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국정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수조 원대 무기 거래에도 손길이 닿았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사진은 록히드마틴의 F-35 라이트닝 II. 일요신문 DB
“퍼즐 맞추는 기분이다.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의혹이 형성되고 있다.”
최 씨가 국정전반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던 지난 10월 중순께, 사석에서 기자와 만난 한 방산업계 관계자가 꺼낸 말이다. 최순실 씨가 수조 원대 무기거래에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게 이 관계자 주장의 핵심이었다.
그는 “‘방위산업 뒤엔 늘 권력 실세들이 있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던 이야기다. 특히 무기 거래는 보통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데다 일부는 국내‧외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면서도 “누구라고 꼬집을 수 있을 만큼의 실체 파악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과 정치권, 군 안팎에서 들려오는 증언을 종합해 볼 때 크게 의심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도 “곳곳에서 의심되는 부분이 보여도 ‘설마’하며 넘길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에 희미하게나마 연결 고리가 드러난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이러한 의혹은 최근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군 안팎까지 번지고 있다.
# 뒤바뀐 전투기, 석연찮은 과정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무기사업은 대표적으로 공군의 차기 주력 전투기로 분류되는 F-X 사업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의혹이 불거진 지난 1일 즉각 부인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F-X 사업은 향후 30년 이상 국가안보의 핵심역할 수행에 적합한 기종을 효율적으로 선정하기 위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추진됐다”고 강조했다.
이를 반박할 물증은 없다. 관련자들의 양심선언이 나오거나 검찰에서 자금 이동을 깊숙하게 파악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입 과정에서 앞서의 의혹을 뒷받침할 정황과 심증이 없진 않다. 먼저 공군의 차기 주력 전투기인 F-X 전투기의 도입이 결정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정황이 포착된다. 당초 단독 후보로 올랐던 전투기가 비정상적으로 다른 전투기로 바뀐 것. 이 과정에 최 씨가 관여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F-X는 공군이 보유한 F-4 등 노후 전투기들을 대체하는 7조 3000억 원대의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당초 F-X사업에는 F-35A와 F-15SE, 유럽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이 경쟁했다. F-35A는 군의 평가 핵심 항목인 기술이전과 가격 등에서 요구 조건에 미달했지만, F-15SE와 유로파이터는 이를 충족했다. 특히 F-15SE가 유일하게 총 사업비 8조 3000억 원을 맞추면서 단독 후보로 올랐다. 이에 따라 지난 2013년 9월 24일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에서는 ‘F-15SE 차기 전투기 기종 선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그런데 방위사업추진위는 돌연 “북한의 비대칭 전력과 안보상황, 세계 항공기술 발전 추세 등을 감안했다”며 F-15SE안을 부결했다. 이어 역대 공군총장 17명이 F-15SE에 반대하는 건의문을 작성해 국회와 청와대, 국방부에 전달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여기에 군 안팎에서 “F-X 기종으로는 스텔스 기능이 뛰어난 F-35A가 적격”이라는 주장이 번지면서 2개월 뒤 공군의 차기 전투기는 F-35A로 결정됐다. 이때 김 전 장관이 “F-35A 결정에서 ‘정무적 판단’을 해야 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F-X 도입 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군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군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항목인 핵심 기술 이전에 대해서 유로파이터와 F-15SE는 이전을 약속했지만, 록히드마틴은 처음부터 이를 거부했다. 즉, F-35A를 골랐다는 것은 핵심기술 이전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라면서 “여기에 F-15SE보다 비싼 F-35A 도입으로 예산이 초과했다. 결국 당초 전투기 60대 도입 계획에 못 미치는 40대로 줄었고, 추가 비용을 들여 나머지 20대를 추후에 사들여야 한다. 그런데도 분위기가 F-35A 도입 쪽으로 흐르다 결정됐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이 관계자는 ‘권력 실세’가 개입한 의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최순실 씨 이름을 직접 들어 본 적은 없다”면서도 “다만 청와대 측에서 갑자기 사업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분위기를 파악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F-15SE가 F-35A로 교체되기 직전이었다. 그동안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직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는 신중하고 보수적인 집단으로 평가된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무기를 살 때는 더욱 그렇다. 국방부만의 판단으로 방위사업청의 평가를 단독으로 통과하고 국회가 동의한 안이 갑자기 뒤집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F-X 사업을 제외하면 단 한 건도 없다”고 귀띔했다.
