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위작 논란을 겪으며 국내 미술계 최대 스캔들로 꼽히는 ‘미인도’. 연합뉴스
이번 미인도 그림이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린 데는 이 같은 기술이 활용됐다. 천 화백 유족 측은 약 75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이 연구팀을 초빙했다. 이 감정팀은 수사의뢰 받은 천 화백의 그림 9점을 특수카메라로 비교한 결과 양 작품에 차이가 있고,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천 화백의 작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프랑스 연구팀의 미인도 분석 결과가 위작으로 결론나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즉각 ‘유감’의 뜻을 밝혔다. 미술관 측은 “프랑스 감정단이 도출했다는 감정 결과는 종합적인 검증 등을 통한 결론이 아니라 부분적 내용을 침소봉대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현재 검찰뿐만 아니라 대검찰청의 과학분석팀, 미술전문가 등에 의해 검증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천경자 화백 유족 측이 선정한 프랑스 감정팀의 자료가 보도된 것에 심히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특히 미술관 측은 “결정적으로 프랑스 감정팀은 미인도를 이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이 입수한 연도(1980년 4월)보다 나중에 그려진 ‘장미와 여인’(1981년)을 보고 그렸다는 결론을 냄으로써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술관 측은 과거에도 미인도가 1979년 10·26사태(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를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소장품으로, 김재규의 재산이 압류되는 과정에서 재무부와 문화공보부를 거쳐 그림을 1980년 4월에 이관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천 화백 유가족 문범강(천경자 화백 사위)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프랑스 감정팀의 최종 감정보고서를 검찰도 받았고 유가족도 받아봤다”며 보고서에 담긴 감정인들의 의견을 언급했다. 문 교수는 “비교적 원문과 가까운 번역을 하자면 ‘만약 미인도를 1981년 이후 작품 군과 비교한다면 장미와 여인의 카피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상관없이 1977년도 작품군이나 1980년대 이후 작품 군과 비교할 때 미인도는 작법이나, 밑그림, 균형, 빛의 처리에 있어서,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다른 위작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장하는 미인도 입수 연도(1980년)와 감정 비교작인 ‘장미의 여인’(1981년)이 갖는 시기적 차이 문제를 떠나서 미인도는 천 화백의 그 어떤 진품과도 완전히 다른 위작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문 교수는 “미인도 진위를 가리는 이번 과학검증은 하나의 참고자료가 아닌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 본다”며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수학적, 확률적 증거를 겸허히 수용해야 된다. 과학의 바탕 위에 현재의 삶이 영위되는 것을 알면서 이 감정결과를 부정한다는 것은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가족의 음성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프랑스 감정팀이 위작 의견을 냈다고 해서 검찰이 미인도를 위작으로 최종 결론 낸 것은 아니다. 프랑스 감정팀은 그림이 그려진 패턴을 바탕으로 진·위작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일 뿐 이것만으로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검찰은 이 보고서를 참고로 하면서 다른 기관들에 의뢰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위작 여부를 최종적으로 가릴 계획이다.
국내 미술계에선 이번 프랑스 감정팀의 감정결과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검찰 수사 결과 ‘위작’ 결론이 날 시 불어올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한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곳인가. 그곳의 소장품은 문화유산이자 한국 미술계의 위상을 보여주는 징표”라며 “위작 결론이 나면 국립미술관이 가짜 그림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사실 안목감정의 경우 감정사들의 전문성에 언제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오래전만 해도 감정 자체가 개인적인 감정, 인간관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만약 이번 위작 사건이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서 25년을 끌고 오게 된 것이라면 창피한 일이지만 이런 관행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지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25년간 지속된 미인도 위작 논란을 계기로 작가들의 자기관리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수도권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또 다른 관장은 “위작 시비가 일어난 게 어떻게 보면 작가가 작품에 대한 기록을 제대로 안 해놓았기 때문이다. 작가만이 알 수 있는 표시나 연도 등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해 놓아야 앞으로 위작 논란에 휘말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