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최근 출시를 준비 중인 신형 ‘그랜저’에 수입 타이어브랜드인 ‘미쉐린’을 장착했다. 기존 메인 타이어 공급사인 한국타이어가 밀린 것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그랜저에 쓰일 18~19인치 타이어는 미쉐린이, 17인치 타이어는 금호타이어가 각각 납품할 예정이다. 한국타이어 제품은 LPG 차량에만 공급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랜저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고려해 글로벌 넘버원 브랜드인 미쉐린을 선택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 측도 “완성차 업체(현대차)가 한 일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남구 테헤란로 133 한국타이어 본사사옥. 박정훈 기자.
자동차업계 일각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말 출시된 ‘제네시스 EQ900’ 내수용 모델에는 미쉐린과 독일산 타이어브랜드인 컨티넨탈이 쓰였다. 올해 출시된 하이브리드 차량 ‘아이오닉’에도 미쉐린 타이어가 장착됐다. 한국타이어의 타이어는 내수용에 비해 매출 볼륨이 적은 ‘수출용 제네시스’에만 탑재됐다. 한국타이어의 현대차 OE 납품 물량이 줄어들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요즘 보면 현대차가 미쉐린 등 해외 제품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며 “국산 제품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자동차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가 2013년 한국타이어가 납품한 제네시스 타이어에서 일부 결함이 발견되자 무상 리콜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두 회사 간 갈등이 부각됐다”며 “한국타이어 제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지만 품질경영을 외친 현대차로서는 이미지 타격 등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납품 건과 제네시스 리콜은 전혀 관계가 없다”며 “미쉐린이든 한국타이어든 제품 성능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실제 한국타이어는 국내 타이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그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앞의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타이어의 위상은 6~7위 정도며 국내에선 부동의 1위로 클래스가 높다“며 ”타이어는 마모, 코너링, 핸들링, 노이즈 등 서로 상충되는 부분에 대한 품질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한데 BMW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타이어와 계약을 맺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가 지난 2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는 시장의 이 같은 평가가 반영돼 있다. 한국타이어의 올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6576억 원, 2973억 원으로 업계 기대치를 상회했다. 유지웅 이베스트 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3일자 ‘기업분석’에서 한국타이어 호실적의 원동력을 ‘중국 OE 판매의 급격한 증가’로 꼽았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유럽에서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신장하는 등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사진 왼쪽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 오른쪽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지난해 7월 한국타이어 마케팅본부장에 부임한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으로서는 이 같은 상황이 달갑지 않을 듯하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사장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경복초등학교 동기동창이자 막역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두 회사 간 OE 거래 물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지난해 한국타이어가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와 함께 현대차 거래처였던 자동차 부품사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를 인수한 것이 정 부회장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정 부회장은 한국타이어에 ‘사모펀드는 안 된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막판에 한국타이어가 한앤컴퍼니와 손을 잡고 인수를 강행했다. 당시 조현식 사장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으로 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총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한온시스템을 제외하고 조현식 사장의 M&A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오히려 조현식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폐타이어 처리 업체 아노텐금산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대 거래처인 현대차와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한다면 조현식 사장은 후계구도에서 동생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경영기획본부장보다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가뜩이나 조현식 사장의 한국타이어 지분율(0.65%)은 조현범 사장의 지분율(2.07%)보다 낮은 상태다. 그렇다고 조현범 사장이 그룹 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다.
조양래 회장은 장남 조현식 사장, 차남 조현범 사장의 경영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이른바 ‘교차경영’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조현식 사장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서 한국타이어로,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에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로 ‘활동영역’을 바꿨다. 한국타이어 측은 “형제 간 경영권을 놓고 경쟁하란 뜻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재계에서는 후계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현대차와의 ‘앙금’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타이어 사업은 시장의 고정 수요가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거래처만 있으면 마진이 보장되는 알짜 산업이며 생산라인이 구축되면 오너가 손댈 것도 많지 않다“며 ”수익성의 관건은 현대차 등 대형 거래처와 관계”라고 짚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