# 사드 배치에도 ‘실세’ 개입 의혹 번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과 배치 지역 변경 과정에서도 최 씨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사드의 한국 배치가 논란이 된 건 2013년 9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 사령관의 “북한이 중거리 노동미사일의 발사 고각을 높여 남한을 타격한다”는 발언부터였다. 갑작스레 고고도(40~150㎞) 방어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한 군 관계자는 “당시 사드에 대해 잘 모를 때였다. 또 사드의 다발성 시험이 성공하지 못한 단계여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후 2년이 지나는 기간 동안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게 “사드에 대한 미국의 요청, 협상은 없었으며 검토도 되지 않았다”였다. 그런데 지난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대국민 담화에서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화했다. 이는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수소탄 실험) 직후에 나온 조치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의 돌출 발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6개월 뒤인 지난 7월 8일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을 전격 발표했다. 그런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사드 배치 결정을 부인했다. 대통령 발언 이후 미국 측과의 사드 배치 논의를 진두지휘한 국방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으로 인해 당시에도 “누군가 뒤에서 별도로 조율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또한 사드 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군 성산포대에서 성주골프장으로 변경된 것도 박 대통령이 성주 주민과의 만남을 가진 뒤 “대체 부지를 찾아보겠다”는 식의 의사를 전달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국방부는 이전까지 사드 배치 최적지로 성산포대만을 고수해왔다. 이에 대해 한 군 관계자는 “최근 최 씨에 대한 의혹을 볼 때 의심은 할 수 있겠지만, 일반인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드 배치에 관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사드 판매 업체도 록히드마틴”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록히드마틴이 한국 정부에 사드 구매 의사를 미국 국방부와 별도로 비공식 타진하는 일이 점차 늘었다”고 말했다. 록히드마틴이 사드 구매 의사를 ‘비공식 타진’하는 대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의 ‘심장부’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 따르면 록히드마틴은 지난 2015년 2월 한국에서 사드 논란이 점화된 이후, 국내 전문가들을 통해 대통령 면담의 기대효과와 부작용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통령 또는 정권 실세들과 접촉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5년 4월 중순에는 메릴린 휴슨 록히드마틴 회장이 주한 미국대사에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방한했다. 당시 메릴린 회장은 청와대 방문과 박근혜 대통령 면담도 추진했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그 대신 정부 주요 인사들과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돌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같은 해 5월 초에는 록히드마틴 부사장급 임원 2명 등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방한해 같은 인물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F-X 사업 문제도 있었겠지만, 이 시점 이후 사드 배치가 점차 표면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업계 관계자의 주장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지난 11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록히드마틴 회장이 한국 정권 실세와 접촉했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고 주장한 글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물증이 없는데도 정치권, 방산업계, 군 안팎에서 관련 증언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록히드마틴이 이번 정권부터 한국 무기 시장을 장악했는데, 그 배경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린다 김, 다리 역할에 불과했을 것” 최순실 씨가 무기 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과 친분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최 씨와 무기 사업 관계에서 린다 김이 연결 고리가 됐다는 주장이다. 