 유죄 내지는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정치생명을 위협받게 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서초동 중앙지법으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