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은 이번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은행들 중 가장 많은 의심을 사고 있는 곳이다. 은행 측은 적극적인 해명을 하고 있지만 상황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과 직접적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하나고등학교 문제까지 다시 불거지며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검찰의 소환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는 최순실 씨. 최순실 게이트가 은행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 씨 모녀의 외환거래와 관련해 문제점이 없었는지 밝히기 위해 KEB하나은행에 대해 종합검사를 벌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원래 최순실 게이트와 별개로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26일까지 검사를 받는 중이었고, 이 사건과 관계없는 사안 때문에 검사 기간을 11월 초까지 연장하기로 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최순실 특혜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해당 사안까지 조사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하나은행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의 내용은 이렇다.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 씨는 지난해 12월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된 강원도 평창 땅을 담보로 하나은행 압구정중앙지점에서 28만 9200유로(약 3억 6000만 원) 규모의 외화대출을 받았다. 압구정중앙지점은 정 씨에게 신용장(LC, letter of credit)을 발급해줬고, 정 씨는 이를 통해 하나은행 독일법인에서 유로화로 대출을 받았다. LC는 보통 무역 거래에서 쓰이는데, 은행이 일종의 지급보증을 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하나은행 압구정중앙지점은 최 씨와 정 씨 모녀 명의의 평창 토지를 담보로 하나은행 독일법인에 지급보증을 섰고, 독일법인이 대출을 해준 것이다.
통상 은행의 담보 설정이 대출액의 120%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 씨가 실제 대출받은 금액은 3억 원가량일 것으로 추산해볼 수 있다. 하나은행 독일법인에는 정 씨가 직접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본인이 방문할 경우 환전 절차를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전신환 등의 다른 방법보다 수수료가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의혹이 불거지자 KEB하나은행은 주말임에도 서둘러 보도자료를 내며 해명에 나섰다. 개인이 신용장을 발급받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며, 금감원 조사도 최순실 사태와 관련 없는 것이라며 진화에 진땀을 흘렸다.
KEB하나은행은 “외화지급보증서는 기업, 개인 모두 발급 가능하며 이례적인 거래가 아닌 일반적인 거래로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면서 관련 자료로 외화지급보증서를 발급받은 KEB하나은행 고객 총 6975명 가운데 개인고객이 약 11.5%인 802명이라는 내역을 공개했다. 하나은행 측은 또 “해당 대출상품은 2010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며 “자격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대출이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은 이에 대해 위법은 아니지만 이례적인 것은 분명하다는 반응이다. 은행 출신 2금융권 한 관계자는 “개인이 신용장을 발급받을 수 있고, 그런 거래가 종종 있다는 것은 맞다”면서도 “문제는 일개 지점 차원에서 19세짜리 학생에게 억대의 신용장을 선뜻 발급해 줄 수 있느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거래를 다뤘던 KEB하나은행 독일법인의 수장이 귀국 직후 승진을 거듭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독일법인장이었던 이 아무개 씨는 올해 1월 7년간의 독일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 삼성타운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한 달 만인 2월에는 임원급인 글로벌 담당 2본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KEB하나은행 글로벌 본부는 원래 한 개 팀이었지만 이 시기 1팀과 2팀으로 분리됐다.
이에 대해서도 하나은행은 억측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은행 관계자는 “이 씨의 경우 좋은 실적을 내 승진 대상이 됐을 뿐 최순실 씨와 전혀 무관하다”면서 “특히 올 2월은 해외 매출 증대를 위해 조직을 확장하던 시기여서 이 씨 외에도 2명의 본부장급 인사가 더 단행됐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최근 하나금융이 설립한 하나고등학교가 내부 고발자를 해임한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더하고 있다. 하나고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추진한 교육사업으로, 김 전 회장은 회장 재임 시절인 2010년 하나고 이사장에 취임해 학교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가장 많은 의심을 받고 있는 은행은 KEB하나은행이다. 고성준 기자
하지만 설립 과정에서 각종 특혜 논란이 일었고, 지난해 8월에는 입시성적 조작으로 김 회장 등이 교육청으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지난 10월 말 퇴임했는데 당시 내부 고발자인 모 교사를 해임한 사실이 밝혀져 ‘보복성 인사’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 교사는 언론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으로 시끄러운 틈을 타 임기 내에 나를 해임하기 위해 김 전 회장이 서둘러 징계에 나섰다”면서 “이는 공익제보에 대한 탄압으로,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통해 무리한 징계가 추진됐던 과정을 상세히 알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은행들도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다. 지난 10월 31일 저녁, 창구 영업이 끝난 뒤 결산이 한창이던 KB국민·신한·우리·SC제일은행·KEB하나·NH농협·IBK기업·한국씨티은행 등 8개 시중은행 본점에 갑자기 검찰이 들이닥쳤다. 최순실 특혜대출 의혹으로 KEB하나은행이 연일 집중포화를 맞던 중이라 시선이 그쪽에 쏠려 있던 시점이다.
검찰은 이들 은행에서 최순실 씨, 차은택 씨 등 이번 사태와 관련된 금융거래 내역을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벌였고, 이날 확보하지 못한 핵심 자료는 은행들로부터 추가 제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검찰은 최 씨 모녀와 차 씨,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차 씨의 아내와 가족, 법인 등의 거래에 대해 자료를 요청했다. 차 씨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수백억 원의 자금을 모금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검찰이 최 씨의 금융거래 명세뿐 아니라 특정법인의 계좌가 있는지도 확인해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최 씨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포괄적인 계좌추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시중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최순실 씨나 차은택 씨에 대출해준 내역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도 “전·현직 임원들 중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 사람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으며 해외지점에도 거래내역을 재확인하라고 지침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