복수의 방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린다 김과 최 씨와의 관계는 일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린다 김과 최 씨가 친분이 있다는 얘기는 정설로 통하고 있다”며 “이들은 과거 친분을 활용해 무기 사업 과정에서 협력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TV조선은 지난 11월 2일 린다 김 지인 등의 말을 인용해 “린다 김이 최 씨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3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며 청와대 관저에도 들어간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린다 김이 최 씨와 협력 관계로 무기 사업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마약 복용 혐의로 수감 중인 린다 김은 지난해 빌린 돈 5000만 원을 갚지 못해 고발까지 당했다. 7조 3000억 규모의 F-X 전투기 사업을 수주하는 데 공을 세웠다면 커미션만 수백억 원에 이르는데, 최근의 행보로 볼 때 그런 정황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린다 김은 차기 전투기 수주 경쟁에 나선 보잉과 록히드마틴, 유로파이터 등에게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이들 업체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린다 김이 업계에서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지는 꽤 됐다”며 “의혹이 제기된 무기 사업에서 린다 김이 최 씨와 직접 개입한 게 아니라 최 씨와 업체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특히 F-35A의 경우 FMS(미 정부의 대외군사판매) 방식의 구매라 커미션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역시 린다 김보다는 ‘실세의 입김으로 기종이 변경됐다’는 의혹에 힘을 싣는 정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충남 홍성교도소에 수감 중인 린다 김은 지난 1일 변호인을 통해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밝혔다. 다만 린다 김은 그동안 검찰 조사에서 정부 공식·비공식 실세들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린다 김은 최 씨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으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잘 아는 사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린다 김을 상대로 최 씨와의 관계나 무기거래 관련 의혹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고 있다. 한편, 린다 김은 1998년 ‘백두사업’(군 통신감청 정찰기 도입사업) 스캔들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0년대 중반 군 무기 도입사업 과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5부터 1997년 사이 군 관계자들로부터 공대지유도탄, 항공전자 장비 구매사업 등 2급 군사비밀을 불법으로 빼내고, 백두사업과 관련해 군 관계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2000년 재판에 넘겨졌다. 린다 김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시 백두사업은 당시 금액으로 약 2200억 원이 소요되는 초대형 국방사업으로, 린다 김을 고용한 미국 E시스템사는 가장 비싼 가격을 불렀음에도 프랑스, 이스라엘 등을 누르고 선정 됐으며, 이후 통신감청용 정찰기들의 성능도 군의 요구 수준에 미달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문] |
록히드마틴, 한국 무기시장 초고속 장악…비결 따로 있나 록히드마틴사는 2010년대 초반까지 한반도 무기 시장에서 수천억 원가량의 계약을 수주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무기 시장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록히드마틴이 사드 판매에 공을 들이는 이유로, 군비를 감축한 미국을 벗어나 새로운 판로개척 등 사업의 활로를 위한 시험무대로 한국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먼저 사드는 최첨단 레이더 1대, 발사대 6개, 요격미사일 48발이 1개의 사드 포대로 구성된다. 사드용 요격미사일(인터셉터) 1발의 비용은 110억 원으로, 미사일 외에 사드 1개 포대를 구축하려면 1조 5000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여기에 사드 방어력이 미치지 못하는 수도권 방어를 위해 수도권 패트리어트 전력 증강 계획도 세워졌다. 군은 2018년까지 기존에 사용하던 구형 패트리어트(PAC-2) 미사일을 신형 패트리어트(PAC-3)으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인데, PAC-2는 레이온의 제품이지만 PAC-3는 록히드마틴 제품이다. 이 미사일을 도입하는 데 최소 3조 6000억 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록히드마틴은 한국에서만 1차로 사드, 2차로 패트리어트 시장을 넓혔다. 사드가 닿지 않는 더 높은 고도(150~500㎞)에서 적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요격체계인 SM-3도 도입된다. 해군은 차기 이지스 구축함 광개토-Ⅲ(Batch-Ⅱ)에 SM-3를 탑재할 수 있는 수직 발사대와 SM-3를 운용할 수 있는 통합전투체계를 갖추기 위해 록히드마틴과 계약을 체결했다. 록히드마틴은 또 차세대 전투기 F-35 40대 도입사업에서만 2021년까지 7조 3419억 원을 가져가게 된다. 1조 8000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 KF-16 개량사업 책임 업체도 영국 BAE시스템스에서 록히드마틴으로 변경됐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