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일요신문 DB
최근 서울북부지방법원이 공연음란죄로 기소된 A 씨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존했던 성범죄 수사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 평가하고 있다. A 씨는 여고생들의 신고로 졸지에 건물 주차장에서 자위행위를 한 범죄자의 누명을 썼지만 약 1년 6개월 간의 법적인 다툼 끝에 억울한 심정을 풀게 됐다. A 씨는 공연음란죄를 저지른 성범죄자의 주홍글씨를 새길 뻔했지만 가까스로 누명을 벗었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서울북부지방법원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A 씨에 대해 2015년 4월 9일 오전 7시 15분경, 불특정 다수인이 통행하는 서울 성북구 북악산로 인근 건물 주차장에서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꺼내 자위행위를 하여 여고생들이 장면을 볼 수 있게 했다는 이유로 검찰은 형법 245조의 공연음란죄로 A 씨를 기소했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끝까지 자위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A 씨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가 시작한 이후 A 씨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건의 최대 쟁점은 ‘A 씨의 자위행위를 인정할 수 있느냐’ 였다. 1심 재판부는 “여고생들은 피고인이 상당시간 자신의 성기를 잡고 흔드는 행위를 해서 자위행위를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들은 남성이 소변을 본 뒤 ‘자신의 성기에 남은 소변을 제거하기 위해 성기를 잡고 흔드는 행위’와 ‘자위행위로 성기를 잡고 흔드는 행위’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A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 1심 재판부는 “여고생 B 씨는 그곳을 통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목격할 수 있는 자세로 상당기간 자신의 성기를 잡고 흔드는 행위를 했다고 진술했다”며 “하지만 B 씨의 진술대로 라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목격자가 있었을 텐데 B 씨를 제외하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행자들 중 비명을 지르거나 피고인에게 직접 항의한 사람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목격자가 있었다는 B 씨의 진술을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B 씨와 다른 여고생 C 씨의 엇갈리는 진술도 문제였다. 당초 B 씨는 C 씨와 함께 피고인을 목격하고 4분이 경과한 뒤, C 씨와 함께 사건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A 씨가 자위행위를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C 씨는 B 씨와 함께 사건현장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소변을 보기 전에 자위행위를 했다면 소변을 본 직후, 소변을 본 후 자위행위를 했다면 그 직후 현장에서 이탈했을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은 경찰이 올 때까지 사건현장에 가만히 있었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순간 즉각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공연음란죄에 대해 다시 한 번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2심 말미에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12호(노상방뇨 등)으로 돌연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냈다. 2심 재판부는 A 씨의 경범죄처벌법위반에 대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결국 검찰은 10월 27일 항고를 포기했고 2심 판결이 확정됐다. 1심 재판을 담당한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는 “상대방 측 증거는 피해자 진술밖에 없었다. 검찰이 피해자의 진술을 너무 섣불리 믿기보다 객관적인 정황들과 피고인 측의 주장을 좀 더 주위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성범죄에 대해 법원과 검찰이 피해자 진술에 너무 의존해왔다”고 설명했다.
A 씨는 11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술을 마신 뒤 주차장에서 오줌을 싸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여고생들이 지나갔다. 인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여고생들이 사라진 뒤 경찰이 현행범으로 저를 체포했다. 정말 너무 황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 씨는 “1심 재판에서 여고생들의 진술도 맞지 않았다. 보통 남성의 경우에 자위행위는 손을 앞뒤로 흔들면서 하지만 소변을 본 이후에 남성들은 위아래로 성기를 흔든다. 잔뇨를 떨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고생들은 전혀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재판 내내 저를 몰아갔다. 1년 6개월 동안 악몽의 시간들을 겪었다. 이제는 자유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최선재 기자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